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새도 옥순봉을 탐하는구나

2013. 5. 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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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내륙 답사1번지' 제천으로 가는 힐링여행

희미한 아침 안개가 희고 푸른 바위들이 죽순처럼 우뚝 우뚝 솟은 옥순봉의 속살을 가린다. 그 자태가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단양 관기 두향이 언감생심 옥순봉을 탐했을까. 수묵화로 변신한 옥순봉이 나르시스처럼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물든 청풍호에 제 얼굴을 비춘다. 순간 수면을 박차고 날아 오른 물오리 한 쌍이 허공을 향해 치솟는다. 그리고 날개를 저어 김홍도의 '옥순봉도' 속으로 날아든다.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를 품은 충북 제천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힐링의 고장이다. 산자수명한 이곳에서는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을 통해 만나는 모든 자연이 힐링의 매개체로 마음의 상처까지도 포근하게 보듬는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찾아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한 곳이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청풍호반을 구불구불 달리는 호반도로를 수놓았던 벚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리자 청풍호에 발을 담근 이 산 저 산에서는 산벚나무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하얀 순백의 산벚나무 꽃이 연두색 신록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곳은 청풍면 '만남의 광장'.

청풍문화재단지를 비롯해 번지점프로 유명한 청풍랜드를 한눈에 조망하는 '만남의 광장'은 자드락길 제1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드락길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하는 말이다. 제천시가 청풍호 주변에 조성한 7개 코스 62㎞로 뱃길 4㎞를 포함하고 있다. 자드락길 중 녹색마을길(4코스)과 옥순봉길(5코스)의 일부는 경치가 수려한 찻길로 드라이브 명소.

청풍호는 1985년에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단양군·제천시·충주시를 구절양장으로 흐르는 남한강과 주변 마을이 수몰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 유람선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청풍호는 호수를 따라 단양팔경 등 절경이 이어져 '중부내륙 답사 1번지'로 불린다. 공식 명칭은 충주호이지만 제천 사람들은 제천지역의 호수를 청풍호로 부른다. 충주호냐 청풍호냐를 둘러싸고 인근 지방자치단체 간에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한강과 낙동강이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고, 하나로 연결된 바다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으로 불리듯 제천의 호수를 청풍호로 공인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청풍면 '만남의 광장'에서 호반도로를 타고 달리다 청풍대교를 건너면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보물로 지정된 한벽루 등 청풍에 산재한 문화재 53점을 한 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물이 차면서 산에서 언덕으로 바뀐 청풍문화재단지는 해마다 오월이면 산벚꽃과 신록이 어우러져 한 폭의 파스텔화로 거듭나 실향민들의 심금을 울린다.

청풍문화재단지 아래에 위치한 청풍나루는 유람선을 타고 단양 장회나루까지 산천유람을 떠나는 출발점. 산 중턱에 별장처럼 들어선 E.S.리조트를 비롯해 금수산, 월악산 등 산자수명한 제천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옥순대교를 통과한 유람선이 첫 번째로 만나는 절경은 해발 268m 높이의 석벽인 옥순봉으로 단원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에 등장하는 '옥순봉도'의 실제 모델.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한 옥순봉은 조선시대 이래 줄곧 제천(청풍) 땅이었지만 단양팔경으로 유명해지면서 단양 땅으로 인식돼 제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여기에는 옥순봉을 사랑한 단양 관기 두향과 두향을 사랑한 퇴계 이황의 러브스토리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두향으로부터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는 청을 받았다. 하지만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퇴계는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죽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고 해서 옥순봉(玉筍峰)으로 명명하고 단양에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을 새겼다. 안타깝게도 글은 호수에 잠기고 퇴계를 그리다 남한강 푸른 물에 몸을 던진 두향은 장회나루 맞은편 산기슭에 묻히는 바람에 죽어서도 옥순봉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다.

청풍대교에서 옥순대교에 이르는 약 12㎞의 호반도로는 금수산 자락을 에두르는 자드락길의 일부로 걷거나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이 길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마을은 도화리. 마을 이름처럼 길섶에는 복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조선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지은 정인지가 충청도 관찰사 시절에 '복사꽃 촌길은 신선의 지경이요, 단풍잎 시내와 산은 금수의 병풍이다'라고 쓴 시는 아마도 이 길에서 만난 청풍의 풍경일 것이다.

도화리에서 솟대를 전시한 능강솟대문화공간을 거쳐 산야초마을에 들어서면 나비 모양의 육교가 반긴다. 산야초마을은 약초와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두메산골로 약초를 주제로 한 체험마을로 거듭나면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청풍호를 에두르는 자드락길 중 가장 풍경이 수려한 곳은 옥순대교 남단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괴곡성벽길. 삼국시대에 쌓은 성벽이 있었다는 괴곡성벽길은 9.9㎞로 청풍호에 발을 담근 두무산 줄기의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충북의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다불리를 만난다. 세 가구가 사는 다불리는 지금도 소로 농사를 짓는 첩첩산골.

괴곡성벽길은 여느 자드락길과 달리 청풍호를 발아래 두고 걷는 특별한 트레일이다. 청초한 얼굴의 붓꽃을 비롯해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꽃과 싹을 틔운 트레일은 양탄자처럼 푹신푹신하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청풍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송골공골 맺힌 땀을 식혀준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 번 거듭하면 데크로 이루어진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가 쉼표를 찍는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설치된 데크는 청풍호를 비롯해 옥순대교, 옥순봉, 금수산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포인트. 청풍호 푸른 물을 하얗게 가르는 유람선이 김홍도의 '옥순봉도'에 그려진 나룻배처럼 운치 있다. 우암 송시열이 '청풍관 중수기'에서 "청풍의 관리들은 매화꽃이나 달빛의 점수를 매길 뿐"이라고 한 까닭을 알고 싶으면 '중부내륙 답사 1번지'로 불리는 청풍호를 봄날이 가기 전에 찾아볼 일이다.

제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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