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마다 암자와 옛이야기가 넘쳐난다오

2013. 1.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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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하동 신흥~의신마을 서산대사길

"지금은 참 조용하지예? 봄·갈엔 생난리 전쟁터라."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옆 한 식당 주인의 말씀. 말씀마따나 벚꽃철·단풍철 지리산 화개동 골짜기는 차량과 인파로 뒤덮인다. 요즘은 전쟁(가을)과 전쟁(봄) 사이다. 단풍길과 꽃길 사이에 눈길이 훤하게 열렸다. 인적 드물어 고요해진 골짜기로 선인들 발자취도 환하게 드러난다. 이 골 저 능선에 서린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눈길 호젓하게 거닐기 좋은 때다. 최근 화개동 골짜기 상류에 '서산대사 옛길'(신흥마을~의신마을 4.2㎞)이 새로 선보였다. 옛 주민들 봇짐 이고지고 넘던 이동로이자, 크고작은 절과 암자들을 오가던 스님들의 수행길이기도 하다.

걷는 동안 야생차밭과대나무밭에 부는 바람얼음장 녹이는 물소리에서훈훈한 봄기운 예감

서산대사 출가하고 18년 머문 골짜기 옛길

"옛날, 한 중이 이 화개동 암자 구경을 왔는데, 아끼던 신발을 화개동 입구에 벗어두고(닳을까봐) 들어온 기라. 암자들을 다 둘러보고 내려가 보니, 고마 신발이 다 썩어삔 기라. 뭐냐. 그만큼 암자가 많았다는 얘기라."(의신마을 조성오·82)

지리산 남쪽 자락의 화개골(화개동천)은 의신계곡·연동계곡·대성계곡·단천계곡·선유계곡 등 경관 수려한 지류를 거느린 골짜기다. 골짜기마다 절과 암자가 들어차, 한때는 100곳을 넘었다고 한다. 지리산 여러 골짜기 중에서도 불교 유적과 선인 흔적, 이야깃거리가 가장 풍부한 곳으로 꼽힌다.

이 골짜기가 배출한 고승 서산대사(휴정·1520~1604)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서산은 16살 때 화개동을 유람하다 출가해, 두 차례에 걸쳐 18년을 머물며 수행했다. 하동군 쪽은 지난 12월 그가 거닐던 옛길을 손질해 탐방로로 만들어 선보였다. 봇짐·등짐장수들이 광양 등에서 생산된 소금과 해산물을 이고지고 벽소령 넘어 함양 쪽으로 팔러 다니던 길이자, 의신마을 주민들이 산에서 구워낸 참숯을 화개장에 팔러 넘나들던 옛길 그대로다.

탐방로 들머리는 화개계곡 큰 물줄기가 둘로 나뉘는 신흥마을이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칠불암(지금은 칠불사)으로 오르는 연동계곡과, 의신계곡 물줄기가 내려와 합수하는 곳이다. 신흥교 옆이 출발점이다. 물길 따라 이어지는 '서산대사 옛길'은 험하지도 않고 완만한 편이다. 쉬엄쉬엄 1시간30분~2시간. 중간에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들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겨울 숲길이 다소 썰렁하긴 하나, 걷는 동안 야생차밭과 대나무밭에 부는 바람과, 얼음장 녹이는 물소리가 봄이 멀지 않았음을 귀띔해준다. 쉴 만한 곳으로는 의자바위가 있는 고개 꼭대기와, 고개 넘어 내려가 물가에 펼쳐진 널찍한 바위자락이다. 바위 주변은 박달나들이(박단나들이·檀川골 들머리)로 불리는 곳으로, 스님도 주민도 장돌뱅이도 짐 내려놓고 쉬어가던 장소다. 수십명이 앉아 쉴 만한 바위에 유려한 글씨체의 한시 등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동초(김석곤·1874~1948)란 이가 지은, 날줄·씨줄 얘기로 시작하는 칠언율시, 그리고 성(性)과 심(心)의 이치를 담은 2행의 글이다.

탐방로의 일부 구간은 눈으로 덮여 있다. 흰 눈에 찍힌 앞서 걸은 이들과 동물들 발자국이 어지럽다.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오는(또는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이 지었다는) 시 한편 새겨보자. '눈 밟으며 들길 걸어갈 때/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원문 생략). 누가 지었든, 지나온 길 돌아보게 하는 내용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고로쇠물 이름난 의신마을 채취준비 한창

전망이 탁 트이면서 물 건너쪽에 나타나는 마을이 의신마을이다. 사철 계곡 경치 아름답고 공기 맑은 청정 마을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개설된 탐방로는 마무리되지만, 서산대사의 발자취는 마을의 의신사지 터와 주변 산자락의 원통암·삼철굴 등 무수한 암자·토굴들로 이어진다. 대사가 출가해 머물며 수도했던 곳들이다.

의신마을은 고로쇠물로 이름난 마을이다. 마을 전체 70가구 중 59농가가 참여해, 해마다 약 14만ℓ의 고로쇠물을 수확한다. 주민들은 2월 초부터 시작될 고로쇠 채취 준비로 부산하다. 이달 말 주민들은 산자락 곳곳의 고로쇠나무 자생지에 올라가 4~7일간 침낭생활을 하며 호스 설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무수한 호스 지선을 깔고 세척한 뒤, 나무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꽂는다. 지선들은 굵직한 하나의 호스로 연결돼, 산밑에 설치한 탱크로 고로쇠물이 모이게 된다. 모은 고로쇠물은 불순물을 거르고 살균해 18ℓ짜리 통(5만원 균일가)에 담게 된다. 주민 윤호한(60)씨는 "이곳 고로쇠물은 무기질 함량이 많고 단맛이 뛰어나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든다"고 자랑했다.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만들어동물과 교감하는휴양마을로 만들 예정

의신마을 일대는 근현대 전쟁의 상처가 깊게 파인 지역이다. 임진왜란 때 골마다 자리잡고 있던 숱한 절과 암자들이 불탄 이래, 1908년엔 일제 침략 기도에 맞서 일어선 의병들이 이곳에서 왜병과 결사항전을 벌이다 수십명이 희생됐다. 의병들을 모신 묘소가 마을에 있다. 한국전쟁 전후엔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의 격전으로 수많은 주민이 고통을 겪고 희생됐다. 이웃한 대성골은 1952년 1월 빨치산 수백명이 몰살된 지역. 의신계곡 상류 빗점골은 남부군 사령관이던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마을의 폐교(왕성초등학교 의신분교장) 터에 들어선 지리산역사관에서 빨치산 관련 자료와 옛 화전민들의 생활상과 생활도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의신마을 주민들은 새로운 체험마을 사업을 준비중이다. 오는 4월까지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을 마련해 마을을 '반달가슴곰 체험·휴양마을'로 가꿔나갈 계획이다. 김영택 마을위원장은 "우선 반달곰 종복원센터로부터 야생에 적응 못한 곰 2마리를 들여와 체험학습장을 열 예정"이라며 "산양·담비·삵·수달도 많이 사는 청정지역이어서 자연생태학습 자원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travel tip참게장·재첩국 별미▣ 가는길

수도권에서 호남고속도로~익산분기점~완주분기점~완주순천고속도로 이용. 구례·화엄사나들목에서 나가 19번 국도 따라 하동 화개면 소재지(화개장터)로 간 뒤 쌍계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먹을곳

화개면 소재지(탑리)와 쌍계사 들머리 주변에 재첩국·참게장·다슬기국을 내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탑리 설송식당(055-883-1866)은 자연산 재료를 쓰고, 인공조미료 없는 밑반찬을 내는 식당. 참게장 정식(사진) 1만5000원 등. 의신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식당 선학관(055-883-1822)은 겨울철엔 10명 이상 단체만 예약 가능. 산채비빔밥·토종닭백숙 등.

묵을곳

의신마을에 연우황토펜션(055-884-2080, 평일 8만원부터, 주말 10만원부터) 등 펜션·민박집이 몇곳 있다. 화개면 소재지와 쌍계사 들머리 주변에 온천모텔사우나(055-883-9346, 4만원, 숙박객 사우나 무료) 등 여관·모텔이 많다.

전망 빼어난 내은적암 옛터엔 산죽만 무성

'서산대사 옛길' 탐방 앞뒤로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서산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옛 신흥사(신응사) 터와 청허원 터(옛 내은적암 터)다. 청년 시절 10여년을 의신사·쌍계사·칠불암 등에서 정진하던 서산대사는 20대 후반 이곳을 떠났다가 40대 초반 다시 돌아와 옛 내은적암 터에 암자를 짓고 청허원이라 이름붙였다. 1566년까지 5년여를 이곳에 머물며, 불교·도교·유교가 결국 한가지임을 역설한 <삼가귀감>, '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 등을 지었다. 돌다리 홍류교와 함께 수축했던 정자 능파각은 칠불사 갈림길 옆 물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허원 터는 명원다원 나무데크를 따라 오르면 만난다. 정자 위쪽에 무너져가는 축대가 두 곳 있다. 전망 빼어난 옛 암자 터엔 흩어진 돌무더기와 깨진 기왓장들 위로 산죽이 무성히 자라 있다. 신흥사 터는 왕성분교장 자리다. 교사 뒤 대나무밭에 부도 하나가 남아 있다. 신흥마을엔 세이암·삼신동 석각 등 신라 때 대학자 고운 최치원의 발자취도 많이 남아 있다.

하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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