도시와 정원의 첫 키스

김은남 기자 2013. 5. 24. 00: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 2주 만에 관람객 50만명을 넘겼다. 순천시가 생태도시의 비전을 보여줬다는 호평부터 시민과의 연계 부족 등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5월3일 순천시청 대회의실. 단상에 오른 조충훈 순천시장의 낯빛은 상기돼 있었다. 개장 2주 만에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찾은 관람객이 50만명을 넘어섰다는 낭보를 전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있었던 여수엑스포 세계박람회 때도 개장 13일 만에 관람객 50만명이 들었다. 단, 여수엑스포는 2조원 이상 국비가 투입된 국가 단위 행사였다. 이에 비해 순천정원박람회는 순천시가 시비 3000억원가량을 들여 준비한 지자체 단위 행사다. 행사 주체나 예산 규모가 천양지차다. 그런 만큼 순천은 ‘우리 스스로도 믿지 못할 성공’이라며 박람회의 순조로운 출발에 들떠 있었다.

이유가 뭘까. 봄나들이나 수학여행 철과 겹쳐서? 언론의 집중 홍보에 낚여서? 그도 아니면 사람 많이 몰리는 데라면 너도나도 따라나서는 쏠림 현상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인구 27만명에 불과한 기초자치단체가 주최한 행사가 돌풍을 일으킨 이유를 찾기 어렵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순천정원박람회장을 구경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무작위로 소감을 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박람회장에 다시 오고 싶나요?”

ⓒ시사IN 조남진 순천시를 본떠 만들었다는 호수정원.

다시 오고 싶은지를 물은 것은 순천정원박람회가 내세운 특성 때문이다. 순천정원박람회는 4월20일~10월20일 6개월간(184일) 개최된다. 국내에서 열린 박람회 중 최장 기록이다. 그런 만큼 봄·여름·가을 계절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선전한다.

박람회 끝난 뒤에도 공원 녹지로 보존

더 중요한 것은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정원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몇 주 개최하고 철거하는 소모성 꽃 박람회와는 다르다. 이는 유럽에서 보편화된 정원박람회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정원박람회 선진국인 독일 사례를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온 고정희 조경설계연구소장은 “정원은 준공이 곧 완성이 아니라는 데 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준공된 순간 가장 완벽하게 빛나는 건축물과 달리 정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더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천박람회장에 다시 오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답변은 이랬다. “KTX 타고 순천까지 왔는데 다리만 아프고 볼 게 별로 없다. 에버랜드만 못하다”(서울에서 온 20대 연인).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이 꾸며져 있다기에 왔는데 어린애들 학예회 수준인 것 같다. 쉴 곳도 너무 부족하다”(부산에서 온 30대 자매). “옆 동네인 곡성에서 열리는 장미 축제가 더 화려한 것 같다”(순천에 사는 60대 여성).

ⓒ시사IN 조남진 한국정원 일대.

반면 다시 오고 싶다는 사람들의 답변은 이랬다. “사람이 많다기에 걱정했는데 볼 것들이 야외에 흩어져 있어 줄을 서지 않아 좋았다. 철 바뀔 때 와서 순천만이랑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전주에서 단체관광 온 50대 여성). “여수엑스포 때는 정기권(폐막 때까지 언제든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이 20만원이었는데 순천박람회는 6만원이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다시 오려 한다”(여수에서 온 40대 부부). “집이 가까워 자주 오는데 처음에는 세계정원처럼 유명한 데만 보고 다니다 지금은 ‘도시숲’이나 ‘갯지렁이 다니는 길’을 찾아다닌다. 볼수록 매력 있고 쉬어가고 싶은 정원이다”(순천에 사는 30대 여성).

이 같은 답변은 순천정원박람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박람회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는 점을 이번 행사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폐막 이후로도 박람회장을 유지한다는 구상을 가능케 한 이번 박람회의 핵심 정체성은 바로 ‘순천만 지키기’다. 순천만은 ‘생태도시 순천’을 떠받치는 최대 자산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로 연간 200만명 가까이가 찾는다는 순천만을 통해 순천은 교육도시에 머물던 과거의 도시 이미지를 생태도시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정원박람회를 통해 이를 더 발전시켜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완성한다는 것이 순천시의 야심찬 비전이다.

ⓒ시사IN 조남진 박람회장에 있는 꿈의 다리(강익중 작품)를 건너다보면 군데군데 뚫린 창 너머로 순천만이 보인다.

정원박람회장은 약 11ha 규모로 서울숲과 엇비슷하다. 이 초대형 녹지가 위치한 곳은 순천도심과 순천만 사이(쪽 지도 참조). 이로써 “박람회장이 시가지 팽창으로부터 순천만을 보호하는 일종의 버퍼 구실을 하게 된다”라고 이재근 순천시 박람회 지원과장은 말했다. 박람회가 끝난 뒤로도 공원 녹지로 보존될 이 공간이 도시 개발의 저지선으로서 순천만 생태 보전을 위한 완충지 구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평가받는 부분은 시대적 흐름을 포착했다는 점이다.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보는 것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 여가 문화가 바뀌면서 정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정원이나 텃밭 가꾸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속도와 효율에 치이면서 치유와 돌봄의 가치에 눈을 뜬 오늘의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로버트 포그 해리슨 스탠퍼드 대학 교수는 정원 가꾸기의 핵심이 돌봄(care)이라고 지적한다(〈정원을 말하다〉, 나무도시). 정원박람회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생태 도시의 비전이 뚜렷해짐에 따라 순천의 미래 전략도 덩달아 풍부해지고 있다. 5월3일 순천시가 주최한 ‘순천정원박람회 사후 활용방안 마련 시민토론회’에서는 백가쟁명식 제안과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박람회장 일부를 한방 체험장이나 휴양 시설로 활용하자, 도농 직거래 장터를 만들자, 정원·조경사 양성 과정을 결합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등등. 어느 쪽이든 박람회장을 시민공원으로 유지하자는 큰 틀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박람회장을 정원으로 유지·활용한 도시는 대부분 각종 경제 지표가 상승하고 삶의 질에 대한 시민들의 만족도 또한 급등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성종상 교수는 말했다. 2003년 정원박람회가 열린 독일 로스톡의 경우 그 뒤 5년 새 GDP(국내총생산)가 20% 성장했는가 하면 정원·조경·화훼 등과 관련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고용 또한 12%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다.

국내 박람회의 패러다임 바꾸는 계기

그러나 순천정원박람회는 가능성 못지않은 한계 또한 드러냈다. 일단 박람회가 장기적인 미래 비전을 내세운 것과 달리 실제 준비 기간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순천시가 정원박람회를 유치한 것이 2009년이다. 박람회장 부지 매입 후 착공에 들어간 것은 2011년. 그로부터 고작 2년 만에 박람회가 열린 셈이다. 나무가 제대로 뿌리내릴 시간을 벌기 위해 최소한 5~6년 전부터 정원을 가꾸며 박람회를 준비한다는 독일과는 차이가 크다. 서울에서 왔다는 50대 부부는 “몇 년 있다 박람회를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나무들이 좀 더 자라 볼만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무가 부실하다 보니 화훼가 부각되면서, 꽃 박람회보다 못하다는 불만을 자초한 격이다.

박람회장은 순천 도심과 순천만 사이에 있다.

순천시 관계자는 열악한 기초단체 여건상 장기간에 걸쳐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무리라고 항변했다. 국비를 지원받아 엑스포를 개최한 여수시와 달리 순천시가 BIE(국제박람회기구) 인증받기를 중도 포기한 것도 까다로운 절차와 비용 부담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여느 지자체나 마찬가지로 정치 일정이 이를 더 꼬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일단 단체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내고 싶어할 수밖에 없다. 순천은 여기에 단체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겹치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박람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던 노관규 전 시장은 박람회 비용을 국비로 유치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들었다. 후임 시장 선출 과정에서도 박람회를 강행하느냐, 연기하느냐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생태도시를 완성하겠다는 비전이 박람회 전반에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신화철 순천시의회 지방자치위원장(통합진보당)은 “순천만을 보존하자면서 소형 경전철 공사를 강행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소형 경전철(PRT)은 박람회장에서 순천만까지 약 4.6㎞를 잇는 교통수단으로 순천시가 도입하려던 것이다. 경전철이 있으면 버스·자가용 이용이 줄어 순천만 생태 보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와 달리 지역 시민단체들은 경전철이 경관을 훼손하고 다양한 생태 탐방을 제한할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박람회장과 순천만을 오갈 계획이던 소형 경전철은 안전성 검사 등으로 운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논란이 된 경전철은 현재 시범 운행이 늦어진 데 따른 안전성 문제 등을 이유로 운행을 하지 않는 상태다. 순천시 관계자는 “일러도 8월쯤이나 돼야 운행이 가능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경전철 관련 협약을 즉각 해지하고 관련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압박에 나섰다. 이런 논란 와중에도 박람회장 한편에 자리 잡은 경전철 역사와 철로 밑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그늘막이 부족한 박람회장에서 햇볕을 피하는 용도다.

순천정원박람회의 또 다른 한계는 지역민의 삶과 박람회가 따로 논다는 사실이다. 순천역에서 만난 50대 택시기사는 대뜸 “이런 박람회는 망해버려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람객이 많이 와도 수입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순천 시내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허 아무개씨는 “관람객들이 박람회장과 순천만만 휙 둘러보고 떠나는 것 같다. 시내에 머물면서 돈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시 공무원 또한 박람회 기간 시내 곳곳에서 매일 문화 행사 등을 개최하고는 있지만 호응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럴 만도 했다. 기차 역사나 박람회 현장에서나 순천 도심의 매력을 알리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굳이 순천시내에 머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는 홍보나 스토리텔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총체적 전략이 부재한 탓일 수도 있다. 박람회로 난개발을 저지한다는 구상은 좋았는데, 생태도시로서 도심까지 포괄하는 새 축을 짜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모든 박람회는 도심 재생 전략과 반드시 연계돼야 한다. 도시 전체가 병진 발전하는 것이 박람회의 역사였다”라고 말했다. 박람회가 끝난 뒤를 위해서도 이는 넘어야 할 벽이다. 최정민 교수(순천대·조경학)는 “정원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 만큼 시민들의 삶과 박람회를 연결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민관이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존 박람회나 대규모 국제 행사는 토건족을 위한 잔치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5월12일 개최 1주년 기념행사를 여는 여수엑스포 또한 도로·교량 등을 건설하는 데 예산의 상당 부분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지속 가능한 박람회를 만들 소프트웨어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고정희 소장은 순천정원박람회가 국내 박람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순천이 성공할 경우 ‘토건 박람회’에서 ‘생태 박람회’로 큰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지자체 또한 산업시설을 유치하기보다 저마다 특색 있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온 국토의 정원화.’ 그것은 ‘독일 정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이상이기도 했다.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