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江 정철의 감탄사를 울진바다는 기억할까

2013. 2. 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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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根(텬근)을 못내보와 望洋亭(망양뎡)의 올은 말이 바다밧근 하날이니 하날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서 놀내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銀山(은산)을 것거내여 六合(뉵합)의 나리난닷 五月長天(오월�텬)의 白雪(백셜)은 므사일고'

관동팔경 유람에 나선 송강 정철(1536∼1593)이 '관동별곡'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경북 울진 망양정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의 망양정은 동해안에서도 가장 경치가 수려한 곳에 위치해 매월당 김시습과 겸재 정선 등 당대의 걸출한 문인과 화가들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순례지였다.

대게로 유명한 울진은 산, 바다, 강, 온천, 계곡, 동굴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금은 울릉도가 독립됐지만 고려 초부터 조선 말까지 약 1000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가 울진현 소속이었으니 동해안 유일의 섬까지 보유했던 고을인 셈이다.

울진의 해안선은 최남단의 후포항에서 최북단의 고포마을까지 102㎞. 쪽빛 바다를 벗한 항포구와 소나무숲, 그리고 크고 작은 모래 해변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최근에는 이 해안선을 따라 스킨스쿠버와 요트, 그리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모여들어 해양레포츠의 요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울진대게홍보전시관과 울진대게유래비가 위치한 후포면은 '대게의 고향'으로 불리는 고장.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일대에서 대게가 잡히기 때문이다. 왕돌초는 맞잠, 중간잠, 셋잠 등 3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수중암초지대. 동서 21㎞, 남북 54㎞에 이르는 왕돌초는 수중 경관이 아름답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126종의 해양생물이 분포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후포에서 남대천을 건너면 드넓은 해송숲에 둘러싸인 월송정이 나온다. 관동팔경 중 최남단에 위치한 월송정은 신라 화랑들이 주유하던 솔밭에 건축된 고려시대 누각으로 1980년에 현재의 정자로 개축됐다. 중국 월(越)나라에서 소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해서 월송정(越松亭)이라고 불리지만 월송정(月松亭)으로 쓰기도 한다. 십리에 걸쳐 만 그루나 된다는 울창한 솔밭에 들어서면 해풍을 타고 날아다니는 솔향이 그윽하다.

울릉도와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증거는 월송정 북쪽의 구산리 마을에 위치한 대풍헌(待風軒)에서 만날 수 있다. 대풍헌은 구산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던 관청. 3년마다 파견되던 수토사는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불법어로를 못하도록 순찰하는 관리로, 울릉도와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울진에서 출발했다.

송강 정철이 말을 타고 올랐던 망양정 옛터는 기성망양해수욕장과 망양휴게소 중간의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도로와 마을이 생기면서 지형이 바뀌고 절벽 아래로 전신주가 솟아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겸재 정선의 망양정도(望洋亭圖)와는 거리가 멀다. 옛터에는 시누대 숲을 배경으로 비석 하나만 달랑 남아 있고 비석 앞에는 해송 세 그루가 쓸쓸하다. 그러나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음미하면 관동별곡과 망양정도의 감흥을 느끼지 못할 바도 아니다.

숙종은 망양정을 그린 그림을 보고 '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러있고/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리'라고 노래했다. 어제시를 남긴 임금은 숙종만이 아니었다. 정조는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뉘라서 이 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 종묘며 담장 하나하나 훑어본다'고 읊었다. 실제로 보지 않고도 더 생생하게 느낀 두 임금의 상상력과 문장력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망양정 옛터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의 감동은 울진의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7번 국도의 망양휴게소에서 느낄 수 있다, 천길 절벽에 들어선 망양휴게소는 동해안에서 가장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절벽 위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 사업으로 설치한 데크가 설치돼 동해바다를 관망하기에도 좋다.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근남면 산포리 야산에 위치한 현재의 망양정은 조선 철종 11년(1860)에 현종산 기슭에 위치한 망양정 옛터에서 옮겨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져 1958년에 중건했고, 다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2005년에 완전 해체해 그 옆에 새로 지었다. 망양정에는 숙종이 관동팔경 중 경치가 으뜸이라며 하사한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과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송강의 관동별곡 등이 걸려 있다.

왕돌초 주변에서 잡은 울진대게는 대부분 죽변항에서 거래된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 촬영지로 유명한 죽변항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항구. 대게 등딱지 색깔을 닮은 주홍빛 해가 솟으면 밤새 왕돌초 일대에서 싱싱한 대게를 걷어 올린 어선들이 갈매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속속 죽변항에 돌아온다.

손바닥보다 큰 대게들이 어판장 바닥에 깔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어부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게를 크기에 따라 분류해 놓으면 순식간에 중매인과 구경꾼들이 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를 둘러싼다. 경매사는 중매인들이 나무판에 적어 내미는 입찰가격을 보고 낙찰가를 알린다. 경매가 끝난 대게는 손수레에 실려 가고, 대기 중인 대게들이 다시 어판장 바닥에 깔리기를 반복한다.

경매가 끝난 죽변항은 미식가들로 떠들썩해진다. 가벼운 흥정 끝에 음식점 수족관에서 싱싱한 대게를 고르면 즉석에서 쪄준다. 대게들이 차곡차곡 찜통으로 들어가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후각이 예민한 갈매기들이 먼저 날아든다.

울진의 해안풍경은 죽변항 뒤편의 죽변등대에서 최고의 풍경화를 그린다. 죽변등대가 위치한 용추곶은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지. 등대 아래 바닷가 언덕에는 드라마에 나온 작은 교회와 남자 주인공이 살던 집이 보존돼 있다. 세트장과 죽변등대 사이에 위치한 시누대숲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그리고 작은 교회 아래에 위치한 하트 모양의 해변에서는 갈매기들이 날개를 접은 채 평화로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울진=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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