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 고요한 암자에 봄손님 오시는 소리

2013. 3. 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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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님들이 다니던 산속 숲길을 잇는다는 통도사,
산문 안쪽 10여개 암자를 연결해 사색의 길을 되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08]

경남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들을 잇는 도보길이 조성된다. 옛날 고승들이 수행하며 오가던 숲 속 사색의 길을 복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암자들을 연결하는 길이 만들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통도사는 17개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통도사가 거찰 중의 거찰이지만, 이 암자들도 그 규모가 웬만한 절집 못지않을 뿐 아니라 저마다 독특한 정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통도사 스님들은 "본찰만 보고 가면 통도사의 10분 1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통도사와 그 암자는 따스한 봄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매화와 산수유는 절정을 넘어서고 벚꽃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이 고요한 절집들을 찾아 봄의 향기를 담아 왔다.

통도사 사천왕문.

# 고승들 거닐던 명상의 길 복원하는 통도사

하루 종일 통도사와 그 암자에서 걸었더니 다리가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절집 입구인 일주문에서 매표소가 있는 산문까지 걸어 내려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짓하니, 내 옆에 선 하얀색 승용차. 통도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스님의 차다. 이 스님은 차 안에서 암자 도보길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축산(1081m) 줄기를 따라 들어선 통도사 암자는 지금은 대부분 포장도로로 연결돼 있다. 올해부터 조성되는 도보길은 이 포장도로가 아니라 옛날 스님들이 다니던 산속 숲길을 잇는다. 이 산길은 암자와 암자를 잇는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라 스님들에게는 사색의 공간, 성찰의 공간이었다.

길은 산문 바깥쪽 암자는 제외하고 안쪽 암자 10여 채를 연결한다. 29, 30일에는 이 도보길 복원 방안을 논의하는 워크숍도 열린다. 현재 통도사의 암자 몇 곳을 잇는 포장도로를 '순례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통도사가 직접 나서 정식으로 걷는 길을 조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구간은 올해 안에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스님은 말한다.

통도사 주변에는 수목원도 꾸며진다. 현재 추진 중인 통도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성사되면 이 일대는 문화자연유산 벨트가 될 것이라는 게 통도사의 구상이다.

통도사 극락전 앞에 만개한 매화.

# 춤추는 바람에 짙어지는 솔향·매화향

'무풍한송(舞風寒松)'. '춤추는 바람과 서늘한 소나무 숲'이라는 뜻이니 시의 한 대목같이 운치가 넘친다. 통도사 산문에서 일주문으로 드는 1㎞쯤 되는 길에는 이 같은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통도사와 더불어 1400년 내력을 지닌 이 길에는 이름 그대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하고, 그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일렁인다. 지금 무풍한송은 공사가 한창이다. 길 둘레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깔고 있다. 이 길은 암자를 잇는 도보길과도 연결된다.

요즘 통도사에는 매화 향기가 그윽하다. 350년 된 매화와 노란 산수유꽃이 활짝 핀 영각과 백매와 홍매가 만개한 극락전 앞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통도사에서는 전각의 현판 글씨를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의 글씨가 곳곳에 붙어 있다. 수많은 당우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웅전. 특이하게도 4면의 이름이 모두 다르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방광전과 금강계단은 흥선대원군의 솜씨다.

# 그윽한 정취 넘쳐나는 서운암과 극락암

통도사는 암자까지 합하면 전체 면적이 1650만㎡(500만평)에 달해 하루이틀 여정으로는 다 돌아볼 수가 없다.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을 꼽는다면 서운암과 극락암이 빠지지 않는다.

서운암은 진귀한 볼거리가 여럿이다. 가장 먼저 2000여개 장독이 눈길을 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장독과 그 옆의 매화, 그리고 절집이 어우러진 장면은 봄 풍경의 백미라고 하겠다. 작은 불상 3000좌를 모신 삼천불전, 도자로 빚은 대장경판 16만여장이 안치된 장경각도 장관이다.

통도사 산내 암자 중 하나인 극락암은 지금 따스한 봄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시대 고승으로 이름 높은 경봉 스님이 기거했던 극락암 삼소굴의 돌담장 옆에도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윽한 정취로는 극락암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영축산 정상의 바위들과 그 아래 소나무숲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고목과 바위 사이에 절집이 보일 듯 말 듯 고즈넉이 앉아 있다. 절집으로 드는 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빼곡히 들어선 거대한 소나무들이 장중한 분위기의 숲길을 만들고 있다. 극락암은 고승으로 이름 높은 경봉 스님이 정진한 곳이다. 경봉 스님이 기거했다는 '삼소굴'의 돌담장에는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영축산 그림자가 비친다는 영지(影池)의 홍교(虹橋·무지개 다리) 옆 벚나무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자 산사에 은은한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그러자 봄꽃 향기도 더 짙어진다.

양산=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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