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이름 오묘한 맛.. '빙떡'을 소개합니다

2013. 3. 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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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빙글 빙글 말며 만든다고 이름 지었다는 재미있는 음식 '빙떡'

ⓒ 김종성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탐라식당'이라는 자그마한 식당이 생겼다. 식당 이름에서처럼 제주 향토 음식만을 내오는 곳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오분자기 해물 뚝배기, 흑돼지 구이, 돔베고기까지 정말 제주 음식들로 푸짐하다. 제주 바다와 해녀 할망을 연상케 하는 해물 뚝배기를 시켜 먹으며 문득 떠오른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빙떡'. 하지만 아쉽게도 빙떡은 탐라식당 메뉴에 없었다.

제주의 음식 문화는 '육지'에서 온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중 제주 전통시장에 가면 맛볼 수 있는 음식 중에 빙떡이란 것이 있다. 처음엔 낯설지만 알게 될수록 정이 가는 제주의 물산 가운데 하나로, 쌀이 아닌 메밀로 만든 떡이다. 옥돔이나 흑돼지는 육지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제주도를 찾아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제주만의 진짜 향토음식이다.

빙떡은 메밀 반죽에 무채를 넣어 빙빙 만 것인데 '빙빙 만다'고 해서, 또는 '빙철(빙떡이나 전을 지질 때 사용하는 번철)'에 짓는다 하여 빙떡이라 부른다고 한다. 제주의 시장통 작은 노점에서 처음 그 이름을 보았을 때 차게 해서 먹는('얼음 빙' 자를 쓰는 줄 알고) 특이한 떡인 줄 알았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음식

빙떡의 '소'로 들어간 메밀과 무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담백하게 느껴져온다.

ⓒ 김종성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내게 담백한 맛을 알려주는데다 제주인의 지혜까지 깃들어 있는 대표적인 제주의 전통떡 빙떡은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떡이다. 빙떡은 썰지 않고 그냥 먹는데 메밀전의 담백한 맛과 무숙채의 삼삼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제주의 별미 음식.

빙떡을 반쯤 먹고 나서 그 속을 살짝 들여다보면 참 단출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이래뵈도 7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오래된 떡이다. 메밀과 무의 절묘한 조화로 어우러진 음식으로 오징어와 김치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이 된 통영의 충무김밥을 떠오르게도 한다.

제주의 음식들 대부분이 이렇다. 복잡한 조리 과정 없이 단순한 요리법으로 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살린다. 밭일 하랴 물일 하랴 요리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기도 했을 테고, 재료가 신선하니 굳이 복잡한 조리 과정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겠다. 역시 음식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지혜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강원도 동해시 북평시장에서 만난 총떡 혹은 메밀전병, 제주 빙떡과 닮았다.

ⓒ 김종성

빙떡엔 먹을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제주섬 사람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말목장을 만들고자 제주를 아예 직할령으로 삼아 100년간이나 직접 지배한 원나라(몽골)가 전해준 메밀. 피를 맑게 하고 단백질, 여러 비타민이 풍부하지만 독성이 있어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단점이 있는 곡물이었다.

메밀은 쌀에 익숙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곡식이었으나, 강원도와 북부지방의 산악지대와 제주처럼 돌이 많고 척박한 땅에는 더없이 잘 자라는 좋은 작물이었다. 배고픈 시절 이 메밀을 섭취하게 위해 제주인들이 고안해낸 과학적인 음식이 바로 빙떡이다.

메밀 하면 < 메밀꽃 필 무렵 > 의 고장 강원도 봉평이 떠오르듯이 강원도 영월이나 정선, 동해시에 있는 시장에서도 메밀떡을 만날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도 제주도만큼이나 쉽고 재미나게 지은 이름은 '총떡'(혹은 '메밀전병'이라고 부른다). 메밀전 안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다르지만, 그 모양새가 빙떡과 꼭 닮아 신기하다.

최고의 음식은 '추억을 먹는 것'

원나라(몽골)에서 전해진 메밀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제주의 무채.

ⓒ 김종성

빙떡의 '소'로 사용되고 있는 '무'에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무'는 소화효소가 아주 풍부하여 소화가 잘 안 되는 메밀의 독성을 상쇄시키는 더할 나위 없는 찰떡궁합 식재료. 이후 빙떡은 그 옛날 늘 식량난에 허덕였던 제주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식량원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의 관혼상제 때 널리 이용되어온 음식이며 경조사는 물론, 명절과 제사의 단골이었다.

처음에 먹을 땐 그냥 밍밍한 맛만 느껴졌던 떡이라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었는데 제주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 찾게 되는 게 빙떡이다. 입 안에 길쭉한 빙떡을 가득 넣고 조물조물 먹다보면 드는 생각.

'생긴 것도 희한하지만, 맛도 참 희한하단 말이지. 도대체 이 맛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아삭한 맛? 고소한 맛? 심심한 맛?'

이렇듯 빙떡은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야릇한 맛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성을 갖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 맛을 보는 사람들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가 하고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다. 심지어 제주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미니멀리즘(최소주의) 푸드.

ⓒ 김종성

누군가 세계 10대 요리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맛있고 비싼 요리는 다 먹어보았을 요리사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들 중 단 두 사람만이 캐비어와 송로버섯이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모두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 등 흔하디 흔한 음식을 찾았다.

우리로 치자면 떡볶이, 어묵, 김밥과 같은 단순 소박한 음식인 이것들은 그들이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기 전에 제일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에게 있어 최고의 음식은 바로 추억인 셈이다. 추억은 이렇듯 힘이 세다. 우리의 육체를 지탱하는 것이 음식이라면, 우리의 정신을 지탱하는 것은 추억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빙떡을 먹어온 토박이 제주 사람이라면 그만의 추억으로 인해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고향의 음식일 거다. 제주 사는 친구의 말을 빌자면 빙떡의 맛을 그리워하고 음미할 정도가 되었다면 비로소 제주 사람이 다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다. 동네 탐라식당에 가서 메뉴에 빙떡도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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