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브랜드만 보고 물건을 살까

김참 기자 2013. 1.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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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시리즈로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팀 쿡 애플 CEO가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 TV 인터뷰에서 맥 제품 중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발언이 화제가 됐다. 지난 미국의 대선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의 해외 아웃소싱 정책 때문에 미국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에 대해 팀 쿡이 제대로 화답한 셈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액이 200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럽경제 위기 상황에서 얻어낸 성과치고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역시 삼성이 만든 제품이 잘나간다는 뉴스는 매일 접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남의 잔치로만 느껴진다.

기업이 잘 나가는데 국내 경기 상황은 좋지 못하다. 이유는 뭘까.

수년 전부터 국내 기업들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제조업이 금융업과 서비스, 유통업보다 존경을 받는 이유는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물론 고용 효과에서 다른 업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면서, 대기업의 이익이 증대돼도 전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 내가 산 제품이 과연 국산일까

직장인 임승식(35)씨는 "학창시절 가전제품의 경우 '메이드 인 재팬' 제품만 샀다"고 말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가전제품의 경우 일제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소니나 파나소닉의 경우 제품의 완성도는 물론 브랜드 인지도, 그리고 일제라는 막연한 환상까지 더해져 세계시장을 제패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국산 제품을 산다고 임씨는 말했다. 삼성이나 LG제품의 품질이 워낙 좋고 국산이라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이라 일제를 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그가 산 제품이 국산일까. 이 씨는 올 들어 삼성의 시리즈5 노트북과 LG전자의 세탁기를 구입했다. 이들 제품의 뒷면에는 제조공장 '중국'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브랜드만 보고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모바일 제품중 갤럭시 시리즈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노트북이나 슬레이트PC 등은 제조국가가 중국이라고 표시돼 있다.

모바일 제품의 경우에도 갤럭시 시리즈 등을 제외하면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보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많다. 구미공장에서 생산된 휴대폰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또 오는 2014년부터는 반도체까지 중국에서 생산되게 된다. 중국 시안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이미 착공에 들어갔다.

LG전자 제품 역시 노트북의 경우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도 해외기지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국내 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50대 50으로 가져가고 있다. 다만 중국의 생산공장 증설과 브라질공장이 완공되면 이 역시 역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아직 국내에 판매되는 완성차는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 브랜드와 제품의 국적은 다르다

'국산이 좋다'라는 생각은 이제 상식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표시는 이제 좋은 제품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됐다. 일부 제품은 미국이나 일본 제품보다 비싸도 수긍이 갈 정도다. 시민의 대다수는 "국내 대기업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또 비용문제로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IMF 이후 학습효과가 생겨 고용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면서, 기업들이 잘돼야 가계가 잘될 것이란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브랜드의 국적이 제품의 국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IT·자동차 분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각국이 무역 장벽을 다시 높여가면서,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기업의 생산공장 이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그럼 과연 국산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 대기업의 제품이 잘 팔리면 어떤 점이 좋을까. 우선 법인세가 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매년 영업이익을 늘어나면서 법인세가 2009년 2조4310억원에서 2010년 3조1831억원, 2011년 3조4349억원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만큼 법인세 비용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설비투자가 늘어나 고용이 증가하게 된다.

다만 국내에서는 설비투자는 점차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이뤄지고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는 생산설비 투자는 해외에 집중된다. 또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은 외국인들의 배당으로 지급된다.

해외 생산제품의 역수입 증가도 예상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해외투자가 초기에는 중간재(산업설비, 부품 등)의 수출 유발 효과가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에서 완제품 생산을 줄여가면서 역수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아직은 기업의 매출 확대가 국내에는 플러스 요인이 많지만, 미국의 경우 생산공장의 50% 이상이 이전돼 역수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회귀는 기업에게도 본능?

구글은 지난해 6월 가정용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어인 '넥서스Q'를 공개하면서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다'라는 문구를 레이저로 새겼다. 넥서스Q의 경우 기본 틀은 미국 중서부에서 만들고, 최종 조립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기 자전거 회사인 벨루스쿠트는 중국 생산공장을 자국으로 옮겨 생산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빠르게 반영하고, 제품 이미지를 끌어 올리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기업들의 자국내 제조가 가능해진 이유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인건비 상승, 제품조달 시간, 운송비 등을 고려할 때 자국에서 생산하는 비용과 차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제품을 얻고자 하는 기대감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국 내 생산 제품을 선호한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소비자 리서치 회사 퍼셉션리서치는 미국 쇼핑객의 76%가 '미국산'임을 확인했을 때 그 제품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자국 내 생산이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최상의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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