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알바' 후 공부 열심히.." 직접 해보니

김평화 기자 2013. 1. 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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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수요비해 공급많아 '지옥행 티켓'구하기 쉽지않아 "병원비, 일당보다.."

[머니투데이 김평화기자][[르포]수요비해 공급많아 '지옥행 티켓'구하기 쉽지않아 "병원비, 일당보다…"]

↑택배 상하차 작업. 위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뉴스1

'지옥으로 가는 티켓'을 구하기 위한 경쟁자는 넘쳐났다. 청소년들에게 속칭 '지옥알바'로 불리는 대기업 택배 상하차(택배 물량을 차량에서 싣고 내리는 일) 아르바이트.

방학기간인데다 불황까지 겹치며 일명 '노가다' 자원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일자리는 부족했다. 재수 끝에 간신히 얻은 '지옥행 티켓'. 막상 실제 체험해보니 숨쉴 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보낸 12시간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노동법과 근로기준법, 인권 등은 낄 틈이 없어 보였다.

◇열악한 작업환경…무시되는 '인권'

9일 오후 6시30분 서울 사당역 인근 한 주유소 앞. 60여 명의 남성들이 모였다. 이천의 한 택배 물류창고로 향하는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상하차 아르바이트 알선업체 직원들은 모인 이들 중 30여 명의 경력자를 우선 버스에 태웠다.

그 다음엔 경험이 적더라도 일찍 와서 기다린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20여 명은 강추위에 30분을 넘게 기다렸지만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날인 10일 오전 본격적으로 알바구하기에 나섰다. 알선 회사 측 요구에 따라 이름과 나이, 거주지를 적어 문자를 남겼지만 답장은 없었다. 결국 서울을 벗어나 경기 군포에 있는 한 인력회사에서 어렵게 야간 알바를 구했다.

10일 오후 5시30분 인력회사 사무실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10명의 '알바동기'와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40분이 지나 인천에 위치한 H택배 물류창고에 도착했다.

창고는 어림잡아 3305.8m²(1000평) 가량으로 보였다. 사무실 쪽을 제외한 3면이 화물차를 댈 수 있는 승강장. 각 승강장에서 택배 화물을 내리고(하차), 컨베이어 벨트에 연결시켜 중간에서 분류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화물차에 싣는(상차) 체계였다.

이날 작업은 하차 승강장 7레일, 상차 승강장 12레일에서 이뤄졌다.

오후 6시 50분 작업반장이 출석을 부르고 작업이 시작됐다. 하차 3레일에 배치됐다. 처음 맡은 일은 쌓여 있는 A4용지 2뭉치 묶음을 벨트에 올리는 것. 15분 정도 정신없이 올리다 보니 9.5톤 화물차가 도착했다. 트럭 안에서 물건을 벨트 위에 올리는 사람 2명, 벨트 위로 흘러가는 상자의 바코드가 윗면에 오도록 배치하는 역할, 바코드 찍는 사람이 각각 1명 씩이 배치됐다.

여기에 상자를 목적지에 따라 분류하고 창고 안을 흐르는 레일로 보내는 사람까지 더해 한 팀이 구성됐다.

한 트럭을 비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50분. 빈 화물차가 빠져 나가고 다른 화물차가 주차하기까지는 10분 정도 걸리지만 쉬는 시간은 아니었다. 옆 팀을 도와야 하기 때문. 오후 11시30분 전반 작업이 끝나고 야식 시간까지 4시간30분 동안 휴식은 전혀 없었다.

40분의 야식 시간 이후 날이 바뀐 11일 새벽12시10분부터 후반 작업이 시작됐다. 쌀 포대와 과일상자, 2리터짜리 생수12병 묶음 등 '강적'이 쇄도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화물차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창고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넘어 다녀야 한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화물차 엔진과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레일때문에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화물차 안에서 '레일!'이라고 외치면 분류하던 작업반이 뛰어가 '전진 버튼'을 누른다. 레일이 화물차 안쪽 짐으로 접근해 작업장 안에서 '스톱!'이라고 외치면 눌렀던 버튼을 놓는다.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만큼 바쁘게 돌아갔다.

새벽 2시가 지나면서 온 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한참 지났나 싶어 시계를 봤지만 고작 20분이 흐른 상태. 손가락 근육이 마비됐고 손톱 하나가 깨졌다. 추위에 발끝도 시렸다. 계속 선 채로 일하고 무거운 짐을 들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왔다. 허벅지 근육도 '장난 아니게' 당겨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감독 직원들의 '까칠함'도 견디기 어려웠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직원은 중장년층의 알바에게 "돈 벌러 왔으면 열심히 일하셔야죠" 등 예의없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알바 동기' 김모씨(34)는 이같은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가버리는 이들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12시간 '지옥알바' 댓가는 6만5000원

택배 화물차 1대에 싣는 짐의 무게는 1만1000kg(11톤) 정도. 4~5명의 한 팀이 1만1000kg에 달하는 귤 상자 820개를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다. 상하차 알바 이후 인터넷 댓글에 달린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해 대학 갔다" "손가락이 마비됐다" "병원비가 일당보다 세다" 등 댓글이 과장이 아니었다.

지원자는 넘쳐 났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일당이 바로 지급되기 때문. 이날 청소년 알바는 없었지만 '손이 귀한' 일부 다른 곳에서는 청소년들도 무작위로 알바로 쓰는 곳도 있다고 했다. 박모씨(52)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직장을 잃었다"며 "건설 노가다도 해봤는데 이게 더 힘든 것 같다"며 '지옥 알바'에 대한 감상평을 내놨다.

12시간 작업 끝에 찾아온 오전 6시30분. 날이 밝아질 기미가 보이면서 일은 끝났다. 퇴근 사인을 하고 다시 인력회사로 향했다. '동기 11명'은 낙오자 없이 일당 6만5000원을 받고 각자 목적지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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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평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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