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마시는 소나무, 한 번에 열두 말이나..

2013. 4. 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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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연옥 기자]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날이 좋아 일곱 살 어린 친구와 어디든 떠나기로 했다. 팍팍한 생활 속으로 우리 등을 계속 떠밀고 있는 일상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나는 인터넷 검색을 서둘렀다. 일상은 우리들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낭만, 푸더덕거리는 자유, 그리고 달콤한 꿈 같은 삶의 단맛을 자칫 잃게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달 10일, 우리는 경북 청도를 향했다. 일상의 무거운 짐을 삶의 한편으로 밀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더욱이 마음이 동하면 훌쩍 같이 떠날 수 있는 여행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운문사 대웅보전이 두 개인 까닭은?

비구니 사찰로 이름난 청도 운문사는 소나무 길로 시작된다.

ⓒ 김연옥

이름난 비구니 사찰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운문사(雲門寺,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께.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던 절집으로 고려 말 일연 선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기도 하다.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삼층석탑(보물 제678호), 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 등 보물 8점과 천연기념물 1점이 있는 큰 절집인 운문사는 번잡한 세상일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소나무 길로 시작된다. 은은한 솔향기가 따사한 봄기운을 타고 콧구멍을 연신 간질여대는 한가한 길 따라 즐거운 수다를 한참 떨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편안해진다.

 운문사 범종루.

ⓒ 김연옥

 전형적인 처진소나무 모습을 보여 주는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나무 나이는 500여 년으로 추정되며, 해마다 막걸리 공양을 받고 있다.

ⓒ 김연옥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었을까, 운문사 범종루가 나왔다. 범종루 틈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아지랑이 춤추듯 흐느적거려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무 모양이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소나무 모습을 보여 주는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는 높이 6m, 둘레 3.5m이고, 나이는 5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1년에 한 번 막걸리 공양을 받는다는 점이다. 봄이 되면 막걸리 열두 말을 물에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주고 있다. 아마 양분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리라. 한 말이 약 18리터에 해당하니 216리터 정도의 막걸리를 공양 받는 셈이다.

 만세루서 바라본 새 대웅보전으로 1994년에 신축되었다.

ⓒ 김연옥

만세루에서 바라보는 대웅보전의 모습 또한 멋지다. 하지만 이 법당은 1994년에 신축한 것으로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운문사 대웅보전은 두 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데, 1985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등록된 옛 대웅보전에는 어이없게도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운문사에서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을 새로 짓고 나서 옛 대웅보전의 현판을 떼어 내고 비로전으로 바꿔 달아 버렸지만, 문화재청에서 제동을 걸어 대웅보전이란 옛 현판을 다시 달게 되었다.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옛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앞에는 규모와 양식이 같은 삼층석탑(보물 제678호)이 동,서로 서 있다.

ⓒ 김연옥

 삼층석탑 상층 기단에 조각된 팔부중상의 일부.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김연옥

조선 시대 당시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고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달아야 했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후손인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는 건 아닌지 도시 그 해답을 몰라 막막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비로자나불이 마치 전세 살고 있는 듯한 옛 대웅보전(보물 제835호)으로 가보았다. 조선 중기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고,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하고 있는 팔작지붕이다.

대웅보전 앞에는 규모와 양식이 같은 삼층석탑(보물 제678호)이 동·서로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고, 높이는 5.4m이다. 상층 기단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앉아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작압전에 모셔 놓은 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 4기 중 2기.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과 칼을 들고 있는 지국천왕이다.

ⓒ 김연옥

 새로 지은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처진소나무의 모습이 몹시 아름답다.

ⓒ 김연옥

무엇보다 작압전에 모셔 놓은 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가 내 눈길을 끌었다. 운문사에는 사천왕석주가 천왕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본디 전탑의 1층 탑신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사천왕석주는 작압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배치되어 있다.

삼고저를 든 증장천왕, 탑을 든 다문천왕, 불꽃을 든 광목천왕, 그리고 칼을 든 지국천왕 모두 갑옷을 입고, 머리 뒤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밟고 서 있다. 무섭게 생긴 여느 사천왕과 달리 얼굴 생김새가 부드러운 편이다.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처진소나무와 만세루가 보였다. 벌써 정겨운 추억처럼 내 마음밭에 와닿는다. 따사로운 봄볕 같이 그저 편안했던 운문사 경내를 나와 우리는 인근 식당에 들어가서 산채비빔밥 한 그릇 뚝딱 한 후 오후 3시 30분쯤 와인터널로 향했다.

와인터널을 거쳐 전유성의 철가방극장으로

 감와인 숙성 저장고와 와인 카페로 멋지게 변신한 와인터널.

ⓒ 김연옥

와인터널(화양읍 송금리)에 도착한 시간은 4시 50분께.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1904년에 준공된 경부선 옛 남성현터널로 길이 1015m, 폭 4.2m, 높이 5.3m 규모이다. 1937년에 현 남성현터널이 개통되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2006년 3월부터 감와인 숙성 저장고, 와인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와인터널은 연중 섭씨 13~15도 온도와 60~70%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어 와인을 숙성하는데 천혜의 환경조건이라 한다. 감으로 만든 와인이라는 것도 독특하지만,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한 청도 반시로 만든 와인이라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달콤한 와인과 현란한 조명 덕에 낭만적인 공간으로 변신한 와인터널. 하지만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데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통에 숨이 턱턱 막혀서 우리는 빨리 나와버렸다.

 전유성의 코미디철가방극장.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는 건물 바깥벽에 절로 시선이 집중된다.

ⓒ 김연옥

시간은 늦었지만, 청도에 온 김에 개그맨 전유성의 코미디철가방극장(풍각면 성곡리)에 가 보기로 했다. 중국집 철가방 모양으로 꾸며 놓았다는 공연장 건물 외벽이라도 보고 싶어서였다. 와인터널서 50분 정도 걸려 도착했는데, 공연이 막 끝난 것 같았다. 관객들을 실은 자동차가 한 대, 한 대 떠나가고, 공연자들은 한껏 웃으며 사진을 찍고서는 공연장 문을 닫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세상사를 웃음과 유머로 풀어나가는 코미디에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고 있다. 비록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어둠이 차츰 내려앉는 밤에도 여전히 반쯤 열린 채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철가방 건물이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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