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쥐고 "물러설 수 없다"..박근혜식 '압박정치' 서막

2013. 3. 4. 2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뉴스분석] 박대통령 첫 대국민담화

정부조직법 원안통과 야당에 압박

여당엔 '타협불가' 방침 제시한 셈

수석회의선 "통과 안되면 식물정부"

민주당 "입법부를 시녀화하나" 반발

취임 1주일째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여야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야당의 양보를 압박하고 나섰다.

야당은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여당에 대해선 '타협 불가 가이드라인 제시'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야당이 취임 초반부터 '강 대 강'으로 물러섬 없이 대치하면서 여당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학기술과 방송통신 융합에 기반한 아이시티(ICT) 산업 기반 육성을 통해 국가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저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며 국회에 미래창조과학부 원안 통과를 강하게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뒤이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 회기가 내일까지인데 그때까지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새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오늘이라도 국회와 청와대 간 가능한 대화 채널을 모두 열어 처리될 수 있도록 수석들께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화가 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시종일관 싸늘하고 굳은 표정이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주먹을 불끈 쥐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담화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윤창중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담화문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백기투항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담화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조직 개편 문제는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로, 국회에서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제아무리 국정철학이라고 해도 대통령 촉구 담화, 대야당 압박 일방주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근본적인 문제는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이) 대통령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으로 물러설 수 없다며 청와대 면담 요청에 응해 달라는 것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민주당에 '정치적 굴복'을 요구했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1일부터 김행·윤창중 두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이 연일 '긴급브리핑'을 하며 야당에 정부조직법 처리를 압박했다. 청와대 회담 계획을 미리 공개해 야당의 반발을 불렀다. 뒤이어 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격앙된 모습으로 야당을 몰아세웠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청와대에서 연거푸 기자회견을 한 것도 황당하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담화문을 발표하는 게 정상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 이건 국회와의 관계를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담화문의 논리구조를 놓고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안엔 어떤 정치적 사심도 담겨 있지 않다. 방송 장악을 할 의도도 전혀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의 마음을 정치권과 국민들이 이해해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중요한 건 박 대통령의 의도나 진정성이 아니라, 어떤 행위나 조치의 결과다. 국민들은 그 결과를 근거로 판단하는데, '왜 내 의도를 못 믿느냐'고 하는 건 독선"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9대 국회가 개원할 때,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문제를 해결하기로 사실상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 약속은 '사심 없는 충정'이었을지라도,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도 "대통령의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지 않으나, 제도적으로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담화 가운데 "정부조직 개편안은 오랜 고심과 세심한 검토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거나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경제를 일으킬 성장엔진 가동이 늦어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등의 대목도 '나는 오류가 없다. 나는 언제나 옳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케케묵은 안보 논리 등으로 위기를 과장했다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고, 글로벌 경제위기와 서민 경제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안과 국민경제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을 볼모로 잡고 안보 얘기까지 하면서 국정 운영의 파탄이니 뭐니 하며 국민의 불안을 과장되게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놓으면 안 된다"며 그동안 보여온 '정치 혐오증'을 또 한번 드러내기도 했다. 갈등을 둘러싼 대화와 타협, 협상이 본질인 정치를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국회 입법권과 법률을 무시하는 대국회관, 대야당관으로 어떻게 새 정부가 국민행복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무서운 대통령', 정치가 사라졌다 [한겨레캐스트 #51]

<한겨레 인기기사>■ 박 대통령 화난 듯 '부르르'…시종일관 불만 드러내노회찬 "안철수, 내게 양해구한 것처럼 각본"조윤선 장관 후보 "5·16 평가할만큼 공부 안됐다"새학기 망상 경험하면 큰일… '조현병 의심'WBC '경우의 수' 등장…반전은 있다?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