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희씨가 올레길에 밥집을 차렸네!

2013. 4. 2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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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 팽나무

제주 올레 1코스 종달리 소금밭 앞의 팽나무

ⓒ 김민수

제주 올레는 내가 제주도를 떠난 이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흥에서 종달리와 해안도로를 따라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 해안까지 이어지는 올레 1코스는 '처음(시흥)과 끝(종달)'을 동시에 만나는 올레코스입니다.

그곳 종달리에 6년 여 살았었기에 그 당시 '종달리'에 사셨던 분들은 지금도 대부분 알고 지냅니다. 2006년 떠나온 뒤,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찌어찌 되었더라는 소식들이 가장 반가웠습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잘 된 아이도 있고, 아직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소식은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 순희 밥상

내가 살던 종달리, 순희씨가 밥상집을 차렸다.

ⓒ 김민수

출장차 1박 2일로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1박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종달리 순희씨가 밥집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서 한 끼는 먹고 가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습니다.

순희씨는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권사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제가 순희씨라고 하는 이유는 성을 뗀 '순희'라는 이름만 들으니 마치 시골처녀의 순박한 이름을 보는 듯해서 입니다.

"순희 밥상이라, 이름 참 순박하고 좋네요. 저 이제 순희씨라고 부를래요."

"호호호, 순희씨라고 오랜만에 불려지니 좋네요.""일단, 순희 정식을 주세요. 제가 맛나면 선전해 드릴게요."

▲ 순희 밥상

그냥 가족이 먹는 밥상 그대로 나왔다. 인연이 있어 옥돔이 덤으로 얹어졌고, 햇고사리로 만든 고사리국이 나왔다.

ⓒ 김민수

순희 정식에는 요즘 뜯어온 햇고사리국과 옥돔과 제주오겹살두루치기 등이 나왔습니다.

"맨날 이렇게 차려주면 적자 나겠네."

"옛정을 생각해서 조금 더 정성껏 차린 거쥬. 그래도 손님 오면 집에 있는 거, 맛난 거 다 주고 싶어요."

"장사가 그게 아닌데...아무튼, 맛나게 해서 올레꾼들에게 추억의 밥상을 차려줍써."

"호호호, 그럼 이거 선전해 주실 거예요?"

"글쎄요. 이건 노골적인 선전이라 기사화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사심을 버리고 한 번 써보기는 할게요. 기대는 마세요."

그랬습니다. 그간 < 오마이뉴스 > 시민기자를 하면서 세세한 가정이야기를 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간접광고에 해당하는 글을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인이라 그런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밥값도 낼거고, 공짜로 제공받는 것도 없으니(옥돔은 순전히 옛 정으로 받은 거다) 일단 써보기는 하기로 했습니다.

▲ 순희밥상의 메뉴

순희정식과 그날의 칼국수 두 가지다. 그날그날 공수되는 재료로 올레꾼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싶단다. 딱 두 가지 메뉴에만 전념하겠단다.

ⓒ 김민수

아기자기한 소품들, 순희씨의 지인들이 만들어 준 것들입니다.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순희 밥상'에서 번개를 쳤습니다. 일을 마치고 달려온 지인들. 열댓명이 작은 식당에 북적거렸습니다.

떠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고, 기꺼이 번개에 응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그러나 7년의 세월은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를 남겼고, 아이들은 부쩍 커버려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릴적 그렇게 나를 무서워하던 녀석은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되었는데,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답니다. 다행입니다.

▲ 강아지

순희밥상집 앞을 어슬렁 거리는 강아지가 진정한 올레꾼이 아닐까 싶기도 한 밤이다.

ⓒ 김민수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 늦은 밤 종달리 골목길을 걷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따라옵니다. 전형적인 제주의 개, 쌍꺼플까지 있는 백구입니다.

제주 올레길, 그 중에서도 1코스를 걷다가 허기를 달랠 일이 생기면 종달리 소금밭 앞에 있는 팽나무 앞에 있는 '순희 밥상'을 찾아보세요(간접 홍보가 아니라 여행 팁입니다). 그러면 그냥 제주분들이 먹는 밥상의 맛을 저렴한 가격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엇저녁에 성게미역국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그 '성게미역국'이 나왔습니다. 그날 아침은 그냥, 가족처럼 함께 나눴습니다. 올해는 제주 바다가 차가워서 종달리 바다의 성게가 거반 죽었다고 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제주를 떠난 후, 제주도를 가면 거반 비오는 날입니다. 그냥 훌쩍 제주도를 떠난 배신감을 그렇게 표현하나 봅니다.

서울에 올라와 맞이한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이런 날, 거기 있었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이렇게 좋은 날, 그곳을 거니는 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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