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방울 안 떨어지는 폭포, 제주에 있다

2013. 3. 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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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용호 기자]

올레길 7-1코스. 고근산을 내려와서 걸어가는 길. 길 위에 혼자 걸어가고 있다.

ⓒ 전용호

제주 올레길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값으로 따질 수는 없겠지만 올레길은 제주도 또 다른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한 번쯤 올레길을 걸어볼 계획을 세운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 해안을 일주하는 21개 코스에 곁길로 5개 코스가 있어 총 26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한 코스씩 걷는다고 했을 때 26일이 소요된다. 코스마다 15㎞ 내외의 길들이다. 바쁜 일정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걸어볼 수 없다. 하루정도 걷는 것으로 한나절 아름다운 제주풍광을 보면서 쉬엄쉬엄 걸어갈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올레길의 오해는 편안한 산책로일 거라는 생각. 그러나 대부분 올레길은 산과 비슷한 오름을 오르고, 해안 거친 길을 걸어가기도 하는 등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한 개의 코스마다 보통 5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여행은 오랜 시간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제주 올레길 중 생뚱맞은 코스가 있다. 올레길 7-1코스다. 보통 올레길이 제주도 해안을 따라 끝을 이어가는데, 이 길은 서귀포시내에 있는 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한다. 코스도 고근산을 중심으로 계속 오르다가 계속 내려간다. 그리고는 7코스 시작점인 외돌개까지 15.1㎞를 걸어간다.

고근산 오르는 길에서 본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 전용호

제암보육원 앞에 올레길 7-1코스 스템프가 있는 간세

ⓒ 전용호

서귀포 이마트 앞에서 월드컵경기장으로 걸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빠져 나간다. 잠시 서귀포 시내를 걸어가다 도심을 벗어나면 도로 양편으로 귤밭이다. 귤밭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얼기설기 돌담으로 구분된 밭에는 사람 키만큼만 자라는 귤나무를 심어 놓았다.

귤밭에는 울타리로 삼나무를 심어서 바람을 막았다. 근데 귤밭 울타리에 있는 삼나무는 가끔 벌거벗은 체 줄지어 서있다. 귤밭에 울타리로 심어진 삼나무는 커갈수록 애물단지가 된다. 바람만 막아야 하는데 과일나무에게 가장 중요한 햇살도 막는다. 결국 삼나무들은 가지가 쳐지고, 고사목이 되어가기도 한다.

사실 삼나무가 우리나라에 심어진 역사는 짧다. 기껏해야 90년 정도다. 본디 우리 것이 아니다보니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나라 산들에는 산림녹화라는 빌미로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무분별하게 심어졌다. 그러다보니 우리 고유의 숲들은 자리를 빼앗겼다. 이제는 우리의 숲을 만드는 고민도 필요한 것 같다.

귤밭 풍경을 구경하면서 한적한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엉또폭포가 나온다. 이름이 생뚱맞다. 엉또가 뭐야? '엉'은 작은 바위그늘이나 작은 굴을 말하고, '도'는 입구를 표현하는 제주어다. '엉또'는 작은 굴 입구라는 뜻이다. 안내판에는 평소에는 물이 없고 산간지역에 70㎜이상 비가 와야 폭포를 볼 수 있단다.

나무데크로 된 길을 따라 폭포로 들어간다. 폭포로 거슬러가는 천이 악근천이다. 악근천 주변에는 구실잣밤나무, 광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입구에서 안내판을 보았던 지라 기대도 안했지만 역시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다. 엉뚱한 폭포다. 폭포지만 물이 없는 폭포. 그래도 50m에 이르는 폭포 벽과 폭포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장관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엉또폭포. 산간지역에 70mm 이상 비가 내려야 폭포를 볼 수 있단다.

ⓒ 전용호

엉또폭포 옆에 있는 무인카페 석가려

ⓒ 전용호

무인카페 석가려 안 풍경. 다녀간 여행객들이 벽과 창에 메모지를 붙여 놓았다.

ⓒ 전용호

폭포 옆에는 귤밭이 있고, 운치가 있는 집이 한 채 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 있는 집이다. 집 입구에는 예쁜 우체통이 있고, 문이 열렸다. 무인카페다. 카페에 들어서니 입이 떡 벌어진다.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을 만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보통 방하나 크기의 공간에 창문이 양쪽으로 달렸다. 벽과 창에는 온통 메모지를 붙여 놓았다. 이곳을 다녀갔던 사람들이 소원과 추억이 담겼다. 하나둘 읽어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무인카페 이름이 석가려(夕佳廬)다. '해질녘 더 아름다운 오두막'이란다. 무인카페에는 차와 과자를 판다. 돈은 뒤주에 넣으면 된다. 천 원짜리가 없으면?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갈 때 항상 잔돈을 여유 있게 준비해 간다. 탁자에 앉아서 양갱 하나 먹는다. 달콤하다. 주인도 없고 누가 보는 사람도 없어 여유가 있다. 이 카페를 만든 주인도 여유가 넘치는 것 같다.

귤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길은 악근천을 건넌다. 다리라고 해봐야 시멘트로 대충 만든 다리다. 다리 위에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다. 붉은 동백 몇 송이가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 동백꽃은 땅에 떨어져서도 웃고 있는 것 같다. 같이 보고 웃는다. 동백꽃은 땅에 떨어져 있을 때 더욱 매력적이다.

악근천에서 만난 붉은 동백

ⓒ 전용호

길은 여전히 귤밭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그러다 등산로로 들어선다. 고근산이다. 오름인데 산으로 불려진다. 고근산오름은 해발396m인 기생화산이다. 평지 한가운데가 우뚝 솟은 화산이래서 고근산(孤根山)이라고 불렀단다. 전설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눕고 고근산에 엉덩이를 걸치고 바다에 발을 담구고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고 전해진다.

나무 침목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가파르게 올라간다. 밑에서 볼 때는 마치 중절모처럼 보였는데. 산 정상에 올라서니 활공장이 있고, 분화구가 있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았다. 분화구 안이 궁금해서 가운데로 가로질러 내려가 보았다. 분화구 안에는 억새가 가득 찼다. 억새를 가로질러 올라오니 성급한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다.

고근산에서 본 한라산. 능선이 부드럽다.

ⓒ 전용호

고근산 정상에 있는 올레길 이정표. 8km를 더 가야 길은 끝난다.

ⓒ 전용호

정상에서는 서귀포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뒤로는 한라산이 넉넉하게 양팔을 벌리고 섰다. 한라산이 가깝게 보인다. 능선이 아름답다. 긴 의자에 앉아 한라산을 한참동안 감상한다. 올레길 화살표는 한라산을 보면서 내려간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8㎞ 남았단다. 산 아래쯤 내려서니 밧줄로 엮은 매트가 깔렸다. 밟는 촉감이 좋다. 발바닥이 달라붙은 느낌이다.

다시 귤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간다. 길 가로 삼나무가 줄지어 섰다. 상쾌하다. 도로를 건너고 다시 마을로 들어선다. 서귀포시 서호동이다. 올레길은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올레 리본을 따라간다. 자칫 길을 잃기 쉽다. 가끔 리본이 보이지 않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간다.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자랑을 한다. 시골 마을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마을이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면 다시 귤밭 풍경이 펼쳐진다.

서호마을을 지나는 올레길 7-1코스

ⓒ 전용호

어둠이 점점 다가오는 올레길

ⓒ 전용호

올레길 7-1코스는 가도 가도 귤밭이다. 이 길을 귤이 주렁주렁 열리는 겨울에 걸었으면 눈이 즐거웠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둠이 찾아온다. 늦게 시작한 올레는 어둠을 밟는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개들이 짖는다. 넓은 마당을 가진 집들에는 불이 켜진다. 어두워진 올레길을 걸어가는 나그네는 막걸리 한잔 할 선술집을 찾는다.

덧붙이는 글 |

3월 13일 제주 올레길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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