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화갑 "70평생 분신 머물렀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이영창기자 2013. 2. 23.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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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DJ서 충격 반전 '한화갑의 선회이유'

한화갑(74) 씨의 별명은 '리틀 DJ'다. 50년 가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고, 말투와 외모까지 DJ와 닮아서다. 동교동계 가신일 때도 집권 여당 대표일 때도 DJ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DJ를 떠올렸다. 그런 그의 박근혜 당선인 지지 선언은 지난 대선의 가장 드라마틱한 뉴스 중 하나였다. 그는 '정치인 한화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정체성을 찾으니 뭐가 달라지던가? 그는 "완전히 개안(開眼)이 되고 언론자유가 확보된 거지, 무슨 말을 해도 거침이 없어"라고 답했다. 그의 말은 과연 거침없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한 이유를 한 가지만 꼽는다면

"한 번 변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김대중이라는 거울에 우리를 비춰 봐서, 대통령과 똑같으면 말하고 다르면 안 했다. 똑같이 만들어서 발언했다. 그러니 내가 없었다. 내 이미지는 김대중의 부하나 비서 이런 인상뿐이다. 당원 직선으로 여당 대표까지 지냈는데도 그렇다. 이제 대통령도 돌아가셨고 나 역시 정치를 마감하는 시점에 와있다. '이것이 한화갑이다' 이런 걸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다."

그 정체성이 꼭 박 당선인 지지라는 형태여야 했나.

"문재인 후보는 지지할 수 없었다. 문재인이란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바일인가 뭔가 이거 가지고 1위를 한 거다. 선출된 후보가 아니라 만들어진 후보다. 그런 후보를 왜 지지하나. 선택 대상이 박근혜뿐이었다. 박 당선인을 세 번 만났는데 상당히 호감이 갔다. 요조숙녀 인상이었다. 저렇게 요조숙녀인데 새누리당 사람들이 저 앞에만 가면 어쩔 줄 몰라 하니 뭔가 카리스마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역사상 여성 대통령이 없었는데, 지금 같은 IT 시대에 여성다움이 더 돋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경상도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려고 노인들이 눈물로 호소했는데, 이번 선거에서 그처럼 지극한 염원을 짊어진 후보가 누가 있었나? 과거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 때도 그런 염원이 있었지 않은가? 박 당선인이 그 염원에 책임감을 느끼면 좋은 정치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문 후보 쪽에서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말은 없었나?

"없었다. 권노갑(동교동계 맏형)씨만 잡으면 동교동을 다 잡는다고 생각했겠지. 사람들은 동교동계를 전부 같은 식구로 생각하는데, 같은 식구끼리 질투와 시기가 더 많은 법이다." 이제는 DJ 후광에서 벗어나려는 그에게 과거를 후회하냐고 물었다. 그는 "후회 없다. 그게 다 재산이다, 단 노후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헌정회에서 전직 의원에게 주는 연금 월 120만원이 고정수입의 전부라고 말했다.

DJ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유지(遺志)를 남겼다고 하던데.

"그런 말씀 못 들었다. 유지를 조작했다는 말까지 있다."

결심을 이희호 여사에게도 안 알렸다던데.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옛날식으로 거기 가서 비서처럼 승낙 받고 그 짓을 왜 하나? 물론 사모님께서 섭섭해 하셨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한 한광옥 김경재씨와 사전에 상의를 했나.

"안 했다. 과거에도 그런 사람들과는 상의를 안 했다."

김옥두 전 의원이 공개편지에서 '무슨 낯으로 대통령(DJ)을 뵙겠는가'라며 원망했는데.

"그건 정치적으로 한 말이다. 본심이라면 김옥두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나를 걱정해 주고 친구로서 도운 적이 없다. 함께 복역하고 한솥밥을 먹었던 것 다 소용없다. 정치세계에서는 남을 무너뜨려야 내가 올라서는 것이다. (동교동계에서) 내가 항상 표적이었다."

DJ가 당신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 것 같은가.

"지금 김대중 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김대중 후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 입장에서 니가 마음대로 판단하는 거지' 그렇게 여기실 거다. 그리고 (모함으로) 나를 오해하셨던 것의 전후 사정을 천당에 계시면서 다 파악하셨을 거다. '한화갑이가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구나, 모함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실 거다." 때늦은 자기 정체성 확립이 '인간 한화갑'이 변신한 원동력이었다면, 호남 발전은 '정치인 한화갑'이 박 당선인을 지지한 이유였다. 그는 박 당선인을 지지하면서 "호남 숙원사업을 위해 비싼 값에 팔려간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과 무슨 얘기를 했나.

"박정희 대통령은 전라도 지지를 받아 당선됐는데도 전라도를 차별했다. 그러니 당선 되시거든 아버지가 한 일을 보상하는 차원에서라도 전라도 잘 발전시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 유신시대 긴급조치 피해자들 전부 민주인사로 추대하고 보상하라고?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하던가.

(몇 초 뜸을 들이더니) "그런다고 했다."

차기 정부에서 직접 일할 생각은 있나.

"훈수를 둘 수는 있지만 그 쪽에 머리 조아리고 그러면 얼마나 추하겠나. 나는 내 분수를 안다. 거기 가서 뭘 해보려고 민 게 아니다. 그래서 새누리당 입당도 안 하고 직접 선거운동도 안 하고 지지선언으로 끝낸 것이다."

비싸게 팔려간다고 말했는데, 제값을 안 쳐주면 어쩌나.

"지켜볼 거다. 약속을 안 지키면 할 수 없지만, 청와대 앞에 가서 혼자 피켓 들고 데모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얼마든지 (약속을 지키게 할) 길이 있다."

호남발전을 위해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얘기에, 한 지인은 "호남이 거지냐"며 언성을 높였고, 심지어 "목포 노동자 일곱 명이 '7인의 결사대'를 조직해 한화갑을 죽이러 간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는 "각오했던 바다. 시간이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지지 선언이 박 당선인에게 도움을 줬을까.

"한 표라도 몰아줬겠지 깎아먹지는 않았을 거다. 전라도에서는 나를 배신자니 뭐니 했지만, 수도권 호남인들은 내 말에 상당히 동조했다. 영남의 구 민주당 지지자들도 나에게 많이 동조했다고 들었다." (그는 "요즘 호남선 타면 사람들이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경부선을 타면 목례를 받는다"고도 했다.)

지역구(전남 무안ㆍ신안) 사무실을 없앴던데.

"이번에 완전히 고향을 떠나버릴 작정으로 본적도 옮겨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래도 탯줄 묻은 땅이라고, 내가 사업이라도 해줘야 고향이 발전할 것 아닌가. (두툼한 파일을 꺼내 보이며) 신안군수에게 지역개발 자료를 넘겨받았다. 내가 중앙정부를 설득하는 일을 맡겠다고 했다."

정말 본적을 옮길 건가.

"고향에 정이 떨어져 본적을 옮기려 했지만 못하겠더라. 이 정부(MB정부)에서는 전라도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모두 슬픈 얘기다. 정권에 줄 댈 곳도 없고 어디 부탁할 사람도 없는 절해고도라는 것이다. 전라도는 허탈감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나라도 나서 지역사업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박 당선인은 MB와 다르리라 보나.

"MB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자랐다. 박 당선인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서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가 과거에 한 일을 잘 알고 그걸 보상해주겠다는 심리가 있다."

그의 선택을 두고 세상은 친노 진영에 대한 분노의 발로라고도 했고, 노욕과 소외감이 빚은 배신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앞세웠다. 호남 발전이나 국민대통합 같은 세련된 명분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정치인 한화갑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세평(世評)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내보이려는 듯 그의 어떤 표현들은 사뭇 격정적이었고, 하지 않아도 좋을 자해(自害)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진실이 뭐든 그 역시 자신과의, 그리고 자신만의 처절한 싸움을 시작한 듯 보였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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