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전통시장으로 설 마중 어때요

글·사진|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2013. 2. 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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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은 서울을 대표할 만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시장으로, 인근 경복궁, 북촌 등 사대문 관광을 마친 내·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경복궁 지하철역 2번 출구를 나와 세종마을 앞자락에 자리한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 하나인 통인시장을 찾아간다. 서울 토박이나 동네사람은 아직 세종마을의 옛 지명인 '서촌'이 더 익숙하다. 인왕산 자락 아랫마을 골목통에 자리한 장골목. 우리 동네 전통시장으로 설 마중을 떠나보자.

설 마중에 나선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통인시장.

서민들이 사는 풍경 그대로, 서촌 언저리

세종마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촌(西村)이라 불렸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촌과 대비하여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북촌에 왕가붙이나 양반네가 모여 살았고, 서촌에는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종의 중인이 모여 살았다.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이 동리에 살았고,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 많은 예술가가 이곳 서촌의 주민이었다.

사실 세종마을은 행정구역상 서울 종로구 통인동과 옥인동·효자동·필운동·체부동 등 총 15개 법정동을 일컫는다. 마을 토박이인 슈퍼마켓 주인 박모씨는 "서촌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말하는데 굉장히 넓습니다. 세종대왕이 여기서 탄생했다고 해서 지난해부터 세종마을로 불립니다. 영조 임금이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소설가 박완서 선생도 여기 매동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하지요. 조금 오르면 세종대왕 탄생 표지석이 나오고, 그만큼 조금 더 오르면 통인시장이 보입니다."

세종마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마을의 풍경은 서울이 고향인 이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옛 풍경들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특히 허름한 빌라촌 사이로 대략 100년 전후의 세월을 간직한 한옥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어, 근·현대사를 간직한 서울의 옛 풍경을 짐작케 한다.

도시락통과 쿠폰인 엽전을 들고 즐거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오르자 대로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란 표지석이 반긴다. 다시 자하문로를 따라 오르면 전통시장인 통인시장 입구. 통인시장은 광화문 광장, 인사동 문화지구, 북촌, 청와대가 있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중심에 자리한 60여년 역사의 전통시장이다. 해방 전인 1941년 공설시장이 설립되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사대문 안에 유일한 골목형 시장으로 서울 종로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통시장이다.

"여기가 해방 전후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밴 시장통이지. 자유당 시절만 해도 개발제한으로 묶여서 동네가 발전이 안 되었어. 한동안 힘들었지. 그러다가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고 수십년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단골들의 발걸음이 줄면서 장판이 거덜이 날 판이었으니까."(슈퍼마켓 주인 박씨)

통인시장은 하나의 골목이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전형적인 골목장이다. 70여개의 점포가 영업 중인데, 떡집, 생선가게, 김구이집, 참기름집, 떡볶이집 등이 좁은 골목통에 자리잡고 있다. 대형마트 등의 상권과 비교할 수 있는 골목장으로 장판은 끝내 '쨍하고 해 뜰 날' 없이 응달의 자리로만 끝나는 듯했다.

500냥짜리 엽전이 쏠쏠한 장터의 맛

하지만 요즘 통인시장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터로 다시 살아났다. 응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장터에 쨍하고 해가 다시 뜬 것이다. 이제 통인시장은 서울을 대표할 만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시장으로, 인근 경복궁, 북촌 등 사대문의 관광을 마친 내·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해외 관광잡지에 통인시장이 여러 번 소개되면서 우리 고유의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50년 전통의 옛날 떡볶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주인 정월선씨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 통인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손수 만들어 파는 음식 맛이다. 방학 동안 한국어 연수과정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학생들이 통인시장 맛집으로 유명한 효자동 옛날 떡볶이집 앞에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집의 기름 떡볶이는 고추장이나 간장으로 양념해 다시 기름에 볶는 50년 전통의 옛날 떡볶이다. 주인 정월선씨는 "옛날식이지, 난 겨우 시작한 지 28년 되었어. 여러 분이 하다가 이제는 원조로 하시는 분하고 나하고만 남았지"라며 원조는 따로 있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우리동네 전통시장으로 떠나는 설 마중

러시아에서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유진(러시아)은 "한국 시장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지 못하는 풍경이라서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재미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라며 떡볶이와 전을 도시락에 가득 담는다. 일본에서 온 수주카(오사카) 일행 역시 시장을 부지런히 누빈다. "일본의 전통시장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처럼 재미있게 음식쇼핑을 즐기는 것은 처음입니다. 한국사람 특유의 친절함과 '덤'까지 맛볼 수 있어 즐겁습니다"라며 알록달록 눈길을 끄는 반찬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명물이 된 통인시장 도시락카페 '통(通)'은 골목시장에서 반찬, 떡, 분식 등을 마음껏 골라먹는 프로그램이다. 통인시장 고객만족센터 겸 도시락카페에서 500원 단위의 엽전을 구입하면 빈 도시락통을 주는데, 이 엽전으로 시장 내 가게들을 돌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도시락에 담을 수 있다. 시장통 뷔페식인 셈인데, 그 재미를 맛보려 멀리서 일부러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럿이 담아 온 도시락을 한곳에 펼치면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통인시장은 광화문 광장, 인사동 문화지구, 북촌, 청와대가 있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중심에 자리한 60여년 역사의 전통시장이다.

통인시장 도시락카페 관계자는 "통인시장에는 유독 먹을거리 가게가 많습니다. 시장 상인들이 서로 힘을 모아 마을기업을 일구게 되었습니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이러한 행사를 통해 활성화하고 새롭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마을기업이란 시장상인 등 마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여러 자원을 활용해 소득을 얻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단위의 기업을 말한다. 통인커뮤니티 역시 통인시장 상인회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마을기업이다. 통인시장은 지난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어 하루 평균 100~150명, 주말에는 500여명이 이용하며 전통시장 활성화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그 덕분에 통인시장 마을기업, 통인커뮤니티는 지난해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전국에 많은 전통시장들이 바로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설 명절 기간에는 전통시장 주변도로에 주·정차가 가능합니다. 가까운 전통시장으로 가족 모두가 설 마중을 나간다면 저렴한 가격에 큰 기쁨을 얻고,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글·사진|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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