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유보, 기재部는 말못할 사정 많다는데..

김태근 기자 2013. 1. 1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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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엔 성사단계라더니.. 그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말 못할 사정이 많습니다."

정부가 소득세법 시행령에 종교인 과세 방침을 담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개한 지난 17일, 수화기 너머 정부 관계자의 목소리는 맥이 빠져 있었다. 1월 초만 해도 정부 안팎에선 종교인 과세가 성사단계라는 관측이 많았다. 기재부가 작년 3월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종교계와의 면담에서 '과세 원칙'에 대한 합의에 성공했고, 주요 종교의 대형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낼 의사가 있다고 밝혔던 까닭이다. 공무원들도 사석에선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종교인 과세 원칙'만 확인하고 공을 다음 정부에 넘기고 말았다.

◇종교계 압박이냐, 청와대 압력이냐

이 때문에 관가 안팎에선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심했다"는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물밑의 반대 목소리가 더 거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측 관계자는 "대형 종교 단체는 과세 방침을 환영하지만, 규모가 작은 단체나 종교인 개인은 이견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종교계 입장에서 과세를 공식적으로 거부할 명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환영할 일도 아니다"며 "자칫 성직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어 논의를 빨리 진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일관되게 종교인 과세에 반대해 왔다. 한기총은 77개 교단과 19개 단체가 가입해 있는 개신교 교단·단체 연합기구 중 하나로,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는 "목사와 승려는 일반적인 근로자가 아니고 기도와 예배, 구제행위를 하는 성직자"라는 입장이다.

개신교·불교·원불교 등 주요 종교 단체들도 "납세 원칙엔 찬성하지만 '근로소득세'는 종교인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세목 조정이나 '종교인세'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연말 등 2차례에 걸쳐 7대 종단(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유교·민족종교협의회) 실무 행정 책임자들과 의견 수렴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한기총 외에 대표적 종교단체 대부분이 "원칙적으로 찬성"이라고 했지만, '각론'에 대해서는 저마다 주장이 달랐다.

규모가 작고 소득이 열악한 종교 시설들은 "먼저 과세 근거와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부작용 걱정

청와대는 처음부터 회의적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종교인 과세가 득보다 실이 많다. 다음 정부에 넘긴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리를 해서 종교인에게 과세하면 반발은 엄청나지만,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연간 3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무리해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70년대 말 부마항쟁이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물리는 결정으로 촉발됐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조세저항은 무서운 것"이라며, "종교계 저변에는 '성직자에게 세금을 물린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기재부가 청와대 압력으로 중단해 놓고 '종교계의 반발'을 알리바이로 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신교계 인사는 "기재부가 구체안을 제시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없던 제도를 새로 만들 때는 당연히 따르게 될 반발을 고려해 공청회·설명회 등을 열며 자발적 참여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구체안을 내놓지 않고 '언론 플레이'만 하다 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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