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외교안보 가정교사' 盧 사람 멍에 때문에..

장세정 2013. 1. 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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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외교안보 브레인, 윤병세 인수위원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 과속도 저속도 아닌 균형 주행"

노무현 정부 첫해였던 2003년. 주미 한국대사관은 매일같이 '백악관 정세보고서'를 외교통상부 본부로 타전했다. 2002년 대선 기간 "반미 좀 하면 어때"라고 가볍게 말했던 노 전 대통령조차 취임 후 미 백악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외교 전문들 중 노 전 대통령은 유독 윤병세 주미공사(현 대통령직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위원)가 보낸 전문에 자주 눈길이 꽂혔다고 한다. 미 백악관의 속내를 예리하게 꿰뚫은 데다 핵심 알맹이가 가득해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상황에 밝은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7월 윤 공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정책조정실장이란 중책이었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그해 1월은 이른바 '(대미) 자주파'와 '(한·미) 동맹파'의 정면 충돌이 있었던 때다. 동맹파의 아성인 북미1과장을 지낸 윤 위원이 자주파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청와대의 요직으로 들어가는 걸 다른 외교관들은 물끄러미 지켜봤다고 한다.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

 윤 위원은 그 후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2006년 1월 외교부 차관보로 옮겼으나 같은 해 11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으로 다시 중용됐다. 당시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박선원 인천광역시 투자특보는 "내가 올린 보고서를 윤 수석이 손을 좀 보고 나면 훌륭한 보고서로 거듭났다"며 "베테랑 외교관의 관록과 지혜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대선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윤 위원에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바꾸거나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NSC도 폐지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윤 위원은 유럽 지역 대사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사람이란 멍에 때문이었다. 1977년 외무고시(10회)로 공직에 입문한 지 31년 만에 외교관 생활을 마쳐야 했다. 윤 위원을 잘 아는 한 외교관은 "청와대 요직을 지낼 만큼 잘나가던 외교관이 대사급 공관장 한 번 못하고 옷을 벗을 때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년가량 백수로 지내던 그는 2009년 3월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변신했다. 이 학교의 초빙교수로 있던 유종하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윤 위원을 적극 추천해 자신의 자리를 넘겨줬다. 유 전 총재는 윤 위원의 서울대 법대와 외무고시 선배다. 서강대 관계자는 "현장 외교관 출신으로 '국제기구론' 등을 강의했는데 언변이 뛰어났고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고 전했다. 그해 윤 위원은 김앤장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도 영입됐다.

 그러던 중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 자살 사건이 생겼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마지막 통일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이력은 이명박 정부 내내 윤 위원에게 자산이 아닌 부채가 됐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외교부 당국자는 "그 무렵 윤 위원은 노 대통령 상주 중 한 명의 처지였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윤 위원은 서강대 초빙교수 시절 이 대학 전자공학과(70학번) 출신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외교안보 분야 브레인을 찾던 박 당선인은 초빙교수로 있던 윤 위원을 알게 됐다. 당시 누가 박 당선인에게 윤 위원을 소개했는지에 대해서는 항간에 설이 분분하다. 김광두 당시 서강대 교수가 다리를 놓았을 것이란 설도 있다. 김 교수는 2010년 12월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주도적으로 출범시키고 원장을 맡은 핵심 실세다.

 윤 위원은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 78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발기인으로 참여하기 전부터 박 당선인의 사실상 '외교안보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공부모임을 함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당선인과 윤 위원의 만남을 둘러싸고 전해지는 일화 한 토막. 윤 위원이 국가미래연구원 합류를 앞두고 박 당선인 주변 그룹에서 "노무현 정부 사람인데 함께해도 되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 "정책에 이념이 어디 있나. 상관없다"며 윤 위원을 적극 두둔하고 포용했다고 한다. 윤 위원은 지난해 서강대 초빙교수직을 그만둔 뒤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외교통일추진단장을 맡아 외교안보 분야 공약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남북관계 개선되면 파격적 대북 협력"

 박근혜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준 윤 위원의 외교안보 철학은 박 당선인의 후보 시절 공약집과 주요 연설문을 통해 드러난다. ▶'포린 어페어스'지 기고문(2011년 8월 24일) ▶국제정치학회 강연(2012년 2월 28일)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1주년 기념 리셉션 연설(2012년 10월 15일)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별도로 윤 위원은 대선을 전후해 기자와 몇차례 접촉하면서 자신의 외교안보 철학을 비교적 소상히 들려줬다. 이를 종합해 보면 박근혜 당선인에게 영향을 준 윤 위원의 외교안보 인식을 나름대로 유추해볼 수 있다.

 우선 대북 문제에 대해 윤 위원은 "평화를 논하기 전에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당선인이 입에 달고 다니는 공자(孔子)의 무신불립(無信不立) 철학이다. 이런 생각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발전했다. 윤 위원은 "민족 공조를 국제 기준에 맞춰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른바 진화된 대북정책이다. 이를 통해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수정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고, 강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8년 쓰러진 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정권 붕괴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그 후 유화 제스처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준수하면 공동어로수역 논의도 가능하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부의 장점도 계승하겠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 태도도 드러냈다. 청와대 외교안보 조직 개편이 그런 예다. 그가 장점을 강조해온 국가안보실의 원형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설치됐던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다. 윤 위원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 와중에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는 컨트롤 타워 기능이 없어 초기 상황 대처에 허점을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윤 위원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과속주행과 이명박 정부의 저속주행 사이에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순한 중간이라기보다는 균형"이라고 답했다. 필요할 때는 안보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상황이 개선되면 파격적인 대북 협력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그는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며 "(박 당선인은) 백악관과 중난하이(中南海) 모두와 직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과거사 문제에서는 촌보(寸步)도 양보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독도 문제에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듯 말을 아꼈다.

외교부 시절 알아주는 야행성 워크홀릭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윤 위원은 이명박 정부 5년간 사실상 동면기를 거쳐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실세로 돌아왔다. 올 초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에서는 외교국방통일 분과위원으로 발탁됐다. 이 무렵 외교가에서는 "'윤뻥세'가 돌아왔다"는 우스개가 회자됐다.

 '윤뻥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붙은 윤 위원의 별명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생들이 만든 국제법학회에 참여해 함께 공부하고, 경기고·서울사대부고·경기여고 연합서클인 명우회에서 윤 위원과 함께 활동했던 한 외교관은 "윤뻥세라고 하면 뻥(허풍)을 잘 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애칭이라고 보면 된다"며 "일처리가 빈틈없지만 말투가 시원스럽다 보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은 외교부에서 알아주는 워크홀릭(일 중독자)이다. 그가 제네바 주재 공사(차석대사)로 일할 때의 일화다. 한 외교관은 "제네바 차석대사는 상대적으로 덜 바쁜 자리인데도 윤 위원은 '저녁 도시락'을 싸 다니는 날이 많을 정도로 업무에 열심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일화가 전해지면서 외교부에서는 "윤 위원이 장관으로 오면 본부에서 주5일 근무는 사라질 것"이란 말도 돌고 있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관계자는 "윤 위원은 하루 3시간 자고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을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윤 위원은 기자와 만나서도 "(함구령 때문에) 자세히 말은 못해도 새벽에 귀가하거나 새벽에 출근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윤 위원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초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장관급)이나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통하는 윤 위원이 앞으로 어느 직책에서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갈지 외교가는 주시하고 있다.

◆윤병세=1953년 서울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학대학원(SAIS) 석사. 외시 10회. 북미국 심의관,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차석대사), 주미대사관 공사, 청와대 NSC 정책조정실장,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 등 역임.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김앤장 고문,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 외교통일추진단장,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위원.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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