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한국인, 자제력 잃은 한국] (6) 학교교육이 문제다

김연주 기자 2013. 2. 27.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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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감정조절법 초등학교 5년간 가르치는데.. 한국은 사실상 無교육

올해 고3이 되는 정모(18)양은 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가끔씩 학교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욱'할 때가 있다.

작년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자기보다 훨씬 시험을 잘 본 친구가 "너 몇 점 받았어? 나는 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라고 말을 걸었다. 정양은 갑자기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정양은 "화를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다"며 "어떻게 화를 참는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정양이 수업 시간에 분노를 조절하는 것에 대해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년 1학기 때 일주일에 4시간씩 '생활과 윤리' 수업을 들었다. 이 중 '인격 수양의 삶'이라는 단원에서 남과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한다는 글을 읽었다. 1학년 2학기엔 도덕 과목 '평화로운 삶의 추구' 단원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정양은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실제로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 적이 없다"고 했다. 시험을 보기 위한 이론만 암기한 것이다.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는 추상적 개념이나 당위성만 책을 통해 읽은 것이다.

학생들 "도덕 교과서 외우기만"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학교에서 폭력이나 욕설을 휘두르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우리 학교교육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 인내심, 감정 절제 등을 '이론'으로만 가르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니 화가 나면 대화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기 십상이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민 의식을 체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지가 초·중·고교 교사들에게 의뢰해 도덕, 사회, 윤리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결과, 감정을 절제하는 법과 관련된 내용은 학년별로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었다.

예컨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바른 생활' 교과서에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2학년 바른 생활에는 고운 말을 쓰고 공공 예절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는 단원이 있다. 3~6학년 '도덕'과 '사회' 과목에도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규칙을 지키는 법, 타인을 배려하는 법 등이 들어 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화가 나도 남에게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둘러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중·고교 교육과정에도 똑같이 들어 있다.

그러나 본지가 초·중·고교생 10명에게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욱'하는 상황에서 도움이 됐느냐고 물었더니 10명 모두 "도움이 안 됐다"고 답했다.

고2 임모(17)양은 "도덕 수업도 다른 과목처럼 시험 때문에 외운다는 느낌으로 공부한다"며 "교과서 내용이 다 맞는 내용이지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론'으로만 배우지 '실천하는 법'은 못 배운 것이다.

고3 김모(18)군은 "층간 소음 문제가 났을 때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몇번이나 이웃에게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해도 해결이 안 돼서 결국 '욱'하게 되더라"며 "어렸을 때부터 수업 시간에 남을 배려하고 상호 협동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중3 이모양은 "수업 시간에 화나는 실제 상황을 체험하고 역할극을 해보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상황 대처법 가르쳐라"

충남 미당초 박은종 교장(공주대 겸임교수)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자제력을 못 갖춘 근본 원인은 교육과정과 실제 현실의 큰 괴리 때문"이라며 "12년 동안 배우는 교과서 내용은 훌륭한데, 교사들이 이를 피상적으로 가르치고 평가하니 '교과서'와 학생들의 '내면(內面)'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위센터 김미진 전문상담교사는 "정규 수업 시간에 관련 단원에서 모둠별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구체적인 갈등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생각해보고,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교육을 늘려야 한다"며 "가능하다면 역할극을 통해 직접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을 경험해보고 대처도 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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