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도 봤을까

2013. 4. 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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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돈삼 기자]

월출산 큰바위얼굴. 구정봉 바위가 영락없는 큰바위얼굴이다.

ⓒ 이돈삼

바위가 영락없는 사람이다. 머리부터 이마, 눈, 코, 입, 수염까지 선명하다. 중후한 남성의 모습 그대로다. 미국 화이트마운틴의 암석처럼 조그마한 것도 아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바위얼굴과도 비교할 수 없다. 얼굴의 길이가 자그마치 100여 미터나 된다. 큰바위얼굴이다. 국립공원 월출산에 있다.

큰바위얼굴이 품은 마을을 찾아간다.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난 전라남도 영암의 구림(鳩林)마을이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갖고 도예가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인물이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시조로 불린다.

왕건의 책사였던 고려 최지몽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구림마을로 향하면서 큰바위얼굴이 떠오르는 연유다.

왕인박사 유적지의 천인천자문. 왕인박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 이돈삼

왕인박사 동상. 국립공원 월출산을 배경으로 서 있다.

ⓒ 이돈삼

지난 11일, 먼저 찾아간 곳은 왕인박사유적지. 드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벚나무가 벙글벙글 꽃을 피웠다. 이내 마음도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잔디밭 한쪽에 서있는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이 눈길을 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명사 1000명이 육필로 천자문을 한 자씩 쓴 것을 석공이 돌에 새긴 것이다. 왕인박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월출산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왕인박사 동상도 서 있다.

왕인박사의 숨결은 왕인사당과 영월관, 박사의 묘에도 배어있다. 주변에 봄꽃도 활짝 피어있다. 유적지와 어우러지는 꽃에서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그 꽃길을 따라 성천(聖泉)으로 간다. 왕인박사가 마셨다는 샘물이다. 물 한 모금으로 왕인박사와 호흡을 한다.

여기서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왕인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담론을 나누던 문산재(文山齋)와 만난다. 문산재 뒤편에 석굴인 책굴(冊窟)도 있다. 박사가 혼자 조용히 공부했다는 곳이다.

왕인박사의 묘. 왕인박사유적지 안에 있다.

ⓒ 이돈삼

왕인박사가 마셨다는 성천. 왕인박사 유적지에 있다.

ⓒ 이돈삼

성천에서 발걸음을 돌려 구림마을로 간다. 길이 왕인박사 유적지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오른편에 구림도기 가마터가 있다. 경사면을 이용해 아래쪽에서 굴을 파고 들어간 반지하식 단실가마다. 밑부분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독사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 황토로 그릇을 빚고 유약을 칠하는 시유도기(施釉陶器)를 굽던 통일신라시대의 가마터다.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 이 일대가 한국도기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증표다. 그 흔적을 가까운 영암도기박물관에서 만난다. 구림마을의 도기생산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 일대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옹관묘도 전시돼 있다.

영암도기박물관. 구림마을 도기생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상대포와 상대정.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떠났던 것으로 알려진 포구다.

ⓒ 이돈삼

도기박물관 앞에 있는 상대포(上臺浦)도 역사적인 현장이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곳이다. 신라말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최치원이 여기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람은 물론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였다. 요즘말로 국제항구였다.

하지만 오래 전 간척사업이 이뤄져 옛 흔적을 찾기 힘들다. 단장된 포구에서 목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나는 왕인박사 흉내를 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박물관 앞 솔숲에 있는 회사정(會社亭)도 애틋하다.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구림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다. 마을의 규약을 어기는 사람을 훈계하고 어려운 일에 처한 주민을 합심해 돕는 마을 대동계(大洞契)의 모임장소였다. 3·1운동 때는 독립만세를 불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물관 한쪽에 독립운동 기념탑이 서 있다.

회사정 앞 노송. 구림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다.

ⓒ 이돈삼

육우당 현판. 석봉 한호 선생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회사정 앞으로 흐르는 구림천을 건너면 대동계사가 자리하고 있다. 대동계사 옆에 있는 육우당(六友堂)의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편액을 우리나라 3대 명필로 꼽히는 석봉 한호 선생이 썼단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영계 신희남)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공부하면서 남긴 흔적이다. 그의 어머니가 떡장사를 한 곳은 학산면에 있는 독천시장이었다고 전해진다.

하미술관도 마을에 있다. 영암출신 재일교포 하정웅 선생이 모은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 27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 옆으로 난 돌담길을 따라가니 국사암(國師巖)이다. 도선국사의 출생에 따른 전설이 얽혀있는 하얀 바위다.

도선의 어머니가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 온 푸른 외 하나를 건져먹었는데 임신을 했단다. 당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이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낳은 아이를 이 바위 위에 갖다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날개로 덮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도선이라는 얘기다.

하미술관 전경. 영암출신 재일교포 하정웅 선생이 기증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 이돈삼

구림마을 한옥과 돌담 풍경. 오랜 역사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난다.

ⓒ 이돈삼

마을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비둘기 구(鳩)에 수풀 림(林)을 쓴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마을의 역사만도 무려 2200년이나 된다.

늙은 느티나무와 청태 낀 기왓장의 정자,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택이 즐비하다. 400년 넘게 보존된 창녕 조씨 종택도 있다. 호은정, 죽림정, 간죽정, 요월정, 쌍취정 등 전통사회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렁이는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린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고택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매혹적인 풍광이 마음속까지 꽃바람 들게 한다. 바람 불어도 좋은 4월의 구림마을이다.

고택이 즐비한 구림마을. 마을 풍경에서 오랜 역사가 묻어난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서광주 나들목으로 나가 13번국도(나주·영암 방면)를 타고 영산포, 신북을 거쳐 영암까지 간다. 여기서 독천 방면으로 81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구림·상대포로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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