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케냐서 저지른 先代의 잘못' 배상하겠다는 영국

정시행 기자 2013. 5. 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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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독립투쟁 단체 원로들과 비공개 회담, 과거사 검증키로

영국 정부가 제국주의 말기에 식민지에서 저지른 가혹 행위에 대해 배상 협상을 시작한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남미 등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요청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6일 보도했다.

첫 케이스는 아프리카 케냐다. 영국 외교부는 최근 케냐 나이로비에서 1950년대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항했던 무장투쟁 단체 마우마우 원로들과 비공개 회담을 갖고 과거사에 대한 검증을 거쳐 피해자 배상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이 과거 식민지 시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징용 및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대해 피해 배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다른 태도다.

케냐 다수 민족인 키쿠유족이 조직한 마우마우는 영국과 영국에 협력한 케냐 정부에 맞서 8년간 테러·태업 등의 투쟁을 벌였다. 영국과 케냐 정부는 마우마우 조직원들을 붙잡아 물고문과 화형, 강간 등을 저질렀으며 이 과정에서 총 3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후세인 오냥고 오바마도 당시 마우마우에 참여하다 '손톱 밑으로 바늘 넣기'와 '주리틀기' 같은 고문을 당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이 배상 대상을 '영구적 신체 상해를 입은 생존자'에 한정한다고 해도 총인원이 1만여명에 달하고, 배상액은 수천만파운드(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디언은 사설에서 "어떤 배상도 고문당한 케냐인에게는 충분치 않다"며 "현재 영국의 발전은 수백년 간 노예무역 등 식민 통치에 기반한 면이 크므로 우리는 선대의 모든 과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외교부는 "영국의 과거사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면서 "역사로부터 기꺼이 배운다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갖는 지속적인 특성"이라고 밝혔다.

케냐 식민지 배상에 물꼬가 트인 것은 영국 점령통치 당시 고문과 성폭행 등을 당했던 피해자 파울로 인질리(86), 제인 무소니(74), 왐부가 와 니인기(85) 등 케냐인 3명이 2009년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에서 비롯됐다. 영국 고등법원은 소송을 심리한 끝에 이들 3명이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지난해 10월 판결했다.

영국 정부는 케냐 등 식민지에서 저지른 범죄를 상세히 기록한 수천 건 문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도 드러났다. 가디언은 범죄 관련 문서가 다수 폐기됐으며 본국으로 가져온 상당수 문건들도 영국 외교부 비밀문서에 50여년간 감춰져 있었다고 지난해 4월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이후 37개 전 식민지에서 작성된 8800여건 문서를 공개하겠다고 결정했다.

마우마우 배상 협상 소식은 과거 영국 식민지들을 들끓게 할 것으로 보인다. 지중해 키프로스의 게릴라 단체 에오카부터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와 기니, 예멘의 아덴 지역 등이 이미 영국에 배상 요구를 추진 중이다. 영국 제국주의가 소멸되고 있던 1950~60년대에 영국은 제3세계를 휩쓴 민족주의로 식민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전보다 무자비한 방식을 동원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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