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대생 더치페이 체험기
발렌타인 데이. 나의 더치페이 라이프 D데이! 레스토랑은 커플들로 넘쳐났다. 저들의 밥값은 누가 낼까? 당연(?) 열에 열은 남자들이 계산서를 챙겼다. 식사 후 남자친구 앞에 놓인 계산서를 얼른 집어 들며 말했다.
"우리 더치페이 하자.""응?"
당황해 하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현금이 없으니 내가 일단 카드로 낼게. 절반만 돌려줘."옆 테이블 커플은 신기한 듯 우리를 힘끔거렸고, 남자 친구는 낯을 붉혔다. "장난 치지 마~"
어쨌건 나는 계산을 했고 그는 뾰루퉁해졌다."갑자기 왜 그래? 멀어지려는 것 같잖아."
"해보자. 나 근사해 보이지 않아?"
며칠 뒤 함께 편의점에 들렀던 날. 과일주스와 캔 커피. 신용카드를 건네는 그에게 "내건 내가 낼게"라고 했고, 그의 신용카드를 받아 들려던 편의점 점원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는 못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서둘러 편의점을 나왔다.
"이거 그만하자. 요즘 무슨 일 있어?"
"좋잖아. 부담스럽지 않고."
조금씩 더치페이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뭘 하든, 뭘 먹든 편하고 솔직해질 수 있었다.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어느 저녁. 밥값 2만9,100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 그럼 한 사람당 1만4,550원씩 내면 되겠다." "1만4,500원만 줘. 50원은 내가 쏠게!"어이가 없는 듯 종업원도 웃는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도 조금씩….
더치페이 문제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는 듯하다. 관습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경험은 어쩌면 예외적인 경우일지 모른다.
일전에 한 신문에 더치페이 라이프를 선언하며 그 당위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썼던 김현지(숙명여대ㆍ22ㆍ미디어학부 3)씨는 험난했던 경험담을 토로했다.
자존심인지 자격지심인지 모를 남자친구의 비협조적 반응, 함께 미팅 나갔던 여자 친구들의 반응("우리가 밥값을 왜 내? 내고 싶으면 너나 내.") 끝내 어색해져버린 한 선배와의 관계….
데이트비용 갈등으로 이별을 겪고, 남녀관계가 돈에 얽매이는 게 싫어 더치페이 소신을 갖게 됐다는 김씨지만 그의 요즘 더치페이 라이프는 제한적이라고 했다. 선후배와 만날 땐 대충 분위기에 따른다는 것. "어렵죠. 어렵지만, 그게 동등하게 만나 각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김의정 인턴기자 (숙명여대 경영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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