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차, 겨울 바다..'추억 터널' 지나 낭만 속으로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2013. 2. 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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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송세진의 On the Road / 정동진역·승부역

[[머니위크]송세진의 On the Road / 정동진역·승부역]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아니어도, 호기 어린 청년이 아니어도 기차여행의 낭만을 누릴 권리가 있다. 겨울철 여행지로 손꼽히는 두 개의 기차역에서 그 시절 추억과 '아날로그 했던 날'의 행복을 떠올려 보자.

◆밤 기차, 그리고 무궁화호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것 중 하나. 편하게 놀고 먹는 여행이 점점 좋아진다. 그러나 이것저것 조건을 달아 제하다 보면 '리조트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었어요…' 로 여행이 끝나 버린다. 밤 기차를 타보자. 여행이 주는 에너지를 믿고 출발해 보는 거다. 응답하라, 청춘아!

출발은 서울 청량리역 밤 11시15분. 상점도 문을 닫는 시간인데 플랫폼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 기차는 해가 떠오르는 곳, 정동진으로 향한다. KTX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도착하는 시대에 250km 정도 되는 거리를 5시간 걸려 천천히 가기로 한다. 자동차로 계산하면 시속 50km. 고속도로에서 이렇게 달리면 큰 일 나는 속도다. 게다가 무궁화호 기차는 먼저 가는 기차에게 선로를 양보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밤기차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 잠이 오지 않는다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정도가 다다. 어둠이 내린 창문으로는 풍경도 잘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질는지 모르겠다. 뜻하지 않았던 사색의 시간…. '이래서 밤기차를 타고 새해를 맞이하러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을 달린 기차는 어느새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예상치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빠져 나온다. 친절하게도 해 뜨는 시각을 알려주는 게시판이 있다. 겨울이라면 보통 7시30~40분 경이 일출시각이다. 생각보다 늦다. 이제 경우 5시를 넘어가고 있으니 꼼짝없이 두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잠을 새벽 식사로 대신한다. 강원도에 왔으니 부드럽게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초당순두부를 택했다. 뜨끈한 방바닥에 앉아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순두부를 떠먹는다. 점심시간에 급히 먹던 빨간색 뚝배기와는 다른 고소하고 담백한, 순수의 맛이다. 이제 슬슬 바닷가로 나가 볼까.

◆소원이 있어 아름답다

해 뜨는 시각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해를 향해 서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진가들의 자리다툼도 치열하다. 재미있다. 보통 '바다' 하면 여름 여행지를 생각하는데 유독 겨울과 어울리는 바다가 있으니 바로 여기 정동진이다. '경복궁으로부터 정 동쪽에 위치했다'는 지역 이름이 유래하듯이 일출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희한하게 연말연시가 되면 일출에 집착한다. 그런 이유로 새해 아침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나 보다. 이를 겨냥해 매년 1월1일에는 해맞이 축제도 열린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정동진에서 연중 제대로 된 일출을 볼 확률이 60~70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하절기일수록 확률이 높고 동절기엔 보기가 더욱 어렵다. 즉, 겨울 해돋이를 보려고 정동진에 간다면 마음을 비우고 가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진 겨울 바다는 인기가 높다.

아직 깜깜한데 하늘위로 불빛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불빛의 근원을 찾아가보니 사람들이 풍등을 띄우고 있다. 빨갛게 불을 밝히고 두둥실…. 하늘 위로 소원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추운 계절에 몸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참아가며 이곳에 오는 이유도, 늘 보았던 해에게 특별한 구실을 붙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소원과 계획. 정동진은 그런 면에서 어떠한 계기와 의미를 제공한다.

드디어 일출 시각. 앞서 말했듯이 겨울 해돋이는 실패에 가깝다. 수평선 위로 얼굴을 드러내는 해를 본다면 커다란 행운이다. 뒤늦게라도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다행히 동그란 해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 일출보기의 성패를 떠나서 밤새 생각을 했고, 해를 기다리며 마음속에 소원을 품고, 계획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됐다.

해 보기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본다. 조금 걸어가면 모래시계 공원과 기차 박물관이 있다. 바닷가 이름 없는 작은 역사에 불과했던 정동진이 유명해진 데에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숨겨져 있던 바닷가 역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어느덧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아마도 90년대 이후 태어났다면 '모래시계' 공원과 '고현정 소나무', 기차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각종 시계들의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왔다면 이 뜬금없어 보이는 '시계' 테마가 대화의 소재를 제공한다.

◆'승부'를 보자

겨울에만 반짝 인기 있는 기차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승부역이다. 정동진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닿는 이곳은 오직 기차로만 갈 수 있는 오지마을이다. 정동진에서 탄 기차는 한 시간 반정도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마침내 하얗게 눈 덮인 승부역에 도착한다.

이곳에 '육지의 섬'이나 '한국의 시베리아' 같은 별명이 붙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기차의 진행 방향에는 터널이 있어 시야를 막고, 왼쪽으로는 투구봉이, 오른쪽으로는 개울건너 비룡산이 승부역을 가두고 있다. 눈길 위로 드러난 레일과 플랫폼에 있는 빨간 우체통만이 이곳을 다른 세상과 연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름도 '소통의 우체통'. 이왕지사 느릿느릿 여행을 선택했으니 전화를 들기 전에 엽서 한 장을 써보자. 소중한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짧은 글을 따라 고대로 전달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세월교를 건너보자. 개울가에서는 사람들이 썰매를 지친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해 놓은 옛날식 앉은뱅이 썰매이다. 작은 마을 간이역의 정감이 차가운 공기를 뚫고 들어온다. 가족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의외로 운전이 어려운 썰매를 타다 보면 급히 허기가 몰려올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바로 먹거리 장터로 직행하면 된다. 시래기국이나 손두부가 끓고 있는 가마솥에서 연기가 푹푹 올라오니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이 작은 장터를 지나 산 비탈에서는 사람들이 비료 부대를 깔고 썰매 타기 삼매경이다. 아이들은 놀이동산에서 타 본 눈썰매의 '원조'를 체험 중이고, 어른들은 추억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기차 시간이 다가온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계절이라면 이곳이 어떨지. 장터도 썰매도 없는 벤치에 앉아 한없이 하늘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초록의 승부역을 상상하며 기차에 오른다.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정보]

< 서울 출발 - 정동진역 가기 >

청량리역 출발 기차는 코레일 홈페이지(http://www.korail.com/index.jsp)나 청량리역에서 직접 시간을 확인하면 되는데, 일출을 보기 위해 밤 기차를 택할 경우 밤 11시15분 출발 기차가 가장 인기가 높다.(주말 운임 어른 2만1000원 / 어린이 1만500원 / 경로 1만4700원)

< 정동진역 출발 - 승부역 가기 >

하루 세 번 (06:31, 13:31, 17:38) 기차가 있는데, 정동진에서 여유 있게 일출을 보고 승부역으로 이동할 경우 13:31 열차가 가장 적당하다.(운임 어른 6700원 / 어린이 3300원 / 경로 4700원) 승부역에서 정동진으로 회기할 경우 09:58, 14:53, 20:19 세 번의 열차가 있고 승부역을 경유해 영주, 풍기 등으로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다.(자세한 사항은 코레일 홈페이지 이용)

< 관광열차나 여행사 열차 패키지 이용 >

정동진, 승부역 등을 경유하는 겨울철 특별 열차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한번 예약으로 출발, 경유, 회귀가 모두 해결되므로 편리하다. 코레일 관광열차 사이트(http://www.korail365.com/korail)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환상선 눈꽃열차나 태백선 눈꽃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한데, 한상선 눈꽃열차는 매년 12월 말경부터 다음해 2월 중순까지 운영된다.

< 정동진역 정보 >

음식점

- 24시간 초당순두부: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328-8 / 033-644-5853 / 초당순두부 백반 6000원 / 모두부 5000원

- 썬카페: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328-3 / 033-644-5466 / 커피와 차 7000원 / 세트메뉴 8000~1만원

기타 볼거리

- 하슬라 아트월드: 호텔, 박물관, 공원의 복합공간 /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산33-1 / 033-644-9411 / 이용시간 08:30~18:30 / 미술관 7원000원 / 공원 3000원 / 미술관, 공원, 카페 이용권(커피) 1만3000원

< 승부역 정보 >

- 세월교를 건너 먹거리 장터에서 이 지역 특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우거지국밥 5000원 / 산채비빔밥 6000원 / 손두부 5000원 / 메밀전 3000원 / 더덕구이 3000원 등

- 투구봉 등산

역에서 영암역 개통 기념비 쪽으로 올라가 정상까지 1.5km, 정상에서 투구봉 약수터 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1.5km로 간단한 등산을 할 수 있다.

- 소통의 우체통 기념 엽서: 500원

- 승부현수교: 출렁다리라는 별명이 있으며 역에서 비룡산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주황색 다리다.

- 영암선 기념비: 1956년 개통 시에는 승부역이 지나는 철길을 경북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다고 해서 '영암선'이라 불렀다. 그 중 이 역이 가장 힘든 공사였고, 개통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해 기념비를 제막했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www.moneyweek.co.kr) 제2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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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세진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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