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술에 취해 얼굴 빛도 연분홍이구나

2013. 4. 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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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면천면 거리에 심은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20일과 21일 면천읍성 앞에서 진달래축제가 열렸다.

ⓒ 심규상

"한 잔 해야쥬.""그려 그려."

술이 주인공인 축제가 있다. 술 마시는 일이 당연한 축제가 있다. 매년 진달래꽃이 만개할 쯤 열리는 '면천 진달래 축제'(당진시 면천면, 대회장 이성우)다.

면천면 거리 가로수도 진달래다. 때 맞춰 활짝 피었다. 제 13회 진달래축제가 열린 20일과 21일 면천읍성 주변은 일 년 중 유일한 차 없는 거리다. 읍성 앞에는 주요무대가 차려지고 주변은 천막이 즐비하다. 시골장터에 온 듯 왁자지껄하다. 면민 전체가 모두 참여한 듯 축제거리가 사람들로 꽉 찼다. 풍물대회, 진달래시낭송, 진달래어린이장사씨름대회, 두견주마시기대회 등 이틀내내 눈 돌릴 틈 없이 행사도 다양하다. 주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어린이장사씨름대회에는 당진시 소재 각 초등학교 대표들이 출전했다.

축제장 곳곳에 빠지지 않은 것, 바로 면천 두견주

축제장 주변 소머리국밥집 등 음식을 파는 곳마다 빠지지 않는 하나를 찾자면 '면천 두견주'다. 축제거리에도 어김없이 두견주 시음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명인들이 직접 나서 한잔 술을 권한다.

연한 흙빛을 띤 두견주의 첫 맛은 부드러운 감칠맛이다. 약간의 끈적함이 느껴질 정도로 단맛이 깊다. 진달래꽃 향을 닮은 묵직히면서도 여린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알코올 함유량이 18%에 이르는데도 술술 넘어간다. 뒷맛은 알싸함이 느껴질 만큼 깔끔했다. 맛에 취해 또 잔을 내밀었다.

어린이 장사씨름대회는 면천 진달래축제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다.

ⓒ 심규상

면천 두견주의 주재료는 찹쌀과 진달래꽃이다. 온 산이 연분홍으로 꽃물을 들이는 이맘때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진달래꽃잎을 따기 위해서다.

"키로(kg)당 생꽃잎을 2만 원에 수매해. 꽃수술이 섞어 있으면 안 돼. 수술은 죄 골라내야 돼"

진열대 위에 잘 마른 진달래꽃이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들어보니 얇은 잡지책 한 권 무게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게 수 십만 원어치여, 생 꽃잎 일 키로 말려봐야 한 주먹도 안 돼. 꽃잎 15키로를 말리면 딱 1키로야."

면천 두견주을 시음하고 있는 주민들

ⓒ 심규상

진달래와 찹쌀, 통밀, 누룩을 섞어 만든 진달래술

ⓒ 심규상

면천두견주보전회 최우순(68)씨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진달래꽃은 잘 건조시켜 찹쌀 누룩을 섞어 발효 과정을 거친다.

"꽃잎이 많이 들어가. 한 단지(항아리) 담는 데 어른 손으로 네 움큼은 넣어야 돼. 그래야 담황색 술빛이 살아나."

면천두견주는 밑술을 빚는 날로부터 꼬박 100일이 지나야 맛볼 수 있다. 발효와 숙성, 침전과 저장에 필요한 시간이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면천의 안샘 물로만 술을 빚는다.

"백일씩 걸리니 대량생산은 할 수가 없어. 그만큼 손이 많이 가."

면천두견주는 말 그대로 약주다. 아니 명약주다. 두견주 분석 결과 진달래꽃에 들어 있는 '아지라인'성분이 항산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해작용은 물론 신경통, 부인냉증, 류마티즘 등 성인병에 효과가 큰 것도 '아지라인' 성분 때문이란다. 여기에 유기산, 각종 비타민, 미네랄 등이 다량 함유돼 혈액순환촉진과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돈 벌자고 파는 게 아녀, 문화재 보존인께"

면천두견주보존회 최우순 회원(68)

ⓒ 심규상

"대대손손 집집마다 약술로 담아 먹던 거여. 나도 집안 어른들한테 배운 거지."그러고 보니 면천 두견주에 얽힌 구전 설화가 예사롭지 않다. 이야기꾼의 얘기를 들어보자.

"서기 918년 고려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 있지. 이름을 꼽자면 왕건, 홍유,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쯤 될 거야. 그중 면천 복씨인 복지겸이 원임 모를 중병을 앓게 돼 면천에서 요양을 하게 돼. 복지겸의 병세는 날로 악화됐는데, 당시 열입곱 살이던 복지겸의 딸 영랑이 저기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지. 기도가 끝나는 날 꿈에 신령이 계시를 한거야.

'아버지 병을 고치려면 아미산에 만개한 두견화(진달래꽃) 꽃잎하고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현 면천초등학교 뒤)의 물로 빚어야 한다'고 일러 준 거야. 또 술은 백 일간 빚되,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리라'고 했지.

신령의 계시대로 술을 빚어 드리고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렸더니 아버지 복지겸의 병이 씻은 듯 나은 거야. 정성으로 빚어 아버지 생명을 구한 술이 면천 두견주야."

영랑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는 천연기념물 제 82호로 지정됐다. 술을 빚는 데 쓰는 안샘은 두견주뿐만 아니라 면천막걸리를 빚는 데 쓰인다. 여름이면 인근 시민들을 불러 모으는 콩국수 또한 안샘 물을 사용한다.

천년 신비의 진달래꽃술은 지난 1986년 국가문화재지정전통민속주로 선정됐다. 국가지정 민속주는 전국에서 김포 문배주와 경주법주, 면천 두견주 뿐이다. 8가구 13명이 면천두견주보존회(회장 김현길)를 만들어 술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진달래심기운동을 벌이다 지난 2001년 '진달래축제'를 처음 열었다. 이후 꽃술을 즐기며 진달래 심기와 가꾸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당진시는 영랑공원에 있는 안샘물을 면천을 찾는 누구나 맛볼 수 있도록 정비중이다.

면천 두견주와 진달래 화전으로 차린 술상

ⓒ 심규상

"큰 병(700ml)은 11000원(360ml, 6000원)에 파는데 솔직히 원가도 안 나와요. 찹쌀 100키로그램(kg)에 200병 밖에 안 나오거든요. 돈 벌자는 게 아니라 문화재 보존하자고 하니까 밑지고 파는 거지."

축제 마지막 날인 21일. 약 천 여명의 주민들이 축제장을 서성인다. 대부분 낯빛이 붉다. 영랑이 백일 기도하던 인근 아미산은 진달래 꽃물로, 사람들의 얼굴은 두견주와 면천막걸리로 온통 연분홍 꽃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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