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저 못피해간 불황의 그림자

우현석선임기자 2013. 2. 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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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헌금 크게 줄고 종교시설 경매 늘어지방 말사·개척 교회일수록 침체 영향 커

"한국 불황이 미국 불황보다 더 심각합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신도 수가 급감해 일자리를 잃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목사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학원에서 2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형편이 더 나은 것 같아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요."

미국의 내로라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백인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A목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국 후 2년간 국내에 머물며 학원과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미국은 불황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목회자 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도저히 목회자 자리를 찾을 수 없어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산업계와 서민경제를 뒤덮고 있는 경기침체가 종교계마저 엄습하고 있다.

교회의 헌금, 사찰의 시주금이 크게 줄어든데다 신도 수마저 정체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교단이 분화돼 있는 개신교와 지방에 말사가 분포돼 있는 불교에서 감지되고 있다. 큰 절이나 대형 교회들은 경기침체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반면 작은 절이나 개척교회일수록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 지방 말사의 경우 신도 수와 시주금이 크게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이 절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지지난해보다 시주금이 20% 정도 줄었다"며 "신도들이 먹고 살기가 힘드니 손쉽게 줄일 수 있는 시주금을 먼저 줄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불교는 개신교의 십일조 같은 시주금이 없는데다 말사들이 지방과 산속에 있다 보니 경기침체를 더욱 뼈저리게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가 돈이 많다고 하지만 부동산 빼놓고 현금 자산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불교계도 사정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개신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계에 정통한 한 목사는 "최근 들어 개척교회를 일구던 목사들이 교회를 처분하고 대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를 찾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사정은 딱하지만 교단과 신도들의 눈이 있어 그 같은 청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지난해 법원 경매에 나온 교회와 사찰 등 종교시설이 전년(251건)보다 20%가량 늘어났다. 연도별 종교시설 경매물건 수가 ▦2008년 181개 ▦2009년 227개 ▦2010년 299개로 급증했다가 2011년 251개로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 272건으로 다시 늘어난 것이다.

그나마 해마다 교세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천주교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영식 천주교주교회의 홍보팀장은 "천주교는 최근 몇 년간 해마다 신도 수가 2%안팎씩 늘었다"며 "해마다 3월쯤 전년 통계가 집계되는데 지난해도 비슷한 비율로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종교계의 한 관계자는 "천주교는 해마다 '한국천주교회 통계'를 발간하고 있지만 불교와 개신교는 정부가 10년마다 조사하는 센서스 외에는 이렇다 할 통계자료가 없어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 없다"며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바로는 종교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현석선임기자 hnsk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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