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얼레지꽃길을 아시나요?

2013. 5. 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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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지리산 종주 길에 핀 얼레지꽃

ⓒ 서종규

서리속에 피어나는 얼레지 꽃망울

ⓒ 서종규

조금은 무거운 지리산 종주 길인데, 갑자기 보랏빛 '얼레지꽃'이 두 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무겁게 출발했던 지리산 종주의 발걸음이 날아오르려는 보랏빛 얼레지꽃처럼 가벼워진다. 아직은 이른 봄빛이 무겁게 느껴지는 지리산 종주길이 갑자기 환해진다. 뜻밖의 만남, 기대하지 않은 얼레지꽃은 무거운 나의 발걸음을 사뿐하게 해준다.

봄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있는 꽃이 얼레지꽃이다. 얼레지꽃은 주로 산 능선에 핀다. 남쪽 완도 상황봉에서는 3월 초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전남 조계산 능선, 지리산 바래봉, 강원도 오대산이나 곰배령 등에서 봄이면 늘 그 아름다움을 몰래 드러내는 꽃이다. 그러나 아무 산에나 지천으로 피는 꽃이 아니다. 꽃말은 '질투'다.

5월 3일(금) 아침 지리산으로 혼자 출발했다. 광주에서 아침 6:35분 구례행 버스를 타고 8시 구례에 도착했다. 8:20 지리산 성삼재를 향하는 군내버스를 탔다. 지리산 천은사 입구에서는 아직도 문화재 관람료(1,600원)를 징수한다. 현수막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관람료를 징수하니 무료 통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남원방면을 이용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9시, 지리산 성삼재(1,100m)에서 출발하는 종주 길은 아직도 겨울에서 갓 깨어난 이른 봄의 모습이다. 나뭇가지들은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다. 다만 봄기운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핀 진달래꽃 보다 꽃망울이 더 많은 진달래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는 무거움이 앞선다. 즐거워야 할 지리산 종주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늘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첫날의 일정은 세석대피소까지 약 23km이다.

노고단 대피소 주변에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 꽃잎이 햇살을 받아 밝아진다. 산 아래는 이제 철쭉꽃의 세상이었다. 전남 곡성을 지나면 기차마을에서 섬진강변으로 이러지는 철로 언덕에는 온통 붉은 철쭉들로 이어졌다. 기차보다 길게 붉은 철쭉들이 철로 언덕에 이어져 피어 있었다. 지상의 나무들은 그 푸른 잎들을 다 쏟아내며 초여름을 준비하고 있는데, 지리산 종주길 노고단은 이제 봄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종주길에 핀 남산제비꽃

ⓒ 서종규

지리산 종주길에 핀 현호색

ⓒ 서종규

노고단 고갯길(1500m)을 넘어 반야봉으로 향한다. 나무들은 아직 앙상한 가지들만 흔들거린다. 길은 흙보다 바위들이 더 많다. 보통 지리산 종주길은 온통 바위를 밟고 가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밟히는 바위들 옆에 하얀 제비꽃인 눈에 들어온다. 이 하얀 제비꽃은 '남산제비꽃'이다. 제비꽃은 보통 보랏빛인데, 이 남산제비꽃은 하얗다. 앙증맞다. 꽃말은 '순진무구한 사랑'이라고 한다.

하얀 제비꽃 옆에 보랏빛 '현호색'이 새롭다. 관악기 셋소폰을 여러 개 묶어 놓은 것 같은 현호색은 국토 어디든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봄꽃이다. 꽃말은 '보물주머니, 비밀'이란다. 지리산 종주길에서 만난 현호색도 반갑다. 그만큼 종주길은 이제 겨우 겨울의 그늘에서 벗어난 느낌이기 때문이다.

현호색과 함께 노랗게 그 앙증맞은 모양을 드러내는 꽃이 '양지꽃'이다. 양지꽃도 꽃잎이 아주 작다. 제비꽃 정도의 크기다. 꽃말은 '사랑스러움'이란다. 앙증맞은 양지꽃 옆에 개별꽃도 하늘거린다. '개별꽃'은 꽃잎이 5개 별 같이 생겼다. 그래서 개별꽃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몰라도 하얗게 핀 개별꽃도 능히 사랑스럽다. 꽃말은 '귀여움'이란다. 요즘 유행하는 귀요미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리산 종주길 바위틈에 핀 개별꽃

ⓒ 서종규

모두 지상에서 이른 봄에 볼 수 있는 꽃들이 이제 지리산 종주 길에 피어나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지리산이 그리움으로 부르더니 봄꽃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5월에 느끼는 이른 봄 꽃들의 향연이 겨울 같은 지리산 능선을 그래도 들뜨게 한다.

반야봉에 오르는 입구 노루목에서 반야봉(1732m)에 오르지 않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무거웠던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게 한 것이 눈에 띄었다. 얼레지꽃다. 지리산 능선에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산행중에 만난 꽃 중에서 얼레지는 항상 가장 아름다운 꽃 중의 하나였다. 특히 봄 산행 중에 만난 얼레지는 늘 기쁨을 가득 준다.

얼레지는 꽃잎이 보통 6개 정도 불가사리처럼 펼쳐진다. 어떤 꽃잎은 아래로 뻗어 있기도 하지만, 활짝 핀 꽃은 꽃잎이 위로 꺾여서 모여 있다. 마치 김연아 선수가 뒤로 발뒤꿈치를 잡고 스핀 연기를 하는 것 같다. 꽃들 하나하나가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땅에 앉은 나비가 이제 막 날아오르려는 순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땅에는 수많은 보랏빛 나비들이 비행하려는 찰나의 향연, 아름답기 그지없다.

얼레지꽃길의 시작이다. 삼도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까지 길가에 때로는 군락지어, 때로는 띄엄띄엄 피어 있다. 길가에 핀 얼레지와 눈을 마주치며 걷는 길에, 지리산 종주라는 생각도 잊게 해 준다. 얼레지꽃을 만나는 순간부터 지리산 종주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즐겁다.

지리산 종주길에 가득한 얼레지꽃

ⓒ 서종규

얼레지꽃을 보며 걷는 길은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양지꽃이나 개별꽃, 남산제비꽃들도 같이 피어 있었지만, 얼레지의 설렘에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얼레지를 중심으로 피어나는 봄꽃들이 길가에만 피어 있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느껴지는 것은 꽃들이 사람들을 그리워하여 길가에 옮겨왔을 것 같다는 것이다.

너무 신기한 발견이다. 길가에서 숲쪽을 바라보니 얼레지꽃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길가에는 꽃들이 피어날 수 있게 잡목들이 별로 없는데, 길에서 조그만 숲으로 가면 잡목들이 많이 우거져 있다. 아마 연약한 야생화들이 살지 못할 식생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지리산 종주 길 내내 꽃들은 봄꽃들이 앙증맞게 피어서 그리움을 달래주고 있다.

지리산 종주길에 핀 진달래꽃

ⓒ 서종규

벽소령 대피소 옆에는 진달래꽃들이 더 많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세석 대피소로 넘어가는 길에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사람을 반긴다. 지상은 초여름을 준비하느라 나무들은 그 연한 잎들을 피어내기 시작하는데, 지리산 능선은 이제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세석 대피소로 오르는 북쪽 계단 밑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많지는 않지만 지리산은 아직도 겨울의 입김에서 놓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걷는 산행은 녹는 눈처럼 즐거움의 연속이다.

오후 6시에 세석 대피소에 도착이다. 그동안 2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지리산 산불을 염려하여 종주 능선을 통행금지 시켜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피소 예약도 하지 않고 출발하였는데, 세석 대피소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당황스럽다. 공단 관리자의 말에 의하면 이 시기에는 단체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렵게 마루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충남 금산의 간디학교 중학생 2학년 12명과 교사 3명도 체험활동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다. 삼성엔지리어링 신입사원 160여 명도 지리산을 찾았다고 한다. 전남 공무원 80여 명도 지리산 극기 훈련 차 산행한다고 하고, 서울 신일고 2학년 학생들도 시험 끝나고 지리산 천왕봉 등산에 나섰다고 한다.

간디학교 2학년 곽금성 학생은 지리산 종주가 힘들지 않고 즐겁다면서 "중학교 2학년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서니 좋습니다. 선생님들도 저희들과 지리산 종주에 함께 하시는데, 친구들이 스스로 지리산 종주 산행에 도전하여 이렇게 걷으면서 서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며 간디학교 학생들의 체험활동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리산 종주체험 중인 간디학교 학생들

ⓒ 서종규

지리산 촛대봉에서 본 일출

ⓒ 서종규

4일 새벽 5시 30분에 세석대피소에서 출발이다. 세석대피소 앞에 있는 촛대봉에서 본 일출도 아름답다. 사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말을 하지만 지리산 어디에서든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을 넘어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목에 만난 얼레지꽃은 너무 경이롭다. 세석대피소를 출발하는 아침에 세석평전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아 있다. 아, 얼레지꽃은 서리를 이기고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남산제비꽃이나 앙증맞게 하얀 개별꽃, 양지꽃, 진달래 모두 하얀 서리를 이기고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구나, 지리산 능선에서 피는 봄꽃들은 찬 서리의 시련을 딛고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리 속에 핀 얼레지

ⓒ 서종규

천왕봉에 올라 다시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와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얼레지꽃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종주길이 바로 얼레지꽃길인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얼레지꽃길은 모처럼 찾은 지리산의 그리움을 마음껏 풀어 준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 길가에 뿌려 놓은 싸라기처럼 점점이 피어 있는 봄꽃들은 새로운 그리움으로 자리 잡는다.

11:30 백무동에 내려오니 초여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나무들은 모두 잎들을 피어내며 계곡은 녹음으로 가득하고, 청청청 흐르던 계곡 물은 더욱 신난다. 물가에 분홍빛 산철쭉이 계속 물을 따라 가며 피어 있다. 1박 2일 지리산 종주는 즐거움으로 끝났는데, 몸은 거의 죽을 정도로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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