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WBC 야구대표팀, 진정한 프로는 아니었다

조회수 2013. 3. 6. 0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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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란 무엇인가. 어느 한 분야에서 정상급 재능을 갖고 있고 그걸 이용해 생계를 꾸려가는 걸 의미한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프로골프 선수들이 그렇다. 프로가 갖춰야할 요건은 아주 다양하다. 물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없어서 안 되는 게 기량이다. 뛰어난 기량이 없으면 프로가 되기 힘들고 프로에 발을 들여놓아도 약육강식 정글법칙 속에서 끝까지 생존하기 어렵다. 미국농구 전설적인 감독 존 우든은 "프로에서 성공은 어떠한 상황,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든지 경쟁력 있는 기량을 변함없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면에서 WBC 야구팀은 프로답지 않았다. 겉모습은 프로였지만 속은 프로가 아니었다. WBC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타들은 대거 불참했고 전지훈련 기간 중에도 여러 명이 바뀌었다. 물론 부상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대표를 준비하는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1라운드에 대비하는 데서도 안일함이 자리했다. '설마 우리가 떨어지겠어'라는 생각으로 인해 마음은 벌써 일본으로 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 등은 대만 전력이 조직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네덜란드에 완패하는 등 우리대표팀 자체 전력분석도 형편없었다. 선수들의 컨디션도 나빴다. 선수들이 만일 1라운드에서도 떨어질 수 있다는 긴박감, 절박감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컨디션을 늦게 끌어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만 전지훈련이 독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날씨, 음식 등이 맞지 않아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는 내용. 하지만 이 모든 게 핑계라는 걸, 팬들은 다 안다.

 프로는 과거에 살아서는 안 된다. 프로는 지금 현재 살아서 꿈틀거려야하고 지금 현재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는 현재 승리의 밑거름이 되고 현재는 미래 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과거에 젖어서 과거를 부풀리는 건 은퇴한 뒤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크게 부풀려 말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 시절에 하는 말이다. 프로는 현재에 최선을 다 해야 하고 현재에서 승리해야한다. 그러나 우리 야구대표팀은 WBC 1회 대회, 2회 대회, 베이징올림픽에 젖어 있었다. 한국 야구가 이번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은 인프라 문제도 아니었고 기량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정신적으로 나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WBC에서 4강과 준우승에 올랐고 5년 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지난해 프로판에서 700만 관중을 빨아들였다. 주전들이 몇몇 빠졌다고 순식간에 예선 탈락할 정도로 곤두박질할 한국야구가 아니다. 주전이 빠지면서 팀의 기량이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특정 스타 몇몇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하위권 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진정한 프로는 몸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냉정한 머리로 뜨거운 가슴으로 무장하는 게 먼저다. 머리로는 냉정한 프로의식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에는 이기려고 하는 승부욕, 자신을 지켜보는 팬들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한다. 그래야 매순간 음식, 술, 마약, 돈, 유흥, 이성 등 온갖 유혹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실전을 준비할 수 있고, 그래야 매순간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강한 승부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팬들에게 최고 경기력으로 보답할 수 있다. 몸은 냉정한 머리와 뜨거운 심장으로 무장된 걸 겉으로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올해 프로야구는 호재가 많지 않다. 제 9구단이 참가하는 것 정도가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호재가 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홀수 구단 체제로 운영되면서 숱한 문제점이 노출될 것이고 그로 인한 잡음이 더 많을 게 분명하다. NC가 중위권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프로 야구판 전체를 뒤흔들 수준의 절대적인 파급력을 갖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번 WBC가 너무 중요했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한국이 최소한 일본까지는 갈 거라고 예상했다. 미국까지 갈 거라고 기대한 팬들도 많았다. 그래서 1라운드에서 탈락할 거라고는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1라운드 충격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날린 기회가 너무 아쉬운 이유다.

 류중일 감독은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고래를 숙였다. 선수들의 발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팬들을 무섭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그건 말이 아니라 몸으로, 몸에 앞서 마음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말은 때로는 거짓이 될 수 있지만 행동은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팬들을 운운해도 행동은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면(충분히 부응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말이다), 그건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고 말만 그럴 듯하게 할 뿐 몸은 나타하고 안일했다는 반증이다. 일부 야구 팬들은 "WBC는 WBC이고 국내프로야구는 프로야구"라면서 "WBC에서 탈락했다고 해도 국내프로야구에서 잘 하면 프로야구 인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팬들은 감동도 쉽게 받는 반면 실망도 쉽게 한다. 승리는 오래 기억하는 한편 패배는 빨리 잊는 편이다. WBC와 프로야구 인기가 별개라는 말,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야구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편협한 의견에 불과하다. 야구가 국민스포츠로,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인정받은 것은 골수 야구팬의 힘 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전까지 야구를 잘 몰랐던 일반인, 여성 팬들이 국제대회 선전을 통해 야구의 묘미를 알고 야구장을 찾고 야구팬이 되어갔던 게 더 컸다. 그래서 야구 타이틀 스폰서 가격은 올랐고 중계권료도 상승했으며 프로야구구단은 적잖은 수익과 높은 인기를 누렸다. 즉, 애국심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국제대회에서 거둔 좋은 성적이 국내프로리그 인기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온 게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현실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별다른 호재와 이슈가 없는 올해 국내프로야구에 앞서 열린 WBC가 프로야구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됐어야 했고 앞서 야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빨아들이는 기폭제가 됐어야 했다. 어쨌든 우리 대표팀에게 이번 WBC는 이걸로 끝났다. 1라운드 탈락한 대표팀은 적잖은 비판을 받을 것이다. 비판의 수위가 높다는 건, 야구를 미워한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지금 할 것은 그런 비판과 충고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다시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표현되는 말이 아니라 부진을 씻겠다는 진정한 마음으로,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우러난 절박하고 진지한 몸짓으로 팬들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그래야 프로야구 인기가 유지될 수 있고 그래야 WBC 부진으로 실망한 사람의 마음으로 야구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프로야구,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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