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따라 뉘엿뉘엿.. 실랑이도 정겹습니다

2013. 4. 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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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돈삼 기자]

해안 벼랑을 따라가는 여수 금오도 비렁길. 명품 트레킹 코스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모처럼 단체 답사에 참여했다. 지난 6일이다. 목적지는 금오도 비렁길이다. 금오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속하는 섬. 예부터 황장목이 나는 곳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황장목은 궁궐을 짓거나 고칠 때 쓰던 나무다. 덕분에 원시림이 잘 보존됐다.

섬이 검게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고 해서 '거무섬'으로도 불렸다. 지금도 소나무와 들꽃 등 갖가지 초목이 우러졌다.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풍광도 예쁘다.

굴등전망대와 비렁길. 금오도 비렁길은 아찔한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져 있다.

ⓒ 이돈삼

여수 금오도 비렁길. 한편은 숲이, 다른 한편은 다도해 풍경이 펼쳐지는 해안 벼랑길이다.

ⓒ 이돈삼

비렁길에 섰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지역 사투리. 길이 들쭉날쭉한 섬의 해안절벽 벼랑을 따라 이어져 있다. 주민들이 땔감을 얻고 낚시하러 다니던 그 길이다. 이웃마을로 마실 다니던 길이었다.

여수 버전의 둘레길인 셈이다. 지난 2010년 첫 선을 보였다. 함구미마을에서 직포마을까지 8.5㎞에 이어 이듬해 장지마을까지 10㎞를 더해 모두 18.5㎞로 완성됐다.

함구미마을에서 비렁길 안내도를 훑어보고 오솔길에 들어섰다. 돌담이 높다. 풍경도 다소곳하다. 적막감까지 느껴진다. 통통대는 뱃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바람결도 다사롭다. 새봄의 기운이 묻어난다. 섬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몸과 마음의 긴장도 풀린다.

방풍나물을 채취하던 이성록 할아버지. 관광객에 줄 생각을 비닐봉지에 방풍나물을 담고 있다.

ⓒ 이돈삼

밭에서 한 할아버지(이성록·78)가 무언가를 채취하고 있다. 관심갖고 보니 방풍나물이다. 중풍과 산후풍, 당뇨를 막아준다고 소문 나 있는 나물이다. 남자들의 바람기도 잡아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요즘 방풍나물이 제 철인가 싶어 할아버지한테 물었더니 철이 따로 없단다.

"1년 365일 해. 생초로 팔어. 나물로도 무쳐먹고, 쌈 싸먹어도 맛나. 여름엔 말려갖고 팔아. 맛봐바. 생으로 먹어도 맛나. 농약 안 했능께 걱정허덜 말고."

쌉싸래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일행 중 한 명이 한 봉지만 팔라고 하니, 할아버지가 한 움큼 담아준다. 그러면서 돈은 필요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팔라고 한 거 아녀. 그냥 가져가. 자석 같아서 주는 겅께."

"아니에요 할아버지. 받으세요."

"돈 필요 없당께. 그런 거 생각 안 해. 그냥 갖고 가."

비렁길에서 만난 동백숲길과 시누대길. 해안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만나는 색다른 풍경이다.

ⓒ 이돈삼

비렁길 조형물과 미역널방. 금오도 비렁길의 대표적인 풍광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실랑이가 정겹다. 타닥타닥 일행의 발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긴다. 길이 섬의 허리춤 높이로 남서해안의 벼랑을 따라 간다. 왼편은 녹색의 숲이다. 생강나무, 잰피나무, 다래나무가 눈에 띈다. 발밑에 간간이 고란초도 보인다. 마삭줄도 지천이다. 숲의 향기가 달콤하다.

오른쪽으로는 올망졸망 다도해를 품은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풍광이 매혹적이다. 걷는 길도 평탄하다. 따뜻한 봄햇살도 생생하다. 동백꽃 활짝 핀 터널도 아름답다.

얼마나 걸었을까.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하다. 절벽 위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나란히 서서 어딘가를 가리키는 일가족도 보인다. 미역널방이다. 마을사람들이 지게에 짊어지고 온 미역을 널었다는 곳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절벽과 바다에 탄성이 멈추질 않는다. 몇 시간을 바라봐도 아깝지 않을 풍경이다. 비렁길의 대표적인 경물 가운데 하나다.

오래 된 비자나무와 콩난. 비렁길에서 만나는 색다른 식생이다.

ⓒ 이돈삼

유채꽃 활짝 핀 비렁길. 이 풍광이 스크린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 이돈삼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벼랑 아찔한 길에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걷기에 불편이 없다. 오른편으로 바다를 보며 데크를 따라 가니 수달피벼랑이다. 수달이 올라와 놀았다는 곳이다. 길가에 벤치도 놓여 있다.

송광사 터를 지나니 노란 유채꽃과 어우러진 바다풍광이 멋스럽다. 황홀하다. 그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도 한가롭다.

함구미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쉼터가 있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걷는다. 밭에 방풍나물과 취나물이 자라고 있다. 머위대 내음도 코끝을 간질인다. 섬주민들의 소득원이 되는 남새들이다.

비렁길에서 만난 초분. 여행객들에게 섬마을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이돈삼

남새밭을 지나니 오른편으로 초분(草墳) 한 기가 보인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초분은 오래전 섬에서 많이 행해졌던 이중 장례풍습이다.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가묘 형태로 쓴 것이다. 여기서 2∼3년 지낸 다음 뼈만 추려 본장을 한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가족을 배려한 섬 특유의 장례법이다. 섬사람들은 전통의 미풍양속이라고 믿는다. 오래된 비자나무를 감싸고 있는 콩란도 눈길을 끈다.

신선대도 발길 오래 머물게 한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신선도 쉬어갔다는 곳이다. 아찔한 절벽 위의 바위가 쉼터 역할을 해준다. 풍광도 거칠 게 없다. 몸을 살짝 적신 땀도 식혀준다. 저만치 나로우주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비렁길을 따라 뉘엿뉘엿 걷는 여행객들. 비렁길은 이렇게 해안 벼랑을 따라 섬을 돌아간다.

ⓒ 이돈삼

바닷가에 미역을 널고 있는 두포주민. 명품 비렁길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 이돈삼

시간을 보니 당초 예상보다 많이 지체됐다. 여기저기 해찰하며 뉘엿뉘엿 걸은 탓이다.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도착한 곳은 두포마을. 함구미마을에서 시작된 비렁길 1코스의 도착지점이다. 마을이 아늑하다. 풍광도 정감 있다. 마을주민이 바닷가에서 가사리와 미역을 말리고 있다.

"돌에서 뗘왔지라. 저기 바닷가 돌에서. 이렇게 빛이 날 때 널어노믄 시간이 말려주겄지라."

그이의 말에서 삶의 여유가 묻어난다. 속도에서 벗어나 땅도 보고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보며 살라는 말로 들린다. 주변도 살피면서. 명품 비렁길을 더 빛내주는 사람들이다.

해안 벼랑 끝에 선 일가족. 비렁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이돈삼

해안 벼랑을 따라 가는 여수 금오도 비렁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누리길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순천나들목으로 나가 여수까지 간다. 금오도로 가는 배는 돌산도 신기항이나 여수항여객터미널에서 탄다. 신기항에선 금오도 여천항으로 연결된다. 소요시간 25분. 주말이나 휴일엔 배편도 늘어난다. 여수항에서는 비렁길이 시작되는 함구미항으로 간다. 소요시간 1시간20분. 백야도에서도 들어가는 배가 있다. 섬에는 미니버스 2대와 택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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