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명암]⑤ 과천의 눈물..상권 몰락, 집값은 곤두박질

전태훤 기자 2013. 2. 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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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의 한 대형 건물 식당가. 정부과천청사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인 이곳은 주중 점심때면 공무원들의 단체 예약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식당 밖까지 줄을 서는 손님도 흔했다. 하지만 이날 찾은 식당가는 인기척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썰렁했다.

인근 빌딩의 한 일식당. 이곳 역시 괜찮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 점심때면 주변 직장인들과 공무원으로 붐벼 예약하지 않고서는 식사하기가 어려웠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은 크고 작은 10여개의 테이블에 점심 손님을 채운 자리는 두 곳뿐이었다. 주인 유모 씨는 "세종시로 정부부처가 옮겨간 뒤로는 원턴(전체 테이블을 한번 채우는 것) 하기도 어렵고 매상도 60% 가까이 줄었다"며 "홀서빙 직원도 반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과천시 원문동 과천주공3단지 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슈르 전용 59㎡ 아파트 가격은 1년 전보다 5000만원 이상 떨어지며 현재 4억7000만~5억원 선에 시세가 형성됐다. 간혹 시세보다 낮은 급매물이 나오곤 하지만, 찾는 이의 발길이 끊어진 지도 오래됐다.

한때 3.3㎡당 3000만원을 넘나드는 비싼 집값으로 '제2의 강남'이란 꼬리표까지 붙었던 과천. 1982년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계기로 조성된 계획신도시 과천이 30년 만에 세종시에 자리를 내 주며 저물어가고 있다.

◆ 공무원 빠져 '텅빈' 상권

과천 청사의 이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주변 상권. 정부과천청사에는 7개 정부 부처와 8개 산하 기관에 6000명 가까운 공무원이 근무했다. 이 가운데 국토해양부 등 4개 부처와 2개 산하 기관 4500명가량이 지난해 말 세종시로 이전했고, 올해 11월에는 지식경제부와 고용노동부 등 6개 소속 기관이 차례로 옮겨간다.

과천 상권을 먹여 살린 공무원들이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당장 지역 상권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상당수 가게는 월세 내기도 빠듯할 정도가 됐고, 폐업을 하는 경우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정부 청사와 가까워 핵심 상권으로 꼽히는 중앙·별양동 일대에선 청사 이전이 본격화하면서 최근 6개월 새 800개 가까운 점포 중 50여곳이 문은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서른 곳 가까이는 음식점인 것으로 파악된다.

별양동에서 삼겹살 전문점을 하는 박모씨는 "작년만 하더라도 저녁에는 공무원들 단체 회식자리도 많았는데, 요샌 주말에 인근 아파트에서 오는 가족 단위 손님들 정도가 고작"이라며 "낮에도 공무원 손님은 80% 이상 줄었고, 매출도 1년 전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라고 말했다.

과천청사 앞 본사를 둔 코오롱글로벌의 한 직원은 "점심때면 늘 붐비는 주변 식당들은 다 우리 회사 직원들 때문에 북적이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얼마 전부터 줄 서는 일이 없어져서 식당주인에게 물었더니 청사이전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공무원을 따라 아예 세종시로 내려갈 채비를 하는 곳도 생겼다. 중앙동 A한식당과 별양동 B횟집 등은 세종시로 옮기기로 하고 점포를 물색 중이다.

◆ 맥 풀린 부동산

부동산 침체가 비단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나, 유독 과천의 하락은 도드라진다.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3.99%의 하락률을 보였으나, 과천은 -10.39%로 낙폭이 2배 이상 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9년 9월 3.3㎡당 3053만원까지 올라갔던 과천 아파트 평균 시세는 2010년 세종시 이전기관 확정 소식과 함께 내리막길로 들어서, 최근 3.3㎡당 2335만원까지 떨어졌다. 2년여 만에 평균 23.5%나 내린 셈이다.

과천주공2단지 전용 58㎡는 지난해 말보다 1억원 이상 빠지면서 최근엔 6억원 선을 약간 웃도는 정도다.

2010년초 9억5000만원이 넘었던 별양동 과천주공5단지 122㎡는 7억2000만원까지 내려앉았고, 중앙동 과천주공10단지 109㎡는 같은 기간 12억원에서 8억50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부분의 주택이 3년 사이에 25~30% 가량 하락했다.

◆ 미래부에 기대를?

수도권 공동화 우려 등을 고려해 최근 박근혜 정부의 최대 공룡 부처로 탄생할 예정인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입지가 과천청사로 정해지면서, 꺼져만 가던 과천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기존 경제부처의 이전으로 텅 빈 자리를 채울 새로운 거대 부처가 과천의 침체된 상권과 주택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당장 호재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미래부의 과천청사 입주 예정은 2014년 3월, 1년여는 일단 버텨야 한다.

미래부의 과천청사 입지가 일시적인 것도 문제. 안전행정부(옛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낸 공문에 청사 배정기간이 '입지 확정 후 이전까지'로 명기돼, 언제까지 과천에 있을지, 언제 다시 세종시로 옮길지 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중앙동에서 30㎡ 남짓한 백반정식집을 하는 김모(49·여)씨는 "큰 가게들이야 돈이 있으니 몇달이라도 버티겠지만,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두어 달만 손님이 끊겨도 문을 닫을 처지"라며 "큰 부처가 새로 온다고는 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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