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조차 '불쏘시개'..민주당 이것이 문제다

2013. 1. 1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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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① 무엇이 문제인가

제1야당 패배 악순환…'당 얼굴' 바뀌어도 계파담합 그대로

친노·주류 지도부 돌려막기…쇄신요구 민심에 귀 막아

총선·대선 등 잇따라 충격패2004년 이후 21번째 지도부뼈깎는 혁신없이 '바통터치'만

민주통합당(민주당)은 새해 들어 당 누리집(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새로 만들었다. 13일 현재 달랑 19개의 의견만 올라 있다. 이전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사라졌다. 대선 패배 직후 게시판을 가득 메웠던 당원, 지지자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모두 지워졌다. 민심을 외면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북지역 민주당 의원 보좌관인 ㄱ씨는 대선 직후 주변 사람들이 보낸 차가운 시선과 냉소적인 말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당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그 당을 깨버리겠다고 하더라. 당신들이 호남 기득권 위에서, 호남 사람들 위에서 군림한 것 외에 한 게 뭐냐, 당을 해체해버리는 게 낫다고 하더라." 그는 "당내의 뿌리 깊은 계파주의와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않으면 내년 지방선거부터 호남에서 무소속이나 신당 바람이 정말 거세게 불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박경주(34)씨는 대선 이후 뉴스를 끊었다. 구독하던 신문 2개를 절독했다. 사무실에선 포털에 접속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컴퓨터 엘시디(LCD) 모니터엔 하얀 백지를 포스트잇으로 붙여 놨다. 포털의 뉴스창이 보이는 위치다. 뉴스가 보기 싫어 붙였다. 대선 때 그는 휴대전화 목록에 있는 300여명의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다. 보수적인 부모님도 집요한 설득 끝에 지지 후보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늙은 민주당 때문에 안철수가 포기했고, 문재인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에서는 누구 하나 '내 탓이오'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한쪽에선 안철수가 소극적이었다고, 이정희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고, 비주류가 손을 놓았다고 탓했다. 다른 한쪽에선 문재인 후보가 '친노 패권주의'와 안철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고 탓했다.

10년을 집권했던 민주당이 왜 이렇게 된 걸까? 9일 출범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는 2004년 17대 국회부터 따지면, 21번째 지도부다. 민주통합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이렇게 4번의 중요한 선거에서 패했다. 패배할 때마다 지도부가 교체됐다. 19대 국회 들어서도 1년 만에 5차례 지도부를 바꿨다. 2004년부터 따지면 평균 5개월에 1번꼴로 지도부가 교체됐다. 혁신은 없이 얼굴만 바꾸는 변화는 패배의 재생산으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의 근본 원인으로 민주당의 '계파 담합형 리더십'을 꼽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이끈 한명숙 대표 체제의 별칭은 '당내 오너들의 세력연합'이었다. 시민통합당(혁신과 통합)으로 합류한 이해찬·문재인과 통합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 원내대표 박지원, 정세균 전 대표 등이 주요 오너였다. 4월 총선 지역구 후보 공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들로는 한명숙 당시 대표와 정세균 의원 등이 꼽힌다.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백원우 전 의원 등을 통해 '친노'로 분류되는 이들도 세력을 확장했다. 공천 심사에 참여했던 한 외부 인사는 "지역구에선 시민통합당 쪽 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한 탓에, 비례공천에서는 그쪽 인물들이 절반 이상 공천됐다"고 말했다. 계파 공천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박영선 당시 최고위원이 공천 심사 도중 "공천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최고위원을 사퇴할 정도였다.

4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명숙 대표가 물러난 이후, 패인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 권한을 승계한 문성근 당시 최고위원은 "4월 총선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하겠다"며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 총선 평가를 맡겼다. 문성근 대행은 평가보고서가 나오면 당내는 물론 언론 등 외부에도 공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4월 말, '4·11 총선 평가와 과제'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해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 '4월 총선' 한명숙 대표 체제당내 오너들의 세력연합 '별칭'"시민통합당쪽 지역공천 반발에비례공천 절반 이상 할애 뒷말"

보고서는 4·11 총선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의 선거 실패가 여당의 승리 요인이 된 기현상이 나타난 선거'로 규정하고 그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야권연대 전략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그리고 △계파 안배로 인한 공천 실패를 꼽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계파 사이에 공천책임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정치적' 이유로 대외비로 분류된 이후 당내 회람까지 금지됐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민주당 당직자는 "총선 평가 보고서가 나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세력들이 평가 보고서 공개를 막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따지고 원인을 짚어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혁신 방법을 놓고 경쟁하는 대신,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담합'을 둘러싼 논란 속에 진행됐고 결과는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의 구축이었다.

# 이해찬-박지원 '담합' 체제총선 패배한 친노·주류 연합군호남 일부 끌어들여 다시 패권486그룹도 계파담합 구조 일조

민주당은 한명숙 대표 체제로 4월 총선을 치렀고, 이해찬 대표 체제로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했다. 두 사람 모두 참여정부의 총리 출신이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자, 이를 수습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문희상 의원이 뽑혔다. 문 후보와 문 의원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지도부 교체가 주도세력 교체로 이어지지 않는 계파 담합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당은 4월 총선에 앞서 '혁신과 통합'(시민통합당)과 통합하고, 대선에선 정치권 바깥의 시민사회 세력과 힘을 합쳤다. 하지만 외부세력 수혈도 계파 담합 구조 아래선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계파의 문제점을 가리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계파 담합 구조를 지탱하는 민주당내 3대 그룹으로는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후보 등 참여정부 출신이 주축인 '친노 그룹', 정세균·문희상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중진그룹, 우상호·강기정·윤호중 의원 등의 '486그룹'이 꼽힌다. 이들을 한데 묶어 '친노·주류세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그룹은 상황에 따라 협력, 경쟁하면서도 언제나 주류 연합군을 형성해 당의 의사결정권을 주도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486그룹은 정세균-손학규-한명숙-이해찬 대표로 이어지는 지도부에서 핵심 당직을 차지하며 계파 담합 구조의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는 총선에서 패한 친노·주류 연합군이 호남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다시 주도권 온존을 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계파 담합 구조의 폐해는 생각보다 크다. 정책이나 노선이 아니라 과거 인연과 친소관계를 중심으로 묶인 계파는 세력 극대화를 위해 당권, 공천권 경쟁에 몰두하며 계파 패권주의를 낳는다. 패권주의는 당의 결속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민주당의 상황을 1990년대 이후 항시적 위기를 겪으며 끝내 정권을 잃었던 일본 자유민주당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혁신을 바라는 민심을 외면한 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계파의 주요 인물들이 돌아가면서 당권을 나눠 갖는 계파 담합 구조가 똑같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서도 대선 패배의 내부 원인으로 계파 담합 구조를 꼽는 이들이 많다. 한 재선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야권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야당의 승리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계파주의가 노골적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총선의 계파공천 파문이 그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캠프는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당내 기득권 포기'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민주당의 계파 담합 구조를 해소하라는 요구였다. 안철수 쪽은 계파 담합형 리더십이 온존하는 상황에선 단일화를 해봤자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고, 새 정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도 요원하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보면 민주당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집단이었다. 민주당 주류들은 철저하게 안철수를 불쏘시개로 생각한다고 우리는 판단했다"고 말했다.

# 안철수 캠프 "기득권 포기" 주장"계파담합 구조로는 새정치 요원"'주류 변화 거부' 단일화 걸림돌막판 '친노 퇴진' 요구 끝내 외면

대선 막판에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와 이해찬-한명숙 의원의 2선 퇴진,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친노 인사들이 청와대에 가지 않고 정무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백의종군 선언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까지 나서 이런 의견을 문재인 후보가 받아들일 것을 권했다. 당내에선 박영선 선거대책본부장과 이상민 동행2본부장 그리고 이종걸 전 최고위원 등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를 둘러싼 친노·주류에선 이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선거대책위원회 그리고 민주당이 따로 움직인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계파간 권력투쟁이 만든 결과였다. 민주당엔 친노·주류 외에도 손학규계, 민평련계(옛 김근태계), 김한길 의원과 쇄신파 의원들이 모인 비주류계가 있다. 대선 캠프에서 주요한 구실을 했던 한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계파들끼리 서로 믿지를 못했다. 계파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고 이른바 '친노 9인방'이 캠프에서 빠졌지만, 그 뒤에 만들어진 10인 공동선대위원장 체제 역시 각 계파들이 세력 균형을 맞추고 있었던 구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선거 지휘부가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기형 구조로 짜인 것이다.

# '기형적' 10인공동선대위원장 체제'친노 9인방' 빠진 뒤 실권 잃어모든 결정권은 후보·비서실로안철수 면담 불발사태 등 낳아

당시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당직자는 "모든 일정은 문 후보의 확인을 받아야 확정이 됐다. 후보가 선대위에서 올리는 보고와 계획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외부에서 오는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 일정을 확정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사퇴한 안철수 후보의 자택을 사전 통보 없이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해 당내에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문 후보가 선대위 공식기구나 일정팀에도 알리지 않은 채 청와대 출신 한 의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잡은 일정이었다.

민주당의 계파 담합 구조는 기본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공백을 채울 '정치리더십 세우기'에 실패한 데서 비롯한다. 청산이나 해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계파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계파 패권주의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혁신은 요원할 것이란 지적은 당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야 하는데, 현재의 계파 구조와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않으면 어렵다. 새로운 인재들이 민주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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