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좋은 날, 훌쩍 떠나자!

2013. 4.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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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정신의 일탈인데도 감성은 새 살처럼 솔솔 돋아나기 시작한다. 다섯 명의 < 엘르 > 피처 에디터가 취향대로 스타일링한 서울 밖 24.5시간은 '여행도 습관이다'라는 해석을 안긴다. 떠나고 싶다면, 이렇게 훌쩍.

제주 여행의 좌표는 언제나 대평리다. 먹거리도 좋고, 즐길거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온정을 향한 안테나가 여행의 주파수를 맞춘다. '삶도 여행도 사람이 답'이라는 자신감은 게스트하우스 '곰씨비씨'의 성게 같은 언니들을 만나 완고해졌다. 까칠한 듯 보이지만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그네들은 하루와 종일, 무쌍(개들!)이와 무덤덤한 균형을 이룬 일상적인 삶으로 나를 치유하면서, 재단된 나를 버리고 온전히 미칠 수 있는 시간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여행에서 비롯된 감정 과잉은 어느새 무뚝뚝하던 경상도 여자를 감탄사 남발형 인간으로 돌아 세웠다. 이날 동행한 포토그래퍼와 하루 동안 내뱉은 감탄사는 주로 "좋타!"였다. 백만 번쯤 내뱉었나 몰라. 햄버거 세트와 맞바꾼 아침 식단 '엄마밥 정식'을 맛보던 때를 기점으로 마늘 밭이 무진장 일렁이는 풍경 속에 갇혔을 때, 한 번 엉덩이를 붙이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마법 의자'에서 일광욕을 즐길 때, 절벽 언덕 '박수기정(올레길 9코스)'에 올라 색색 가지 지붕 마을을 기분 좋게 관음할 때,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과 드문드문 솟아오른 제주 야생화 '갯무꽃'을 마주했을 때, 출렁이던 이날의 바다가 '프루션 블루'와 '피코크 그린'이 믹스된 공작 깃털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막이(제주 막걸리)'와 한라산을 꿀꺽꿀꺽 삼키던 순간, 밀면과 홍해삼, 고등어 회가 차려진 밥상 앞에서 과식을 강요당할 때…. 여행을 마무리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올레길 창시자 서명숙 이사장을 만났다. "가파도가 진짜 이뻐. 올레길 코스가 다 보이거든. 섬 절반 이상이 청보리 밭이고. 거긴 꼭 가야지." 대평리 주민들과 모의한 열흘 후의 여정은 가파도 청보리 밭으로 정해졌다. 가득 찬 기대가 곧 일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눈을 떴다.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 당도한 부산에서의 아침이었다. 그래도 역시 하나보단 둘, 둘보단 넷. 차에서 그리 떠들어놓곤 느지막이 도착한 부산의 대폿집에서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시며 수다를 청산했던 지난 밤이 아직도 유쾌했다. 부근의 식당에서 재첩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고 길을 나섰다. 첫 행선지는 차로 해운대에서 30분만 달리면 다다르는 기장군에서도 목가적인 풍경과 예술적인 손길이 공존한다는 대룡마을. 소박한 인상의 마을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자리한 예술적 감수성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많은 방문객들의 사연이 벽면을 채운 '무인 카페'에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냉장고의 음료수를 꺼내 마신 다음 지불은 셀프. 양심도 셀프. 걷기 좋은 마을을 1시간가량 휘휘 돌아 나와서 찾은 곳은 신라 문무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장안사다. 사찰 주변을 뱅 돌아 가는 울창한 대나무숲에서 올해 초에 다녀왔던 교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을 떠올렸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피톤치드를 잔뜩 흡입했지만 허기가 돌았다. 가까운 기장시장을 찾았고 기다림 끝에 들어선 생갈치 전문점 '몬난이 식당'에서 내 인생의 갈치를 만났다.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고등어만큼 실한 크기의 갈치가 별이 다섯 개! 회로, 무침으로, 구이로, 찌개로 흡입하고 또 흡입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바닷바람이나 쐬자며 대변항으로 달렸다. 백사장 드리운 바다도 좋지만 배가 있는 항구는 떠났다가도 돌아올 고향 같아서 좋다. 전망 좋은 달맞이고개엔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경쟁적으로 터를 잡았지만 우린 드립 커피 전문점 '해오라비'를 찾았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가 맛있었고, 커피 향이 도는 카페도 오랜만이었다. 어둠이 내린 달맞이고개에서 불을 환하게 밝힌 플리마켓을 지나 광안리로 향했다. 화려한 광안대교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는 광안리에서 찾은 곳은 '진미언양불고기.' 달달하면서도 알싸한 마늘 맛이 배인 언양불고기에 소주 한 잔까지. 그리 배를 채우고도 소문난 떡볶이집이 가깝다 하여 발품을 팔았다. 그깟 떡볶이 따위 대수냐고? '다리집'의 큼직한 쌀떡볶이와 부드러운 오징어튀김을 먹어보지 못했으면 말을 마세요. 배가 불러서 1인분만 주문했다가 결국 1인분 추가. 결국 포만감만큼이나 꽉 찬 하루의 회포를 풀고자 다시 동래의 대폿집으로. 부산의 밤이 다시 얼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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