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87>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손용석기자 2013. 3.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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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석 195표 중 가 193표, 부 2표로 헌법 제65조에 의해 탄핵안이 가결됐음을 선언합니다."

2004년 3월 12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려 하자 단상을 향해 야유와 함께 신발과 종이뭉치가 날아들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 누구도 상상 못했던 사건이다.

탄핵안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을 배출했던 당에서 비롯됐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승리해 노 대통령을 탄생시킨 새천년민주당은 이듬해 정동영 의장을 주축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민주당에서 이탈했다. 2004년 3월 5일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가진 민주당 조순형대표는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노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등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순순히 응할 노 대통령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자 새누리당의 전신인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소수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3월 12일 새벽, 한나라당 의원들이 속속 본회의장에 진입했고 이때부터 단상 점거를 위한 여야의원들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11시 5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섰고 곧 경호권을 발동했다. 국회 경위들은 의장석을 사수하며 발버둥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하나 둘씩 끌어내기 시작했고 박의장은 제안설명을 유인물로 대체한 채 곧바로 탄핵소추안을 상정했다. 11시 56분 비명과 야유 속에 야당의원들만의 무기명투표를 통해 탄핵안은 기습적으로 가결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온 국민들도 혼란에 휩싸였다.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들끓었고, 이는 4월 15일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표출됐다. 민심은 무서웠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고 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 2당이던 민주당은 9석에 그쳤으며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었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탄핵심판은 그 해 5월 14일 전체회의를 통해 기각됐고 대통령은 두 달 여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통해 집권당이자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진정한 개혁에 실패한 후 2007년 보수세력에 정권을 내주고 소멸됐다. 노 대통령도 2009년 고인이 됐고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제 안철수 전 교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새 정치에 대한 의사를 피력했다. 조만간 안철수 신당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도 국민의 신뢰와 비판을 통해 역사에 오래 남는 정당정치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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