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영원한 甲은 없다..당신도 어디선간 乙이다

2013. 5. 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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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포스코에너지 사태로 본 甲이 명심해야 할 7가지

'갑을(甲乙)' 관계라는 단어는 계약서에서 나왔다. 계약서의 갑과 을이라는 용어는 쌍방 계약자들을 관습적으로 칭해왔던 일종의 대명사다. 하지만 '갑'은 계약상 유리한 위치에, '을'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계약자라는 '함의'를 담고 있어 이것이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선 계약서에서 '갑' '을' '병'과 같은 용어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이번 남양유업 사태로 현대백화점은 9일 계약서상에서 '갑'과 '을' 등 용어를 빼기로 했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갑을 관계라는 용어가 없다고 해도 힘센 자와 힘 없는 자의 억압된 사회구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돈이 곧 권력으로 연결될 때 더욱 극단적으로 변한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나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중견기업 회장의 호텔 지배인 폭행 등은 모두 '갑을 관계'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비뚤어진 모습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올바른 자본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을이 해야 할 일보다는 소위 '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갈 길이 더 멀다.

매일경제 MBA팀은 국내외 여러 사례에서 갑이 명심해야 할 7계명을 지정했다.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갑질'을 하지 않아야 하는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이며,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염두에 둬야 할 항목들이다. 아래에 소개한다.

순식간에 갑이 을되고 을이 갑된다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갑을 관계에서도 통한다. 내가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는 '갑'이라고 할지라도 일이 어떻게 바뀌어서 '을'이나 '병'이 될지 모른다.

일본 창업컨설팅 회사인 비즈니스뱅크의 하마구치 다카노리 회장은 "대기업에 다니던 우수한 인재들이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소위 '갑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당신의 능력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최대한 몸을 낮추고 약자, 즉 을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수많은 기업이 짧은 시간에 흥망성쇠를 경험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지금 우위에 있는 내가 언제 허리를 굽히는 처지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원한 갑은 없다. 자신이 을이 되고, 병이 될 상황을 상상해라. 함부로 갑 행세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뛰는 갑 위에 나는 갑 있다갑을 관계라는 것은 갑과 을이라는 두 사람, 또는 두 개 기업의 관계에서 성립된다. 즉 이 관계에선 내가 '갑'일지라도 다른 관계에선 내가 '을'일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남양유업 사태에서도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영업사원은 회사 내부 구조로 들어가면 '을' 혹은 '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구조적인 자신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을인 자신이 당하는 압박과 수모를 또 다른 을에게 쏟아부었다. 이는 결국 악순환의 구조를 낳았고, 결국 남양유업 사태가 터지자 최대 타깃은 '슈퍼갑'인 남양유업 스스로가 됐다. 호텔 직원을 폭행한 회장님 때문에 한 회사는 아예 문을 닫게 됐다.

내 가족 누군가는 을이 될수있다감성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라(Put yourself in other's shoes)'는 것보다 더 와닿는 말도 없다.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일에는 사람들은 쉽게 감정이입을 하고, 쉽게 공감하며, 함께 분노한다. 기사마다 빠지지 않는 '50대 가장'이라는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 점도 적지 않다. 자신이 갑이라면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보자.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동생, 우리 형이 바로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는 '을'이라고 말이다.

아마존도 갑행세로 법정行 수모어쩌면 가장 실질적으로 '갑 행세'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최근 일련의 모든 사태는 개인의 잘못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갑 행세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회사 전반의 치부를 드러내게 됐고, 실제로 회사는 순식간에 어려워졌다.

상장사인 남양유업은 이번 사태로 시가총액 1200억원이 증발하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상황을 겪었다. 이미 남양유업의 제품 불매운동은 범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거대 공룡기업 아마존은 전자책 킨들의 액세서리 제조업체인 'M-edge'에서 받기로 한 15%의 커미션을 25%로 제멋대로 올리는 횡포를 부리다가 법정에까지 섰고, 업계 이미지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손해배상까지 하게 됐다.

갑보다는 을이 장기적으로 편하다사실 갑 행세를 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을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 최근 언론을 통해 드러난 '최악의 갑'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웬만한 사람은 을에게 '마음의 빚'을 진다. '을 행세'를 하는 것이 오히려 고단수라고 하는 이유다. '장사의 시대' 저자인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모로코의 성공한 상인 마지드는 '장사를 할 때는 거지처럼 온종일 매달리고 또 매달린다'고 하지만 그 다음날이면 잊는다"고 한 적이 있다. 최고 갑부인 모로코 상인 마지드가 스스로 을을 자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갑이 언제 자신이 갑의 위치를 잃을지 전전긍긍하는 동안, 을은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가면 된다.

SNS시대…'악질 갑' 순식간에 퍼진다과거엔 갑의 횡포가 그들 사이에서만 회자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시대다. 3년 전 통화내용 녹음파일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난 것은 불과 사태가 터진 지 하루 만이었다. 갑의 악질적 행태에도 눈물을 삼키며 참던 을도 이제는 SNS의 힘을 알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엔 무기를 쥔 '갑'이 된다. 내가 악질 갑 행세를 하면, 언젠가 을이 나의 '슈퍼갑'이 되어 나를 몰락시키고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友愛쌓은 을이 갑의 곳간 채워준다갑이 갑처럼 행동하지 않는 순간의 마법을 많은 기업들은 이미 경험했다. 아직도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성행하고 있고, 과도한 커미션 챙기기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갑도 을이 없다면 갑이 아니다. 대기업이 갑이고, 협력업체가 을이라면, 을이 좋은 물건을 납품해야 갑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하도급법 집중교육에 나서고, 시험까지 보며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건강한 '을'이 없으면 '갑'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 현대ㆍ기아차와 같은 대기업에서 최근 들어 품질 문제가 계속 대두되는 것도 부품업체들에 지나친 납품단가를 요구한 데서 나왔다는 지적이 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협력업체를 '을'로 대하지 않고 건전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면 오히려 을은 갑의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과 이를 생산하는 국내 협력업체 코스맥스의 관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상생관계는 양사의 매출 확대라는 결과를 낳았고, '을'인 코스맥스가 오히려 '갑'인 로레알의 미국 공장을 인수하기까지 하는 이변을 낳았다.

[박인혜 기자 / 황미리 연구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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