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든 일 하면서도 잘릴까 걱정..우리는 인간쇼바다"

2013. 1. 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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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3 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③ 울산 현대차 3공장

현대자동차 공장은 온갖 첨단기술이 집결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유연한 첨단 노동관리를 통해 노동과 자본의 격차,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키운다. <한겨레> 신년기획 '격차사회를 넘어'가 3번째로 찾아간 공간은 울산 현대차 3공장 아반떼 조립라인이다. 10여 년째 불법파견의 굴레 속에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가 섞여서 일하고 있는 그 공간에서 우리 곁에 엄존하는 차별의 민낯을 만났다.

울산 현대차 3공장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문을 열면 축구장 다섯 배 넓이의 광활한 아반떼엠디(MD) 조립 현장이 펼쳐진다. 한 줄에 400m에 이르는 거대한 연두색 컨베이어벨트 작업라인이 5줄로 늘어서 있다. '드르르륵, 쌔애앵, 철컥' 불규칙한 기계음 속에서 흰색, 검정색, 은색, 빨강색 등 갖가지 색으로 도색이 끝난 아반떼 차체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안은 채 서서히 움직인다.

현대차 노동자 800여명이 컨베이어 벨트 바로 옆 또는 위에 서서 작업에 열중했다. 그들은 뼈대만 달린 아반떼 차체에 엔진, 타이어, 시트, 유리 등을 붙이며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아반떼'는 이렇게 살이 붙었다. 지난 3일 오후 2시30분께 세계 5위 자동차회사인 현대차의 울산공장 모습이다.

5개 라인 가운데 2번째 라인 첫 공정을 맡고 있는 이가 문아무개(37)씨다. 오른쪽 앞바퀴 '쇼바'(스트럿)를 차체에 고정하는 게 그의 일이다. 쇼바는 바퀴축과 차체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부품이다. 본말은 쇽업소버(shock absorber), 충격흡수장치란 뜻이다. 쇼바는 성인 남성 팔뚝만한 크기로 긴 원통모양의 피스톤과 겉을 두르는 스프링으로 이뤄진다. 피스톤 안의 공기와 바깥의 스프링이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다.

문씨 주변 노동자들은 모두 남색 작업복에 하늘색 조끼를 입었다. 저마다 1대당 40초가량 컨베이어벨트에 매달려 부품 조립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조끼의 등짝에 쓰인 글귀는 다르다. 문씨같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등에는 흰색 글씨로 '00기업' 혹은 '00산업'이라고 써 있다. 문씨 바로 옆에 서서 자동차 뒷번호판 위에 후방 카메라를 다는 정규직 노동자의 등에는 '의장3부'라고 적혀 있다.

문씨는 "우리는 정규직과 공식 작업시간, 휴식시간, 작업라인이 모두 같지만 더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한다. 정규직 두 명 분량의 일을 우리는 보통 한 명이 한다"고 말했다. 6년째 아반떼 쇼바를 달고 있는 문씨는 현대차가 새차를 출시할 때면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현대차 신차 출시는 사내하청 노동자 정리해고의 신호탄이다. 2006년 6월, 새 차종인 아반떼에이치디(HD)가 양산되면서 울산 3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106명이 정리해고 됐다. 부품이 '모듈화'(여러 작은 부품을 한 모듈에 장착한 상태)돼 공정이 줄었다는 이유였다.

"98년에 정규직 노동자가 정리해고 되고 나서 늘어난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제 해고의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현대차의 '인간쇼바', 문씨가 말했다.

아반떼 조립라인 800명중사내하청 노동자는 200여명무겁고 손많이 가는 일 할당받아급여는 정규직의 58%에학자금도 지원 못받아

■ '혼재노동'의 공간, 조립라인

문씨는 현대차 공장에 다니기 전엔 레스토랑 서빙일을 했다. 2002년 '자동차 업체 생산직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게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였다. 문씨는 "입사 전엔 조립같은 생산직 일은 하청이 하고, 직영은 따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줄 알았어요. 오니까 다같이 현장에서 일하더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울산 현대차 3공장 조립라인에 출근한 게 벌써 11년째다. 그 사이 아반떼엑스디(XD), 아반떼에이치디(HD), 아반떼엠디(MD) 수십만 대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11년 동안 소속 사내하청 업체가 두 차례 바뀌어 현재 업체가 세 번째다. 하지만 아침에 그가 출근하는 곳과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출근한 뒤 퇴근하기까지 문씨는 매일 약 400대의 아반떼에 쇼바를 단다. ㄴ자 모양 로봇장비가 쇼바를 빈 타이어 공간으로 가져오면 문씨는 주유소 주유기처럼 생긴 공구로 보닛 안쪽에 엄지손톱만한 너트 3개를 끼운다.

문씨의 손을 거친 아반떼 차체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바로 옆 정규직 노동자에게 도착한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자동차 뒷번호판 위에 후방카메라를 다는 일이다. 문씨 바로 전 공정도 정규직 노동자 몫이다. 자동차 보닛(앞 덮개) 안쪽에 '후드인슐레이터'라고 부르는 단열패드를 장착하는 게 그의 일이다. 단열패드는 플라스틱 핀으로 고정한다. 아반떼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전체 800여명의 노동자 가운데 200여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처럼 라인 곳곳에 스며들어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을 한다. 문씨는 "차종이 바뀌면 업체의 조장·반장과 함께 생산기술, 생산관리 담당 정규직한테 직접 작업방법을 배운다. 조립에 미세한 오류가 생기거나 라인이 멈추면 정규직 관리자들이 뛰어와 직접 상황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의 혼재노동과 원청의 직접관리는 2010년 7월 대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의 경우를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핵심 판단근거다. 그러나 현대차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규직 작업복엔 '의장3부'하청 노동자 등엔 '○○기업'휴게실 따로…통근버스도 못타새차 살 때 달랑 3% 할인정규직은 친인척도 5% 깎아줘

■ '인간 쇼바', 사내하청 노동자

새차가 출시되거나 하청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비정규직은 언제든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다행히 해고를 피하면 정규직이 기피하는 작업에 이들이 투입된다. 문씨는 2004년 12월 노동부가 울산공장 101개 업체 소속 83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모두 불법으로 파견됐다고 판정한 뒤 노조에 가입했다. 당시 소속 업체 사장이 문씨를 찾아와 "정리해고할 때 노조원은 불이익받는 1순위"라고 위협했다. 문씨는 "해고라는 말을 들으니 덜컥 겁부터 났지만, 그런 말 못하도록 (노조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정리해고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안감과 걱정에 휩싸여 "일을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직도 만만치 않아 가족들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지금 그는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다. 2008년, 같은 공장 품질관리부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아내와 결혼한 뒤 얻은 5살짜리 딸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3월이면 둘째가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오후 3시가 되자 거대한 공장 안의 컨베이어벨트 윗쪽에 매달린 형광등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이다. 아반떼 차체가 400m 길이 1라인을 지나 유(U)자로 꺾인 뒤 2라인 최초 작업을 맡은 문씨 자리로 오기 직전에 컨베이어벨트가 멈췄다. 1라인 끝 부분에서 작업을 하던 11년차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박아무개(37)씨도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박씨는 작업 위치 바로 옆에 놓인 긴 간이탁자에 홀로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사이 정규직 노동자들은 1라인과 2라인 사이 복도 2층에 있는 휴게공간, '써클룸'으로 하나둘 올라갔다. 박씨는 "써클룸은 눈치 보여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못 올라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쓰는 휴게실은 공장 양옆 끝에 있어서 휴식시간 10분 동안 오갈 수가 없다"며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10분은 금세 지나갔다. 형광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고 종소리가 공장을 울렸다. 작업 시작이다. 차 내부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의 선반(백케이지)을 장착하는 작업을 하는 박씨가 컨베이어벨트 옆에 어깨높이만큼 쌓인 검정색 선반을 한 장 들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보면 모르겠지만, 차체 안에 들어가 작업하는 건 하청 노동자가 많이 합니다. 자세가 힘들어 나도 어깨가 많이 안 좋아요." 박씨가 밀려가는 아반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공장에서 정규직이 하는 일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어떻게 나뉘는지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맡겨진 일이 정규직의 것보다 조금 더 거칠고 힘들 뿐이다. 이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한 작업당 주어진 시간은 40초 정도다. 그 시간 동안 꼬박 부지런히 움직여야 끝낼 수 있다.

일은 더 힘든 반면, 급여는 훨씬 적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급여는 자신과 근속연수가 같고 작업 라인이 같은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58%가량에 불과하다.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자녀학자금 지원은 전혀 없고, 휴가비도 적게 준다. "(정규직보다) 일은 더 하고 돈은 적게 버는 게 제일 힘들다." 박씨가 무심히 다음 철판을 집어들었다.

98년 경제위기 겪은 뒤늘어난 비정규직이 완충작용새차 출시할 때면 불안감…공정 줄어 언제 잘릴지 몰라2006년에도 106명 짐싸

■ 초면에 반말하는 정규직 노동자

문씨가 작업한 아반떼 차체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정규직 노동자를 거친 뒤 다시 사내하청 노동자 남아무개(41)씨 앞으로 밀려왔다. 남씨는 앞유리 아래 쪽에 와이퍼모터를 고정할 철판을 볼트 2개로 고정하는 일을 한다. 남씨는 현대차에 소음기(머플러) 몸체를 납품하는 2차 부품협력사를 그만두고 2002년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했다. 2006년 정리해고의 아픔을 겪은 뒤 현재 소속된 ㄷ업체에 들어왔다. 남씨는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와는 조금 다르게, 지원반 소속이다. 지원반은 정규직 노동자가 산재, 휴가, 대의원 선출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 자리에 투입된다.

정규직들과 섞여 일하는 남씨의 가장 큰 불만은 '비인격적인 대우'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를 투명인간 보듯 한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양쪽 어깨를 수술한 뒤 9달의 공백기를 거쳐 지난해 8월 공장에 복귀한 남씨는 자신보다 연배가 낮아 보이는 정규직 노동자가 초면에 반말로 말을 걸어 당황한 경험이 있다. 월급을 받은 어느 날엔가는 한 정규직 노동자가 남씨에게 "너네 월급 많이 받았지?"라고 빈정거려 속이 상한 적도 있다. 남씨는 "(정규직들에게는) '우리는 주인이고, 너희는 언제든 잘리면 집에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우월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제도적 차별은 널려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친인척들은 현대차를 살 때 5% 할인을 받는데, 우리는 3%밖에 할인을 못 받습니다. 공장에서 직접 차를 만드는 우리가 정규직 친척보다 못하다는 거 아입니까." 문씨가 소리 높여 말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모든 정규직 노동자가 한 달에 2만5000원만 내면 탈 수 있는 통근 버스에도 오를 수 없고, 정규직이 명찰을 당당히 달고 정문을 통과할 때 그들은 업체 이름이 적혀있는 작은 출입증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고, 도로 집어넣는다.

하청보다 못한 '단기계약직'파견법 개정 뒤 1천여명 늘어2년 가까이 되면 사직 강요"특근은 꼬박…월차 꿈 못꿔계약직은 또다른 인간쇼바"

■ 제2의 인간쇼바, 단기계약직

아반떼가 2라인을 돌아 3라인으로 넘어왔다. 3라인은 차가 공중에 매달려 컨베이어와 연결돼 움직인다. 황아무개(39)씨는 그 중간지점에서 아반떼 차체의 휠에 오른쪽 타이어 두개를 장착한다. 그는 외환위기 뒤 2년 동안 정규직으로 다니던 대우자동차에서 명예퇴직 당하고 2000년부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해 왔다. 황씨는 "지난해 7월부터 공장 안에 현대차가 직접 고용하는 단기계약직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그 전까지 사내하청 업체 소속의 단기계약직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사내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를 단 하루라도 불법으로 파견받은 사실이 확인되면 바로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개정되자, 현대차 쪽이 이를 피하려고 하청업체 소속 단기계약직을 직접 고용한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현재 1000여명에 이르는 울산공장 단기계약직 노동자 가운데 본사와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한 기간이 2년 가까이 된 이들에게 이달 들어 사직서를 강요하고 있다고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증언했다. 단기계약직 노동자 ㄱ씨는 "나도 업체 계약직과 직영 계약직으로 총 2년 가까이 일해 대상자에 포함될까봐 불안하다"며 걱정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그는 "일만 할 수 있으면 되는데, (현대차가) 일 할 기회 자체를 안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재계약을 안해줄까봐 쉬고 싶어도 월차휴가를 쓰지 못 하고 특근도 빠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노동계급 구조에서 맨밑바닥에 놓인 단기계약직들에게는 이제 사내하청 노동자들조차 기피하는 일이 조금씩 떠넘겨지고 있다.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고강도 노동과 고용 유연화로 인한 부담을 온몸으로 떠받치는 또 다른 '인간 쇼바'다.

부품 조립이 완성된 아반떼엠디의 날렵한 옆 라인은 인상적이다.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유연한 역동성·Fluidic Sculpture)가 반영된 결과다. 유연한 자태를 뽐내는 현대차를 두 개의 쇼바가 버티고 있다.

울산/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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