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따라 걷기 | 광양 국제매화축제와 하동 박경리토지길] 매화 꽃봉오리에서 섬진강에서 토지길에서 살포시 오는 봄·봄·봄

글·박정원 부장 2013. 4. 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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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31일까지 축제 열려.. 소설 <토지> 배경 따라 23km 걸으며 봄소식 느껴

↑ [월간산]눈이 부실 정도로 활짝 핀 홍쌍리씨의 매화동산의 매화들. 많은 방문객들이 매화가 활짝 핀 축제 기간 동안 이곳을 방문한다. 사진 광양시청 제공

고로쇠 수액이 줄기를 타고 오르듯 황어도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온다. 산사면과 섬진강엔 아직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쌓여 있지만 그 밑으로는 물이 흐르며 완연한 영상의 기온을 회복했다. 그것은 단순한 몸짓이나 움직임에 지나지 않지만 자연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는 전조다. 섬진강 매화가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연분홍색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한다. 봄이 본격적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소식이다. 곧이어 산수유나무도 노란꽃을 피운다. 분홍과 노란색의 향연을 본 벚나무가 이에 질세라 흰색의 벚꽃을 마구 흩날린다. 마침내 봄의 완성이다. 봄은 그렇게 우리 곁을 찾아온다.

봄맞이 가는 첫 축제는 봄이 육지에 처음 도착하는 길목의 강, 섬진강을 곁에 둔 광양 매화마을에서 서막을 연다. 첫 매화가 이곳에서 피고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도 여기서 개최한다. 올해는 3월 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주행사장인 다압면 섬진(매화)마을을 비롯한 시 일원에서 시민들과 함께한다.

주행사장인 광양 매화마을은 한국 최고의 매화군락을 자랑한다. 매화는 자고로 고결한 선비나 정절의 여인을 상징한다.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이른 봄, 홀로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함으로써 강인한 생명력과 인내, 불의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매·난·국·죽 사군자의 제일 선두에 표현될 만큼 맑은 향기와 우아한 운치가 있는 매화는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널리 애호되기도 했다.

매화마을은 김오천 옹과 며느리 홍쌍리씨 합작품

섬진강변 백운산 동쪽 자락끝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광양 매화마을은 원래 매화 군락지가 아니었다. 어느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합작품이다. 시아버지 김오천 옹의 재배기술을 전수한 며느리 홍쌍리(70)씨의 노고가 그대로 스며든 곳이다. 홍쌍리씨의 강인한 생명력과 인내로 지켜낸 매화 군락지이기도 하다.

매화마을 이야기는 그녀의 시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오천 옹은 17세 때인 1918년 일본에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아 섬진강변 백운산 기슭에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집단재배 했다. 광양 매화마을의 시초다. 1960년대에 전국적으로 밤나무 흙벌레해충이 만연했다. 피해가 막중했다. 그러나 김오천 옹은 우량 묘목을 재배,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김 옹의 우량 묘목은 전국으로 공급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정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았다. 김 옹은 1960년대 후반 며느리 홍쌍리씨를 맞아 매실 재배기술과 매실식품 상용화 기술을 그대로 전수했다.

며느리 홍쌍리씨는 23세 때 시집와서 24세부터 백운산 자락 쫓비산 돌산을 손이 호미가 되도록 일군 끝에 지금의 매화동산으로 변신시켰다. 시아버지가 일군 재배지는 원래 145만㎡(43만여 평) 규모였으나 남편이 잘못 투자해 80% 이상을 빚쟁이들에게 날려 현재의 16만5,000㎡(5만여 평) 면적으로 줄었다.

돌산이지만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매화 군락지는 꽃과 산, 강이 멋진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순전히 홍쌍리씨의 손과 땀이 일군 결과물이다. 연약한 한 여인의 불굴의 정신이 매화 군락지 이면에 깃들었다.

매화마을에 들어서자 '홍쌍리 매실家'라는 커다란 비석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갔다. 수없이 늘어선 장독들이 이채롭다. 이들이 각종 매실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생산되는 매실제품은 30여 종에 이른다.

'홍쌍리 매실家'(청매실농원으로 등록)의 매실 생산은 전국 최고수준이다. 생산량이 2011년 기준 3,544M/T(가공량은 320M/T. 1M/T는 1,000kg)이며, 연매출액은 42억 원 정도 된다. 이는 2010년 전국 생산량 37,237M/T의 거의 10%에 가까운 수준으로, 단일 농가 단위로는 다른 농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전남 전체 생산량 19,836M/T의 절반가량을 광양에서 생산(8,194M/T)했으며, 광양 전체 생산량의 40%가량을 청매실농원에서 생산한 것이다.

↑ [월간산]홍쌍리 매실가에 가면 먼저 수많은 장독대가 눈에 바로 들어온다. 여기서 숙성된 매실들이 각종 가공식품으로 출하된다.

매실생산량에서 가늠할 수 있듯 청매실농가의 매화동산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홍쌍리씨의 손길이 깃든 매화단지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3,000여 개나 되는 전통옹기들이 눈길을 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매실농원은 양수식물인 매화가 자라기 좋을 뿐 아니라 햇빛을 받은 장독 속의 매실들이 발효하기 딱 좋은 이상적인 장소 같았다. 섬진강 서남쪽, 백운산 동쪽 끝자락으로 사람들의 접근성도 좋았다. 섬진강변 861번 지방도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다.

매화단지로 첫 발을 딛는 순간 커다란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선 사방 조망이 가능하다. 매화군락과 섬진강, 그리고 마주보는 백운산과 지리산 등 산·수·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감탄을 멈출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매화동산은 여태 본 숲과 정원과는 규모와 정취면에서 비교가 안 됐다. 매화군락 중간중간에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 시비, 법정스님과 매천 황현선생 동상, 정자 등은 운치를 더했다.

한 발짝 더 옮기자 '영화세트장 매화마을'이란 커다란 이정표가 나온다. '꽃잎이 눈이 되어 내리는 매화마을의 광경은 인공적인 느낌의 딱딱한 세트장보다 시간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오솔길과 산언덕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영화세트장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많은 영화인들이 찾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실제 찍은 영화와 드라마도 여러 편이다. '첫사랑'(1993년), '취화선'(2002년), '바람의 파이터'(2004년), '천년학'(2006년) 등 영화와 드라마 '다모'(2003년), '돌아온 일지매'(2009년)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누구라도 탐낼 만한 곳이다.

한국 최고 매화동산과 매실 생산량 자랑

조선 전기 성리학자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 매화를 노래한 '雪梅(설매)'란 시비(詩碑)도 있다.

'엄동에 너를 보니/ 차마 뜰 수 없어// 눈 내린 남은 밤을/ 하얗게 새웠구나!// 선비집 가난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네 다시 와주어서/ 다시 맑음 얻었네라'

하얀 눈이 내린 듯한 매화군락 사이로 한발 한발 옮기며 감상하고 음미하는 걸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5만여 평을 한 바퀴 돌아보려면 꼬박 한나절 걸릴 것 같다.

매화만 볼거리가 아니다. 매화 밑의 야생화와 녹차는 매화단지를 매 계절 꽃천국으로 만든다. 봄에는 복수초와 제비꽃, 이른 여름엔 맥문동, 가을엔 구절초 등 겨울을 제외하곤 꽃향기와 푸르름으로 넘쳐난다. 광양시청 관광진흥과 박인수씨는 "매화꽃 피는 한 달 동안 100만 명이 방문하는 곳이 광양 매화마을"이라며 "봄이 오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광양의 대표적인 관광지, 전국의 대표적인 매화동산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 됐다"고 뿌듯해했다.

↑ [월간산]고 박경리씨의 대하소설인 토지의 배경이 되는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지나고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광양 매화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 하동 악양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영호남으로 나뉘고 행정구역이 광양과 하동으로 구분된다. 광양의 매화마을에서 봄소식을 만끽했다면 하동으로 건너가 한국 대하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박경리의 < 토지 > 를 즐길 수 있는 최참판댁으로 가면 안성맞춤 코스다.

소설 < 토지 > 로 평사리 최참판댁 건립

소설 < 토지 > 는 최참판댁의 가족사를 중심축으로 19세기 말에서 광복까지의 시간적 배경 속에, 경상도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와 서울·도쿄 등지로 옮겨가며 공간적 배경을 넓힌 소설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을 규정한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담은 대하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소설가 박경리는 무려 26년 동안 이 소설을 집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 인간들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실재화한 곳이 현재의 평사리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박경리씨가 세상을 떠난 2008년 준공했다. 최참판댁이 탄생한 배경은 순전히 박경리씨 덕분이다. 1985년 모 방송에서 드라마 < 토지 > 를 방영할 때 박경리씨와 PD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당시 박씨는 PD들에게 "섬진강과 지리산, 악양 평사리 들녘 등 아름다운 자연은 모두 갖춘 곳"이라며 "내 작품보다 영상에 더 치중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때 모인 사람들은 "작가 박경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작 평사리에 최참판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하동 평사리 문학관 최영욱 관장을 포함한 하동군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 최참판댁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3,000여 평 규모를 예상했으나 점점 커져 지금의 1만3,000여 평 규모가 됐다.

박경리씨의 딸 김영주 관장도 "악양 평사리는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했다. 먼저 지리산을 업고 섬진강을 안은 지역 중에서 만석지기 2~3명은 낼 수 있는 넉넉한 농토가 있는 지역이고, 둘째로 민족적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함께 있으며, 마지막으로 박경리씨의 고향인 진주말, 즉 경상도 방언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하동엔 박경리씨와 절친하게 지낸 언니가 거주했으며, 작가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명소가 최참판댁인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은 하동 평사리 문학관 최영욱 관장의 전언이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박밀씨는 "최참판댁의 연 방문객은 약 60만~70만 명에 이르며, 박경리토지길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인 화개장터는 연 13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화개장터는 무료지만 최참판댁 입장료는 1,000원이다. 최참판댁 수입만 연 4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최참판댁은 허구가 실재 인물들을 먹여 살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최 관장이 직접 박경리토지길 1구간을 안내했다. 최 관장은 20여 년 전 시로 등단한 시인이며, 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이다. 그는 또한 '박경리의 토지 지킴이'이기도 하다. 애초 길을 조성할 때부터 관여했고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길이지만 "길은 굳이 정해 놓고 가지 않아도 목적지만 분명하면 된다"며 박경리토지길의 알토란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경관 좋고 토지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1코스를 중심으로 평사리 무딤이들녘의 들판과 산과 강 이야기, 그리고 생명들의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박밀씨도 동행했다. 그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다시 전한다.

최참판댁에서 조성배경을 듣고 고소산성으로 향했다. 고소산성은 지리산의 남부 능선 형제봉 자락에 길게 뻗은 성이다. 문헌에는 신라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최 관장은 가야시대로 보인다고 했다. 지리산의 험준한 산줄기를 방어로 해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남해에서 오르는 배와 상류에서 오는 적을 막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사적 제151호이며, 군립공원이다.

하동군은 이곳에 2017년까지 110억 원을 들여 휴양과 생태체험을 즐길 수 있는 생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씨앤밸리펜션리조트·잎새농원과 양해각서(MOU)를 지난 1월 25일 체결했다. 최참판댁과 평사리 무딤이들녘, 화개장터,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연계한 관광벨트의 한 축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월간산]고소산성 위에서 악양 평사리 들판과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최영욱 관장이 소설 토지와 악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소나무가 소설 토지에 나오는 구천소나무다.

사적지 고소산성서 악양 평사리 들판 한눈에

사적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형제봉 등산로 입구에서 바로 가파른 산길로 연결된다. 등산로는 참나무 낙엽과 솔가리들이 길을 덮어 황토색을 발하고 있다. 밟는 순간 푹신푹신한 느낌이 그대로 발에 전달된다. 감촉이 좋다. 길은 좋지만 경사가 급해 얼마 걷지 않아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형제봉 5.3㎞' 이정표도 나온다. 등산객들이 다녀간 다양한 리본들이 걸려 있다. 형제봉 코스는 섬진강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선호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고소산성 성벽이 눈에 띈다. 제법 거창하게 새로 축성했다. 성 위로 올라서는 순간 악양 무딤이들판과 섬진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악양의 드넓고 아늑한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그 모습이 중국 호남성의 악양 팔경과 닮았다고 해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 부른다.

소상팔경은 산시청람(山市晴嵐·푸른 안개가 낙조에 반영되어 청홍색이 영롱하다), 한산모종(寒山暮鐘·고소산 중턱의 한산사에서 들려오는 만종소리가 석양 노을 짙은 산야로 퍼져나가 세속의 번잡함을 씻어 준다), 어촌낙조(漁村落照·어촌마을에 석양이 비끼니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오색 노을이 강물 위에 어리어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원포귀범(遠捕歸帆·섬진강 물결 따라 멀리 나갔던 배들이 돛대 가득 바람을 안고 악양 개치나루로 돌아온다), 소상야우(瀟湘夜雨·섬진강 밤비가 흩날리니 고소산 산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처량하다), 동정추월(洞庭秋月·동정호는 가을밤에 절경이구나), 평사낙안(平沙落鴈·기러기는 삭풍에 쫓겨 평사리 하늘을 날아 고향을 찾아 돌아가다), 강천모설(江天暮雪·강변 마을에 눈이 내리니 산과 마을이 온통 하얗구나) 등이다.

고소산성 틈 사이로 소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게 자라고 있다. 최 관장은 토지에 묘사된 '구천이가 소나무에 등을 기대 평사리마을을 바라봐…'라는 표현 그대로 "하늬소나무 또는 구천소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등산객들이 악양의 소상팔경을 내려다보면서 쉬어가기 좋은 자리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지겹지 않을 정도로 실컷 감상하다 갔던 길로 내려왔다. 이젠 무려 83만 평이나 되는 무딤이들녘으로 불리는 평사리들판으로 간다. 악양을 '지리산의 강남'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소상팔경의 뛰어난 경관에 만석꾼이 나올 법한 풍요한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무딤이들녘을 가로지른다. 그 넓은 들판에 우뚝 자란 소나무 두 그루, 당연히 그 유명한 부부소나무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최 관장이 난센스 퀴즈라며 물었다. "저 소나무 두 그루 중에 어느 게 남자인지 구별이 되느냐?". 자세히 보니 한쪽 소나무가 옆쪽으로 조금 기운 듯했고, 다른 소나무는 위에서 줄기를 두 갈래로 벌리고 있었다. "줄기를 벌린 소나무가 여자"라고 답했다. 최 관장은 이어 "맞기는 한데…"라며 말을 이었다. "한쪽으로 기운 소나무가 남자"라며 "남자는 늙어서도 여자한테 기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나왔다고…. 다음에 가면 유심히 살펴보시길.

부부소나무는 의령 박씨의 묘지터

↑ [월간산]악양 무딤이 들녘에 우뚝 솟아 있는 부부소나무. 의령 박씨 부부묘라고 하며, 후손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며 관리하고 있다.

부부소나무가 선 곳은 의령 박씨 부부의 묘자리다. 금실 좋은 부부가 세상을 떠나자 후손들이 묘를 나란히 모셨다고 한다. 매년 소나무 옆에서 제사를 지내는 악양에 거주하는 의령 박씨 후손들이 주변을 깎아내고 지극 정성으로 관리하면서 명소로 알려지게 됐다. 최 관장의 토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생명을 키워내는 소리 3가지를 말했지요. 첫째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두 번째가 아기가 젖 삼키는 소리, 세 번째가 소 여물 씹는 소리입니다."

평사리 들판 안내판에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에 대한 설명만 적어놓고 있다. 이젠 생명의 강, 섬진강변으로 간다. 무딤이들녘에서 19번 도로만 건너면 섬진강이다. 박경리토지길은 섬진강변 평사리공원으로 연결된다. 커다란 비석이 공원을 알리고 있다. 평사리공원에 요즘 주말이면 캠핑족이 부쩍 늘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물과 화장실 시설이 구비돼 캠핑하기 좋았다.

아직 춥지만 섬진강에도 봄은 오고 있다. 강변길 주위로 군데군데 핀 야생화, 싱싱한 잎을 자랑하는 대나무, 파릇파릇한 야생녹차 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풍경들이 반가이 맞이하는 듯했다.

< 토지 > 에 나오는 개치나루터는 화개장터를 이용하는 하동과 광양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한 나루터라고 한다. 개치나루터가 있는 평사리공원에서 섬진강변길 따라 화개장터까지는 약 9km 된다. 중간에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김종직의 문하생이었던 일두 정여창(1450~1604) 선생이 묵었던 악양정이다. 악양정은 후손들이 바로 옆에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섬진강변은 박경리토지길 뿐만 아니라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100리 테마로드'와 '이순신장군백의종군로'와도 연결된다. 작년 여름 홍수로 파손된 섬진강변 나무데크는 한창 보수 중이다.

최참판댁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인 화개장터까지 14.8㎞ 계속된다. 첫 날은 화개장터에서 끝내고, 둘째 날 이어 걷기로 했다. 최 관장은 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들에게 2코스를 안내할 자원자를 휴대폰으로 사발통문 돌렸다. 두 사람이 나섰다. 이문희씨와 정혜숙씨다. 이들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 하동군 문화해설사 김지원씨가 쌍계사 경내 안내를 했다. 이들에게도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화개 지명은 쌍계사 창건설화와 관련

화개장터는 하동과 광양 주민들, 즉 영호남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장을 이뤄 물건을 사고파는 화합의 장터다. 조영남의 유명한 노래 '화개장터' 그대로다. 조선시대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할 정도로 융성했던 적도 있다.

↑ [월간산]하동 평사리 문화관 최영욱 관장(가운데)이 섬진강변 토지길 대나무군락을 지나며 야생녹차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맨오른쪽은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박밀씨.

'화개(花開)'란 말은 쌍계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葛花雪裏處(갈화설리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라의 삼법스님이 중국 소주의 보림사에서 모셔왔던 6조 혜능의 정상(頂相-머리)을 안치할 곳을 찾던 중 혜능이 삼법스님에게 현몽하여 가르쳐준 곳이 바로 '지리산 아래 눈 속에 칡꽃이 핀 곳, 즉 갈화설리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을 '꽃 피는 곳'의 한자 표기인 화개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가로수가 벚나무다. 옛날에는 '10리 벚꽃길'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훨씬 늘어나 40리 이상은 될 것이라 한다. 일제시대 조성된 길이다.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물길이 됐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막 돋아나려 하고 있다. 여기서 제대로 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쌍계사 가는 길에 놓칠 수 없는 포인트는 차시배지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기를 명하였다. 이후 이곳 쌍계사 장죽전은 '차의 최초 재배지'로 천년을 이어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이어 마지막 지점인 쌍계사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커다란 현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봉래·영주·방장산으로 알려진 중국의 전설 속의 삼신산이 한반도로 넘어와 한국의 삼신산으로 화했다. 그 중 방장산이 지리산이다. 봉래산은 금강산, 영주산은 한라산을 가리킨다. 쌍계사라는 이름은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졌다. 호랑이가 가만히 웅크려 앉아 있는 명당 터라고 한다.

쌍계사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 대공탑비와 보물 3점 등이 국가지정 문화재로 보존돼 있다. 불교음악인 범패의 본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7.9km. 오전 내내 3시간여 꼬박 걸려 돌았다. 박경리토지길 2코스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불일폭포까지 계속 되나 쌍계사까지만 소개한다.

광양 매화마을 일군 홍쌍리씨"나는 매화천국 조성에 영혼을 바친 아름다운 농사꾼"

"흙은 내 밥이고, 산천초목은 내 반찬입니다. 산에 흐르는 물은 내 숭늉이며, 야생화는 내 심장입니다. 쫓비산 자락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이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은 다 내 탓입니다. 그래서 농사는 내 작품인 것입니다."

한국 최고의 매실농가이자 최고의 매화단지인 '청매실농원'을 일군 홍쌍리씨의 말이다. 50년 가까이 손을 호미 삼아, 땀을 생명수 삼아 여자 혼자의 힘으로 돌산 16만5,000㎡(5만여 평)을 매화천국으로 가꾼 사람치고는 얼굴이 고운 편이다. 자연에 동화되어서일까? 인생의 참맛을 알아서일까?

↑ [월간산]1 섬진 강변 평사리공원의 장승들이 지나가는 방문객과 섬진강을 지켜보는 듯하다. 이곳은 요즘 주말이면 캠핑족으로 넘쳐난다고 한다. / 2 섬진강변 박경리토지길로 조성된 나무데크 옆으로 싱싱한 대나무가 군락을 이뤄 봄을 맞고 있다.

"농사는 즐거움으로 합니다. 농사를 돈으로 여기면 절대 안 됩니다. 돈으로 여기면 내가 망가집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고, 구부러진 허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더 감사하지요."

홍씨의 운명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매화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밀양이 고향인 홍씨는 집안 어른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부산 '가시나'가 집안 어른과 함께 장사를 하고 있을 때 광양에서 밤을 팔러온 김오천씨가 가게를 찾았다. 발랄하고 야무지게 일을 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다. 집안 어른끼리 혼담이 오가고 김오천씨의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된다.

홍씨는 처음 광양 골짜기에 왔을 때 사람도 없고, 밤이 되면 더더욱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너무 외로웠다. 산비탈에 외롭게 핀 매화꽃을 보면서 '네가 내 신세랑 똑 같구나. 내가 너의 모습인 꽃을 보고 예쁜 것을 알면 모든 사람도 다 마찬가지겠다. 꽃이 피면 나비가 오고 사람도 반드시 찾아오겠지. 내가 꽃천국을 만들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로움이 지금의 매화천국을 가꾸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호미로 하루 종일 돌산을 맸다. 배가 고프면 떨어진 매실을 주워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당시엔 매실을 먹는 사람도 없었다. 맛이 괜찮았다. '인간 불도저가 돼 산을 개간하자. 매실로서 사람들의 뱃속을 씻어 주자'는 각오가 생겼다. 그 길로 미쳤다.

법정스님이 불일암에 계실 때 이곳을 우연히 찾아 인연을 맺었다. 법정스님은 그녀에게 "보살아, 이곳을 도시 사람들의 마음 찌꺼기를 벗길 수 있는 꽃천지로 만들어봐라"고 했다고 한다. 용기백배 했다.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 심는 데 꼬박 4년 7개월이나 걸렸다. 매화나무만 심으니 땅이 허전했다. 초본식물로 야생화를 심기 시작했다. 복수초, 개불알꽃, 제비꽃, 구절초 등 60여 종이 매화와 함께 향기 흩날리며 쫓비산 자락을 품고 있다. 순전히 그녀의 땀의 결실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매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제를 열었다. 지금 매화축제의 시초이고, 광양시가 주최하기 2년 전의 일이다. 1997년 첫 해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 무려 7,000여 명이 찾았다. 입소문을 타고 이듬해는 3만여 명이 방문했다. 홍씨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광양시에 요청했다. 매화축제 주최기관이 돼 달라고. 그게 1999년이다. 올해 벌써 16회째를 맞는다. 지금은 축제기간 한 달 동안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온다. 전국 명소가 된 것이다.

그 사이 홍씨는 설탕과 소금을 연구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발효시키고 있었다. 가공식품 포함 매실로 만든 제품이 30여 종이나 된다. 1998년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시아버지 고 김오천 옹이 표창장을 받은 데 이어 대를 이어 상을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전통식품명인으로 지정되고, 신지식농업인으로도 선정됐다.

광양으로 시집온 지 40여 년 만의 영광이지만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38세 젊은 나이에 류마티즘이 걸려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통제 한 번 먹지 않고 매실만으로 버텼다. 2년 7개월 동안 매실 원액을 하루 두 병씩 마시니 통증이 씻은 듯 없어졌다.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했다. 모두 매실로 해결했다. 그녀는 "매실은 체내 독소를 없애 주는 천연 청소기"라고까지 평가했다.

매화마을이 소문나자 이곳을 찾은 탤런트 고두심씨는 "누가 이 여인을 여자라 했는가"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고씨와 홍씨는 나중에 의자매를 맺었다.

↑ [월간산]홍쌍리씨가 매실농원을 가꿔온 40여 년의 세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래)매실농원을 40여 년 동안 가꿔온 홍쌍리씨의 손.

그녀는 끝으로 한마디 보탰다.

"왜 멀리 천국을 찾아 갑니까? 내가 천국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나는 이곳을 천국으로 조성하기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 최선을 다했습니다."정말 광양 청매실농원은 한 여인이 만든 천국이었다.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 어떤 행사 열리나?매화문화권 한·중·일 3국 참가 다양한 공연 선보여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과 꽃소식을 알리는 축제로 유명한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가 3월 23~31일까지 광양 다압면 섬진(매화)에서 열린다. 올해로 16회째다. 올해는 '섬진강, 광양 매화, 그윽한 향기 속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지난해보다 훨씬 다채롭고 짜임새 있는 행사를 준비했다.

먼저 전야제는 3월 22일 광양 백운아트홀에서 시립예술합창단 공연과 중국·일본 등 매화문화권 자매·우호도시를 초청, 전통예술공연을 선보인다. 식전 공개행사는 오늘의 매화마을을 있게 한 홍쌍리씨의 시아버지 고 김오천 옹의 추모제와 어울마당으로 매화축제의 모든 준비를 마친다. 이어 주행사장에서 창극을 한 뒤 공식 축제개막을 선언한다.

개막식 후 공개행사는 방문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중국 샤먼시의 전통악기 공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무용단 공연, 일본 이츠미오츠시 전통노래 공연으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든다.

다양한 볼거리로 꾸민 공연행사와 동시에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경연행사도 개최한다. 매실음식 경연대회, 국제 연날리기 대회, 남해성 판소리 경연대회, 광양 매화사생대회 등 방문자들이 실제 참가해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매실 막걸리 만들기, 매화 산책로·트레킹 등 힐링투어, 섬진강 테마로드 체험하기, 매화 소재 3·5행시 운문 짓기, 섬진강 나룻배 체험하기 등 매화와 섬진강을 소재로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공식행사와는 별개로 매화단지는 항상 개방, 많은 사람들이 매화터널을 지나며 즐길 수 있도록 돼 있다.

전시회와 매실 판매장도 운영한다. 매화 소재 사진과 시를 전시하고, 매화마을 직거래 장터, 향토음식관 등에서 관련 상품과 음식을 제공한다.

몇 년 전 광양 매화마을을 찾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한 사람이 만든 매화단지에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광양시가 너무 부럽다"고 했다고 한다. 제16회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위원장인 박노희 광양문화원장은 "올해 매화축제는 매화가 만발한 분위기 속에서 매화의 맛과 멋, 얼이 어우러지는 국제축제로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월간산]섬진강변 옆을 지나면서 박경리토지길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 있다.

광양 매화축제는 애초 홍쌍리씨가 단독으로 개최한 이래, 시에서 이어받아 매화문화축제로 발전한 데 이어 이제는 매화문화권인 한·중·일 3개국이 참가하는 국제 매화문화축제로까지 발전했다.

하동의 걷기길과 가볼 만한 곳쌍계사·벚꽃100리길과 토지길·서산대사옛길 등 걷는길과 명소 많아

한국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 박경리의 '토지'를 탄생시킨 본고장인 하동 악양면의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주변엔 다양한 걷기길과 관광명소가 많다. 테마로드 100리길,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박경리토지길, 하동 쌍계사와 벚꽃100리길, 서산대사옛길, 지리산둘레길 등 어느 것 하나 빠트릴 수 없는 명소와 걷기길이다.

특히 '테마로드 100리길'은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광양과 하동이 각각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50리씩 섬진강 주변에 조성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영·호남 통합의 상징성이 큰 섬진강변에 지역문화와 스토리가 있는 남해안권 발전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것이다. 매화마을이 있는 광양시 다압면 섬진대교~지방도 861번도로~남도대교~국도 19번도로~섬진대교를 연결하는 총 41.1km의 걷기길이다. 섬진강의 자연풍광과 주변의 설화, 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화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테마로드를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나아가 주민들 소득증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동과 광양을 잇는 섬진강의 남쪽 섬진교에서 북쪽 남도대교까지 하동 세부 구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섬진교가 있는 하동공원에 나루터를 복원하고, 수중분수대·만남의광장·간이전망대 등을 조성해서 지역의 명물로 가꿀 방침이다. 이어 재첩이야길에는 재첩체험장과 배특화단지를 만들어 많은 관광객이 호기심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하동명품센터와 휴게소, 간이전망대를 거쳐 하동예인촌을 지나게 된다. 평사리공원의 조각공원과 소설 '토지' 스토리길이 시작된다. 다시 간이전망대와 지리산생태과학관~하동야생차공원~녹차공원을 거쳐 동서화합민속마을이 있는 남도대교에 이르게 된다.

광양 구간은 섬진강웰빙로에 매화랜드~강수욕장~오토캠핑장~소공원을 지나 섬진강탐방로로 연결된다. 섬진강탐방로는 생태주차장~간이전망대~소공원을 거쳐 매화진흥관까지 간다. 매화진흥관부터는 섬진강매화꽃길로 이어진다. 매화산책로가 있는 매화특화단지와 섬진나루터를 지나 생태박물관과 신원생태관을 지난다. 이어 하동에 있는 섬진교의 동서통합만남의 장에서 하동과 광양구간이 합쳐진다. 테마로드 100리길은 2013년 현재 50% 공정을 마쳤으며, 연내 모든 구간을 개통할 예정이다.

교통

서울에서 하동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대전고속도로→함양→진주→하동IC로 19번 국도로 가면 화개장터와 최참판댁 앞으로 지나간다. 또는 경부고속도→천안논산고속도→호남고속도→익산포항고속도→순천완주고속도를 타다 냉천IC에서 하동 방면으로 좌회전. 구례로를 따라 19번국도로 계속 가면 화개장터와 최참판댁 앞으로 지나친다. 광양은 19번국도를 타다 남도대교를 건너 861번 지방도 따라가면 커다란 다압면 매화마을 입간판이 나온다.

숙소 광양(지역번호 061)

매화마을이 있는 다압면의 민박은 평촌마을(772-5629), 동동마을(772-3898), 서동마을(772-3569), 염창마을(772-2482) 등에 문의하면 된다. 하동(지역번호 055)의 화개면을 중심으로 지리산흙집세상(019-268-9165), 산여울(883-0509), 통나무산장(883-18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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