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주황·노랑 어우러진 제주는 벌써 봄

2013. 2. 1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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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국내 유일 감귤껍질 건조장주황색 벌판 장관곶자왈 숲길은붉은 동백꽃 지천

멀리서 바라보니 바닷가에 가꾼 대규모 꽃밭이다. 어떤 꽃 빛깔보다도 도드라지는 주황빛 꽃바다가 눈에 확 들어온다. 다가갈수록 꽃밭은 짙푸른 바다와 어울려 눈부신 대비를 이루다가, 코앞에 다가섰을 때에야 마침내 그 정체를 드러냈다. 껍데기들의 바다. 오래 감싸 익혀온 연한 알맹이를 온전히 세상에 내보내고, 쭈글쭈글해진 몸으로 말라가는 것들. 할 일 다한 표정으로 널브러진 껍데기들이 한데 모여 눈 시린 주황빛 바다를 이룬다. 9만평 넓이의 목장 터 가운데 5만평에 펼쳐진, 국내 유일의 대규모 감귤 껍질 건조장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봄~가을엔 소들을 방목하는 푸른 목초지였다가, 겨울이면 주황빛 감귤 껍질을 말리는 광활한 건조장으로 바뀌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해마다 11월부터 3월초까지, 맑은 날이면 매일 6t 트럭 20여대 분량의 감귤 껍질이 이곳에 쏟아부어진다. 과거 각 감귤농가에서 소규모로 말려오던 것을, 1981년 신천목장(남해상사) 쪽이 목초지를 건조장으로 활용하며 대형화했다.

이곳에 부려지는 감귤 껍질은, 감귤 주스 공장에서 주스를 짜낸 뒤 나온 것들이다. 검은색 건조망(길이 30m, 너비 6m)을 10여장씩 연이어 깔고, 차량이 들어와 감귤 껍질을 부리면 10여명의 일꾼들이 달려들어 골고루 펼쳐놓는다. 맑고 건조한 날씨에선 이틀, 흐리면 사나흘 꼬박 말린다. 비 예보가 있으면 건조망을 접어 덮어뒀다가 맑을 때 다시 펴야 하므로 일꾼들은 며칠 사이에 건조망을 폈다 접었다를 되풀이해야 한다. 여기서 겨울 한철에 건조되는 감귤 껍질의 양은 무려 1만여t. 잘 마른 껍질은 옆 공장에서 다시 열풍건조시킨 뒤 선별·분쇄 과정을 거친다. 상등품은 한약재(진피)와 의약품·화장품·향료 원료로, 하등품은 젖소 사료 등으로 만들어진다. 진피는 위염·소화불량·기관지염·감기 등에 효과가 있다는 한약재다.

신천목장 최종수 대표는 "진피(귤피) 국내산 공급량의 거의 100%가 여기서 나온다"며 "주스 공장에서 철저한 물세척·살균 과정을 거쳐 나오므로 잔류농약이 전혀 없는 진피가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신천목장 앞 바닷가 길은 제주올레길 제3코스 구간이다. 목장 쪽에서 목초지 일부를 개방해, 목장과 바닷가 사이 700m 거리를 올레길로 이용하도록 했다. 여느 곳에선 볼 수 없는 이 진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건조장 안으로 들어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올레꾼들이 많다. 이 주황빛 바다는 바라보는 자리와 빛의 방향에 따라 색채 선명도가 달라진다. 대체로 아침엔 목장 동북쪽에서, 오후엔 남서쪽 공장 쪽에서 바다를 향해 바라볼 때 빛깔이 뚜렷해진다.

드라마·영화에 나오는 "바닷가에서 말 달리는 장면의 단골 촬영 장소"도 이곳이다. 앞으로 경관은 한층 볼만해질 전망이다. 최종수 대표는 "조만간 목장에 야자나무를 심고, 일부엔 돌담을 쌓아 제주도의 새로운 경관지로 가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2월 중순은 제주의 동백나무들이 붉은 송이꽃을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터뜨리기 시작하는 때다. 동백꽃 절정기는 3월이라지만, 곶자왈 숲길에도 민가 돌담 곁에도 이미 큼직한 꽃송이들이 깔려 나뒹군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동백나무 군락지(제주도기념물 제39호)에서도 꽃잔치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한 할머니가 방풍림으로 조성한 동백나무 수백 그루가 빽빽하게 우거졌다. 안내판을 보니, 17살 때 이 마을로 시집온 현병춘(1858~1933)이란 분이 해초 채취와 품팔이 등으로 모은 돈 35냥으로 바닷가 황무지를 사들인 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따라 뿌린 동백 씨앗이 자라나 숲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돌담을 따라 한 바퀴 거닐며 무성하게 자란 동백숲과 제 빛깔대로 피어나고 또 떨어진 꽃송이들을 둘러보는 맛이 그윽하다. 어둡고 딱딱한 아스팔트길과 바람 숭숭 드나드는 돌담길이, 마구 떨어져 뒹굴어서 더 붉은 꽃송이들로 아주 환하게 열려 있다. 담 안의 민가에는 아직도 현 할머니의 자손들이 살아온다고 한다. 들여다보니 인기척은 없고 꽃송이 쌓인 돌담 위로 물끄러미 개들만 내다본다.

위미항은 올레 5코스 구간의 작고 아름다운 포구다. 전업 어선은 드물고 광어·돔·방어·갈치 등을 잡는 낚싯배들이 가득하다. 포구에 '

배머들코지'라 불리는 길쭉한 바윗자락이 있다. 소나무·구럼비나무들이 무성한 언덕에서 다양한 형상의 바위가 솟은 검고 긴 바윗자락이 바다 쪽으로 뻗어 있다. 본디 바윗자락은 날아가는 용의 형상 또는 붓의 형상이어서 이 마을에 인물이 많이 났으나,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이 '한라산 정기가 모인 바위'라 하여 계략을 써 파괴해버렸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15년 전 주민들이 주변에 흩어진 바위들을 모아 다시 쌓아올린 것이다. 주민 강경남(63)씨는 "어릴 적엔 저 바윗자락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보기도 좋고 놀기도 좋았지만 매립되면서 바위가 고립됐다"고 말했다. 위미리는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이기도 하다. 서영(한가인 분)의 바닷가 집 개축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travel tip뜨끈한 풀장도 즐기세요▣ 신천목장 가는 길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1132번 지방도(일주도로)를 따라 성산읍 쪽으로 가다 표선 지나면 신천리 신풍목장(승마장) 못미처 오른쪽에 신천목장(남해상사)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정문이 닫혔을 경우엔 마을길로 더 들어가 바닷가 쪽에 차를 세우고 올레길을 통해 건조장으로 간다.(신천목장 064-787-3502)

묵을 곳

나홀로 여행자라면 올레길 주변에 즐비한 게스트하우스들 중 하나를 고를 만하다. 서귀포 화순 금모래해변 부근의 아일랜드 트리 하우스(064-792-8777)는 새로 문연 깨끗한 펜션. 캐나다산 가문비나무를 써 지은 이국적 분위기의 숙소다. 2인1실 12만~18만원.

롯데호텔 제주 온수풀 '해온'(사진) 개장

롯데호텔 제주가 최근 제주 최대 규모의 야외 온수풀인 '해온'(海溫)을 문열었다. 100억원 이상을 들여 기존 야외수영장과 주변 시설을 새단장했다. 치유(힐링)와 펀을 테마로 선보인 연인·가족단위 물놀이 시설이다. 풀 바에서 음료수와 칵테일을 즐기며 수영장·온수스파·자쿠지·사우나·키즈풀 등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고급 소파베드·벽난로·오디오시스템을 갖춘 4채의 카바나를 들이고, 사해소금 입욕제를 넣은 야외 자쿠지 시설도 3개로 늘렸다. 한라산 소주에 한라봉·유채꿀을 섞어 만든 칵테일 '한라티니'도 개발해 선보였다. 호텔 쪽은 3월말까지 '해온' 개장 기념으로 디럭스 한라룸과 올레 트레킹을 묶은 숙박패키지 이벤트를 진행한다. 1577-0360.

제주도에선 이미 화사하게 피어난 유채꽃 무리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민가 돌담이나 산자락 산담 주변에도 노란 유채꽃들이 깔렸다. 대규모 유채밭을 볼 수 있는 곳은 물론, 섭지코지 들머리나 성산 일출봉 들머리의 기념촬영용 유채꽃 단지다. 개화 시기를 조절해 일찍 꽃핀 것들이다. 흔하게 보아온 유채꽃이지만, 눈부시게 피어나 흔들리는 유채꽃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역시 스멀스멀 전해져오는 봄기운을 어쩔 수 없다.

제주도의 봄기운을 느끼기 위해서 굳이 한곳에 대규모로 핀 꽃들이나 정원에 가꿔놓은 꽃나무를 찾아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마을길, 해안길, 산길 어디를 가더라도 보석 같은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다가 가만히 발치를 들여다보면 파릇한 새싹들과 꼬물꼬물 돋아난 자디잔 풀꽃들이 별처럼 반짝일 터이다.

제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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