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미용실 젊은이 11시간째 서 있네

송지혜 기자 2013. 2. 27.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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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이승기씨(가명)는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4년 전 중학교를 자퇴한 후 프랜차이즈 헤어숍에서 스태프(인턴)로 일을 시작했다.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한 일이었다. 하루 11시간씩 주 6일 근무한다. 출근하자마자 매장·화장실·계단·승강기를 청소하고, 수건·약 따위를 확인한다. '샴푸(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와 바닥 머리카락 쓸기, 디자이너 보조, 고객 응대가 주된 업무다.

이씨는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허리디스크 질환이 생겼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하지정맥류를 앓았다. 그는 "일이 있으나 없으나 서 있어야 하는 탓에 업계에서 이런 병은 흔하다"라고 말했다. 치료비 10만원을 감당하기 벅차 한 달에 한 번만 병원을 찾는다.

ⓒ시사IN 이명익

그의 월급은 70만원. 식대와 교통비 명목으로 20만원을 더 받으면 한 달 90만원가량이다. 헤어숍 원장은 자체 승급시험에 통과할 때마다 월급을 10만원씩 인상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그는 체계적인 기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 디자이너는 근무시간 외 교육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도제 시스템이다. 초급 디자이너로 승급하는 데 평균 3년이 걸린다던 당초 얘기와 달리, 그는 4년째에 접어들어도 인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턴 노동은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치르는 교육으로 치부된다. 대체로 10대 후반∼20대 초·중반에 이르는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교육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근무 시간에는 고객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디자이너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는 엄연한 스태프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처우를 문제 삼아 업체를 옮기더라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업체 이름만 다를 뿐 인턴의 노동시간·임금 수준 등 기본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 시사IN > 과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미용 산업에 종사하는 인턴의 근무조건에 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헤어숍 223곳을 2012년 10월∼2013년 2월에 조사했다. 월 급여 수준, 하루 근무시간, 주당 휴무일, 4대 보험 가입 여부 등을 문의했다.

최저임금 이하, 시간외수당 못 받아

조사 결과 헤어숍 인턴은 긴 노동시간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았다(위 표 참조). 헤어숍 인턴들은 하루 평균 11시간을 일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시간, 월급은 평균 93만원이었다. 2012년 시간당 최저임금(4580원)에 못 미치는 3039원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상 8시간 초과 근무에 대해서는 시간외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지켜지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주당 근로 52시간 미만 사업장은 조사 대상 223곳 가운데 4곳에 불과했다. 몇몇 업체의 경우 인턴의 선택에 따라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보험금까지 빠져나가면 남는 게 없어 대부분의 인턴은 스스로 보험 가입을 포기한다.

김병철씨(20)는 지난해 11∼12월 두 달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ㅇ헤어숍 인턴으로 일했다. 오전 9시∼오후 9시,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한 달에 두세 차례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시민에게 미용실 홍보물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시간외수당은 없었다. 반면, 지각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10분을 지각하면 5000원, 10분 후 1분이 초과될 때마다 5000원씩 월급에서 깎였다. 한 달 동안 지각이 3차례 누적되면 1만원이 추가 삭감됐다. 김씨는 첫 달 월급 80만원 가운데 지각벌금 3만5000원을 물었다. 일당 2만6000원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그는 더 이상 헤어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인턴은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항상 서서 대기해야 한다. 인턴 기간이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가까이 되다보니, 하지정맥류 발생률이 높았다. 안 아무개씨(22)는 인턴 10개월 만에 동료 4명이 종아리 실핏줄이 터지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일을 목격했다. 샴푸·중화 약품을 만지는 탓에 손과 팔에는 붉은 두드러기가 가시지 않았다. 치료비는 본인 부담이다.

의료비나 치료비 외에 인턴들은 교육비 명목으로 오히려 헤어숍에 돈을 낸다. 주요 프랜차이즈 헤어숍은 홈페이지에 자체 교육기관을 운영한다고 홍보한다. 인턴은 본인이 소속된 업체의 본사교육을 이수해야만 승급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교육은 공짜가 아니다. 교육과정은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6개월씩 6단계(파마-드라이-염색-커트-역량강화-역량강화)를 거친다. 인턴은 2주에 한 차례씩 헤어숍 휴무일에 맞춰 교육을 받는다. ㅇ헤어숍의 경우, 초기 교육비는 39만6000원, 최종 단계는 120여만 원이나 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2년10개월 동안 인턴이 온전히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총 333만3000원이다. 그나마 한 번에 통과할 때의 금액이다. 가발·가위·드라이기 같은 재료비를 포함하면 비용은 더 든다. 수준별 시험을 통과하고,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해당 헤어숍의 '초급 디자이너 디플로마(인증서)'를 얻을 수 있다. 김병철씨는 "인턴도 돈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교육비에다 미용 기구까지 사려면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라고 말했다.

헤어숍은 실전 경험을 중요하게 여겨, 취업 시 미용사 국가 자격증이나 미용학 전공자에 대한 우대는 거의 없었다. 자격증이 있거나 관련 학과를 전공한 경우도 첫 출발은 인턴이었다. 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인턴 생활은 필수였다. 특히 서울 강남역·압구정동·청담동에서 인턴을 경험했다면, 더 높은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실제로 ㅂ헤어숍 본사에서 치르는 평가에서도 강남역과 압구정동 출신에게 가산점을 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남역·압구정동·청담동 지역은 '손님이 많아 끼니를 굶고 월급을 적게 받아도 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2013년 현재 주요 7대 프랜차이즈 헤어숍은 1200여 곳에 달한다. < 시사IN > 과 청년유니온 조사에 따르면, 화려한 헤어숍 이면에 인턴들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숨어 있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꿈을 담보로 인턴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 구조다. 고용노동부가 미용실 업계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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