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종 도란도란 '비밀숲'..제주살이 비밀 품고 있네

2013. 5. 1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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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쏙] 생태계의 보고 '제주 곶자왈'

월요일마다 각 지역의 현장을 찾아가 현안을 들여다보며 이웃들의 삶을 소개한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제주 생태계의 허파인 '제주 곶자왈'을 찾아가 봤다.

숲·오름·궤·계곡·습지…숯가마터·노루함정·피신처…자연과 사람 껴안은 삶터멸종 위기 개가시나무녹나무 군락 향내 코찌르고사람 손 안탄 삼동 열매 방긋"곶자왈은 제주삶 자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하고 깜깜한 동굴 속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한치 앞 운명도 모른 채 울고 웃고 떠든다. 입김이 훅훅 나오는 추운 겨울이지만 주변은 온통 숲이다. 제주 4·3을 다룬 독립영화 <지슬>에 나온 큰넓궤 주변의 모습이다. 큰넓궤는 제주 서부지역 한경-안덕 곶자왈지대의 지류인 월림·신평 곶자왈에 있다.

곶자왈에는 숲, 오름, 궤(작은 굴), 동굴, 계곡, 습지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 때문에 4·3 당시 해안마을로 내려가지 못한 주민들의 피신처 구실을 했다.

16일 오전 제주시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빗발이 나부꼈지만,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 곶자왈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푸른 햇살 아래 초록색이 무성한 수풀이 펼쳐졌다. 함께 현장에 나선 제주도 한라산연구소의 김대신 연구사는 이런 기후에 익숙해서인지 "제주시내 날씨가 나빠도 서부지역은 쾌청할 때가 많다"며 연신 땀을 닦아냈다.

김 연구사는 "도립 곶자왈공원은 상록활엽수로 대표되는 난대림이 우세한 대표적인 곶자왈 가운데 하나다. 제주 동부지역에 선흘 곶자왈이 있다면, 서부지역에서는 신평 곶자왈, 저지 곶자왈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조성하는 곶자왈 도립공원은 대정읍 신평리와 보성리, 구억리, 무릉2리를 낀 154만여㎡에 이른다.

한경-안덕 곶자왈지대가 난대림의 대표 수종인 종가시나무와 개가시나무의 군락지를 이루어 곶자왈로 들어서자 이런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김 연구사가 지팡이를 휘저으며 앞장섰다. 벌레들이 한창 번성할 때여서 자주 지팡이를 휘저어 벌레 사이를 헤쳐나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탐방로로 비어져 나온 나무줄기마다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벌레들이 자주 보였다.

과거 마을 주민들이 땔감용 등으로 나무를 많이 벌채한 뒤, 나무 밑동에서 새순이 돋아나 나무줄기로 변한 맹아림이 됐다고 김 연구사는 설명했다. 참식나무, 해송 등이 곶자왈 들머리에 보이더니 이내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찔렀다.

오미자 대용으로 쓰인다는 나무오미자를 손으로 비비자 오미자향이 솔솔 났다. 2~3월에 흰 꽃을 피우는 백서향의 진한 향기도 곶자왈에 은근히 퍼졌다. 쇠고사리들은 지천에 널려 있다. 곶자왈의 지질 특성으로 바위 틈새에 습도가 유지되면서 양치식물은 돌멩이마다 붙어 있었다.

종가시나무와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특성을 지닌 개가시나무 줄기를 타고 으름덩굴, 마삭줄, 개다래가 덩굴처럼 올라간 모습도 곳곳에 보였다. 개가시나무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제주도에만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에서도 자생지의 95%가 곶자왈에 몰려 있다. 김 연구사가 녹나무의 새순을 손으로 비벼 내밀었다. 향기가 달콤했다. "서귀포시내에 녹나무가 많다고 하지만, 이곳 곶자왈만큼은 없어요. 사실상 이곳이 국내 녹나무의 대표적인 군락지인 셈이죠."

아직 꽃대가 올라오지 않은 여름새우난은 흔했다. 탐방로 안 '테우리길'에서 만난 우마급수장은 이곳에서 목축을 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주변에는 노랗게 피어난 실거리나무가 탐방객들을 맞았다. "낚싯바늘처럼 생겨 옷에 걸리면 실밥이 나온다"고 해서 실거리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는 호랑가시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는 까맣게 익어가는 상동나무의 열매(삼동)가 숱하게 달려 있었다. 달콤했다. 삼동을 따 입 주위가 새까맣게 될 정도로 먹었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깊숙하게 들어가자 주변에 큰 돌무더기처럼 된 지형이 나타났다. '함몰 지형'이다. 온도·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해 식물종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준다. 때죽나무와 육박나무도 보인다. 육박나무의 나무껍질은 군복 색깔처럼 알록달록하다 해서 '해병대나무'라고도 불린다며 김 연구사가 웃었다. 예덕나무는 순을 따 찻잎으로 사용한다. 곶자왈 안 나무와 열매 가운데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김 연구사는 곶자왈의 특성을 "특별한 식물들이 많이 몰려 있는 특이 생태계"라고 말했다. "곶자왈은 1년 내내 항상성을 유지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곶자왈 안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해발 800m 이상에서 자라는 식물종이 200종을 넘어요. 곶자왈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생태계죠."

1시간 남짓 곶자왈 안으로 들어가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쉴새없이 들린다. 울음소리가 제각각이다. 낯선 탐방객을 경계하는지 곶자왈의 주인들인 흰눈썹황금새, 큰유리새, 섬휘파람새, 직박구리, 동박새 같은 새들의 지저귐이 진동한다.

백서향과 때죽나무가 경계처럼 서 있는 사이로 기다랗게 쌓인 돌담이 나타났다. '제주 4·3 유적지'다. 돌담에 낀 이끼와 돌담 안에 어지럽게 자란 나무들이 60여년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주듯 무성했다. 신평 곶자왈은 4·3 당시 '해방구'였다. 이곳을 끼고 있는 한수기곶은 4·3 발발 초기 무장대의 근거지였다.

지형 조건을 모르는 군대와 경찰은 한동안 곶자왈 깊은 곳까지는 들어오지 못했고, 주민들은 이곳에서 피신 생활을 했다. 곶자왈 안에 있는 자연동굴 속에는 돌을 지그재그식으로 쌓아놓는 등 당시 무장대와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감시초소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도 곳곳에 있다.

제주 동부지역의 곶자왈 지대에도 4·3 당시 피신처로 이용한 곳들이 많다. 1948년 11월31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가 토벌대의 방화로 불에 탄 이후 주민들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선흘 곶자왈'의 대섭이굴과 목시물굴, 반못굴, 밴뱅듸굴로 피신했다. 목시물굴에서 지내던 주민 수십명은 토벌대에 발각돼 집단 학살됐다. 선흘 곶자왈에 피신했던 채아무개(85)씨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대충 비를 피해 살았는데 그때는 겨울철에도 추운 줄을 몰랐다. 나중에는 신발도 다 떨어져 나무줄기로 동여매고 다녔지만 동상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곶자왈 안의 기후는 겨울에도 따뜻하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강창복(75)씨는 땔감용 나무를 구하러 곶자왈에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곶자왈에 댕겼주만(다녔지만) 그때는 낭덜이(나무들이) 무성하지 않았주. 비어당(베어다가) 땔감해부난(버리니) 클 나무가 어섰주(없었지)."

신평리 지역은 과거 옹기 주산지여서 옹기가마에 썼던 많은 나무들을 곶자왈에서 구했다. 곶자왈 곳곳에는 숯을 구웠던 숯가마 터들도 남아 있다. 동부지역의 선흘 곶자왈에서도 조선시대 말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숯가마 터와 노루잡이용 석축 함정, 생활용수 시설 등이 발견됐다.

곶자왈은 제주사람들의 삶 자체다. 김 연구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의를 빼고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곶자왈 주변에는 언제나 마을이 형성된다. 주민들에게는 지극히 유용한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곶자왈은 어떤 곳?화산지형 보온보습 탁월…난대·냉대림 공존4대 곶자왈 지대 제주면적의 6%빗물 저장 '젖줄·' CO2 흡수 '허파'

제주 올레 11코스(모슬포~무릉), 14-1코스(저지~무릉) 등에 있는 '곶자왈' 어귀에는 "휴대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깊은 숲이므로 절대 경로를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볕이 잘 들지 않을 만큼 수풀이 무성해 길을 잃기 쉬우므로 혼자선 곶자왈에 들어가지 말고, 해가 짧은 겨울엔 오후 3시 이후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내용도 있다. 곶자왈을 다녀온 올레꾼들은 "비밀의 숲" "밀림 같다"는 느낌을 말한다.

곶자왈은 순수 제주어다. <제주어사전>에는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고 적혀 있다.

시민단체 '곶자왈사람들'은 "화산 분출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자갈과 바위)로 쪼개지면서 분출돼 요철 지형을 이루며 쌓여 있기 때문에, 지하수 함양은 물론 보온·보습 효과를 일으켜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이라고 다소 길게 정의한다.

크게 한경-안덕, 애월, 조천-함덕, 구좌-성산 등 4대 곶자왈지대로 분류된다. 곶자왈은 제주시 조천읍 교래, 선흘, 구좌읍 송당을 비롯해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 제주시 한경면 저지 등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서로 광범위하게 분포한 대부분의 숲과 초지를 아우르고 있다. 해발 600~20m 지역에 걸쳐 있는 곶자왈은 113.3㎢로 제주도 전체 면적의 6.1%를 차지한다.

곶자왈의 주요 특성으론 △지하수 함양 △식물종 다양성 △한라산과 해안지역 사이의 환경적 완충작용 등을 들 수 있다.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암괴로 구성된 지질적 특성 때문에, 많은 비가 내려도 빗물이 지하로 유입돼 지하수를 저장하는 제주 사람들의 '젖줄'이다.

식물종 다양성 면에선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한라산 숲과 비교할 만하다.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천량금을 비롯해 주름고사리 등 남방계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한라산 해발 1000m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좀고사리를 비롯해 우리나라 최북단 두만강이나 압록강에도 서식하는 골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이 공존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소비하는 곳이어서 '제주 생태계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곶자왈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곶자왈 한 평 사기' 운동이 벌어졌고, 2007년 4월엔 곶자왈 공유화재단이 출범했다.

하지만 개발 바람을 타고 곶자왈에도 골프장들이 들어서면서 곶자왈을 훼손하고 있다. 김대신 연구사는 "곶자왈이 훼손되면 지하수 함양 기능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식물들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 생태적으로도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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