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그는 이 풍경 때문에 제주에 갔구나

2013. 3. 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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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용호 기자]

제주 올레길 3코스에서 만난 풍경. 바다와 어울린 풍경이 아름답다.

ⓒ 전용호

제주로 가는 길, 항상 마음이 설렌다. 비행기를 타는 건 조금 싱겁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난 10일 제주여행의 첫 시작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정했다. 예전 올레길 3코스를 걷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쳤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김영갑 갤러리도 들르고 올레길 3코스를 걸어서 표선까지 갈 생각이다.

공항에서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닿아 삼달리 가는 표를 샀다. 급하게 타다 보니 일주도로로 돌아가는 버스다. 버스 기사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표선으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단다. '조금 더 기다릴 걸'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는 제주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버스가 동쪽해안마을을 지나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파란바다를 보면서 차가 달린다. 해안마을을 빠짐없이 들렀다 간다. 제주 풍경이 살갑게 보인다. 돌담이 쳐진 낮은 집들과 파랗고 빨간 지붕들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조천·북촌·성산을 지나니 유채꽃과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삼달리에서 내리니 김영갑 갤러리까지는 1.4km를 걸어야 한단다. 도로는 한적하다. 터벅터벅 걷는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안내판을 마주한다.

바람과 구름이 머무르는 공간

삼달국민학교 폐교를 전시실로 개조한 김영갑갤러리두모악

ⓒ 전용호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들어서면서 만난 사진

ⓒ 전용호

김영갑은 누구인가? 그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제주도를 사진에 담기 시작하더니 1985년에는 아예 제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제주의 풍경을 찍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귀병 루게릭병이 걸린 것이었다.

"나는 구름을 지켜보면서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이를 악물고 서 있다. 구름이 내게 길을 가르쳐줄 것을 나는 믿기에 뒤틀리는 몸을 추슬러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그는 삼달리 폐교에 들어와 사진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2년에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을 따 김영갑 갤러리를 열었다. 하지만 투병생활 6년여 만인 2005년 5월 29일, 49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이 만든 갤러리에서 한줌 흙이 됐다.

입구에 들어서니 깡통 인형이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폐교 마당은 제주 돌담과 덩굴식물들이 어울려 있고, 담장 밑으로 수선화가 피어 있다. 제주다운 정원이다. 갤러리 입장료는 3000원. 안에 들어서니 김영갑이 생전에 작업실에서 찍었던 사진이 먼저 인사를 한다. 전시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전시실이 시작되기 전, 생전 인터뷰 영상물을 만난다. 몸이 야위어 가면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한 사진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첫 번째 전시실인 '두모악관'에는 하늘과 구름을 표현한 사진들이 있고, 또 하나의 전시실인 '하날오름관'에는 오름과 바람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전시실. 노트에는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남겨져 있다.

ⓒ 전용호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뒤뜰에는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다.

ⓒ 전용호

사진에서는 바람이 불어나온다. 구름은 색깔을 바꾸면서 하늘과 다투고 있다. 전시된 사진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넓다. 엄숙하면서 장엄하다. 거기에 바람이 지나가면서 사진은 살아 움직인다. 뒤뜰로 나가니 김영갑의 삶과 애환이 겹쳐진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다. 시린 풍경이다.

제주인들의 삶의 공간, 올레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제주 올레길 3코스 중간정도에 있다. 올레 3코스는 온평마을에서 표선해비치해변까지 20.7km 길이로 나 있다. 해안과 오름, 중산간 풍경이 펼쳐진다. 갤러리를 나와 올레길을 걷는다. 표선 해변까지 8.6km를 걸어간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로 들어선다. 제주의 독특한 묘인 산담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동자석도 보이고, 비틀게 세운 비석도 특이하다. 구멍이 숭숭 뚤린 밭담 아래에는 분홍 광대나물들이 고개를 쑥 빼고 봄을 구경하듯 피어있다. 밭담 너머로 무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올레길 3코스에서 만난 풍경. 밭담과 어울린 풍경.

ⓒ 전용호

올레길 3코스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

ⓒ 전용호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가다가 다시 도로를 건너면 바다가 펼쳐진다. 시리도록 파란바다. 바닷바람이 세차다. 바다로 파도가 밀린다. 파도는 바람 따라 오는 게 아닌가 보다. 파도와 바람이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해변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도가 부서지면서 물보라를 일으킨다.

검은 돌들과 파란바다, 거기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목장지대다. 해안에 목장이 있는 게 독특한 풍경이다. 묘하게 어울린다. 휑한 풍경이 바람이 불어서 더욱 황량하다. 동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을 막을 아무 것도 없다. 목장지대를 벗어나면 해변 돌길을 걷는다. 우묵사스레피나무들이 바람을 맞으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다. 잎은 바닷바람을 이기려고 작고 두껍게 진화했다. 바다와 너무 잘 어울리는 나무다.

해변과 목장. 어울리지 않지만 올레길에서는 매력이 있는 풍경이 된다.

ⓒ 전용호

올레길 3코스 소낭밭 숲길

ⓒ 전용호

해안길을 벗어나면 육상에 양식장들이 들어서 있고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소낭밭 숲길'이라고 이름표를 달아놨다. 숲은 한사람 걸어갈 정도의 좁은 길. 으슥한 느낌이 든다. 평지에 이런 숲을 만난 것이 신기하다. 숲길을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농지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숲들도 밀림 같은 풍경을 보여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을 만난다. 신천리 올레길을 지난다. 올레길은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다. 바다에 바짝 붙어사는 사람들. 그래도 텃밭들을 가진 여유로운 마을 풍경이다. 배고픈다리를 건넌다. 다리가 높지 않은 세월교를 이곳사람들이 아래로 배가 꺼져 있다고 해서 배고픈다리라고 불렀단다.

표선해변. 하늘과 바다와 모래해변

ⓒ 전용호

표선해변에서 바라본 제주의 하늘

ⓒ 전용호

해는 산에 가까워지는데 길은 아직도 3km 이상 남았다. 발걸음을 빨리하지만 멀리 보이는 표선 해변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해안길을 걸어가다 해변으로 내려선다. 모래를 밟으니 발이 푹푹 빠진다. 돌들을 밟아가면서 해변을 걷는다. 목적지가 가깝게 보이지만 한참을 간다. 표선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다. 모래와 바다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해는 넘어가고 노을만 하늘을 붉게 단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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