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 붙자" 권투시합 앞둔 시장과 시의회장

2013. 1. 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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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성낙선 기자]

이광준 춘천시장.

ⓒ 성낙선

이광준 춘천시장과 김영일 춘천시의회 의장이 오는 3월 9일 사각의 링 위에서 공식적으로 권투 시합을 하기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이 권투 시합은 지난해 8월 17일 시집행부와 시의회 후반기 의장단이 참석한 만찬 자리에서, 이 시장이 김 의장에게 경기를 제안하고 김 의장은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이들은 '아마추어 권투대회 유치'를 기회로 '오픈 경기'를 벌이기로 했다. 당시에는 실제 경기기 이뤄질까 의심됐지만, 최근에 경기 날짜가 잡히고 경기 장소도 구체화되고 있다.

이 시합은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만 보면, 두 사람의 정치인이 정정당당히 스포츠맨십을 발휘해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쌓인 갈등을 딛고 서로 화합을 다지자는 쪽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투시합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왠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리고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뜻이 그렇게 순수해 보이지도 않는다.

언론은 이 시합을 재미있는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 실제 시합이 벌어지면 '해외토픽감'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 보도를 접한 누리꾼들도 꽤 흥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앙숙'으로 불리며,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의 정치인이 정치권 밖에서 권투라는 이름으로 '결투'를 벌이게 된 배경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이나 누리꾼은 거의 없다. 무언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다.

춘천시에서 이광준 시장의 권투 시합 제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시장이 그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시의회 의장과 권투 시합을 계기로 화합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시장 역시 언론에서 그런 주장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 시장은 새누리당 소속이고, 김 의장은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또 다른 하나는 권투 시합 제안은 단지 이광준 시장의 돌출 행동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이런 관점이 나타나는 데는 이 시장이 시장 취임 이후 보여준 행동과 말들이 상식 외로 매우 돌출적인 사례가 많았던 데 기인한다. 그는 그동안 시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과 행동으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막말과 고성으로 조용할 날 없는 춘천시의회

춘천시의회

ⓒ 성낙선

겉으로만 봐서는 두 사람의 권투 시합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취지를 잘 살리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시합이 성사되기 전, 두 사람(혹은 시청과 시의회라는 두 집단) 사이에 일어난 분란은 그렇게 쉽게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난해 시장과 시의회는 번번이 대립각을 세워 왔다. 시장과 시의원들은 어린이회관 매각 문제와 본회의에서의 시장 발언권 등을 놓고 수차례 대립했다. 갈등이 본격화된 건 지난해 5월 30일 전반기 시의회 임시회에서였다. 당시 이 시장은 이재수 의원이 자신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데 해명할 기회(발언권)를 주지 않는 것에 반발해 전반기 의장직에 있던 박근배 의장에게 먼저 반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야! 박근배"라며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른 것이다. 거기에 박근배 의장은 "야! 이광준"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해 7월 19일, 시의회 정례회에서 어린이회관 매각 문제 등이 빌미가 돼 다시 이광준 시장과 박근배 의원 사이에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이날 대형마트 규제 조례 등 민생 현안을 뒤로 한 채 시의회에서 막말과 고성이 오고 간 것이 논란이 되자, 이 시장과 박 의원은 다음 날인 20일 정례회 폐회식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듯했다. 이날 박 의원은 "후반기만큼은 본회의장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성과 싸움이 오가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자"고 제안했다. 이 시장은 사과 발언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이 시장의 발언은 오히려 더 큰 분란을 일으켰다. 발언대에 올라선 이 시장은 "(시의원이) 10분 발언을 통해서 시장에게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어대고 시장의 해명에 귀를 막겠다는 것은 뒤에서 총질을 하는 것만큼이나 비열한 행태"라며 재차 시의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시의회가 시장의 발언 신청을 허용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분 발언시간에는 의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 후반기 의장인 김영일 의장은 "시장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유는 그런 전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원규 의원은 이 시장이 과거 박근배 의장에게 반말을 한 일을 거론하며 "시장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언행이었다고 생각하냐"고 지적하고, "시비는 누가 먼저 걸려고 한 건지 그것부터 반성하라"고 비난했다. 이날 시의회는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이 시장의 권투 시합 제의는 지난해 8월 17일에 있었다.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막말과 고성을 주고받은 지 한 달 만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된 9월 10일 시의회 임시회가 열리는 본회의장에서 이 시장은 김 의장으로부터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시장은 이날 대형마트 규제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 또 본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돌출 행동과 막말로 늘 '화제'가 돼온 이광준 시장

지난해 4월 25일, 무상급식 요구 기자회견 중인 시민을 고발한 이광준 춘천시장을 규탄하는 '춘천무상급식실현운동본부' 기자회견

ⓒ 성낙선

이 시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권투 시합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발언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이 시장은 "복싱은 순수한 스포츠"이며 "이번 시합은 화합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의장 역시 "불필요한 대립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간에 있었던 갈등이야 어찌됐든, 두 사람은 춘천시민들이 이 시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 시합을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그동안 이광준 시장이 쌓은 업보가 너무 많다. 이광준 시장은 평소 '돌출 행동'으로 유명하다. 2011년 7월 27일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자원봉사차 춘천을 찾은 인하대생 등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 이 시장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춘천시에는 책임이 없다"는 발언을 해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보상 문제는 물론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과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런 이 시장이 지난해 12월 14일 사고 유족들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이 유감 표명도 유족 측이 이 시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후, 법원의 '화해 권고'가 있고 나서야 가능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다 돼 가는 시점이다.

그리고 지난해 3월 22일에는 춘천시가 춘천시청 현관 앞에서 '무상급식' 실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려던 시민단체 회원들을 '퇴거불응죄'로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시장은 강원도 18개 시군 중에서 유일하게 무상급식을 거부해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무상급식 실시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다, 급기야 시민단체 회원들을 고소하는 사태까지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도 재판 중이다. 시의회 의장과 화합을 다지기 위해 권투 시합까지 불사하는 이 시장이 시민단체와는 여전히 화합을 하지 못하는 모습도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다. 그런 이 시장이 18대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 4일 무상급식 실시를 전격 결정했다. 춘천을 지역구로 둔 김진태 국회의원으로부터 "춘천시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해 전향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라"는 요구를 받고 난 뒤다.

이 시장은 또 지난해 5월 24일 춘천시장애인부모연대와 면담을 한 자리에서 그 단체의 회원들에게 "(춘천이 마음이 안 들면) 원주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해, 분란을 일으켰다. 단체의 한 회원이 "원주에는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은데 도청소재지인 춘천에는 없다"고 말하자, 그렇게 답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이후 이 시장이 시의회에서 시의원과 갈등을 빚는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 사건을 가지고 시의원들은 시의회에 나온 이 시장을 심하게 질책했다. 여기에 이 시장은 시의회가 자신에게 반론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의장에게 반말까지 했던 것이다. 이후 이 시장은 그해 6월 24일 시청 본관 앞에서 '시장 사퇴'를 촉구하는 장애인부모연대에 자신의 잘못을 공개 사과하는 수모를 겪었다.

일회성 이벤트인 권투 시합보다 더 중요한 일들

춘천시의회 김영일 의장.

ⓒ 성낙선

이 권투 시합은 그 결과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현재 시합에 대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권투 수업을 받는 등 틈틈이 몸을 만들고 있다. 이 시장은 평소 테니스로 다져진 체력을 가진 데다 승부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또 아마추어 권투선수를 아들로 두고 있다.김 의장은 "아마추어 권투 국가대표였던 나경민 선수가 같은 동네 형님이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는 그 형님의 어깨 너머로 권투를 배웠다. 그는 조기축구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시장에 비해 키가 작고 팔도 짧은 게 걱정이다. 나이는 이 시장이 58세로 53세인 김 의장보다 다섯 살이 더 많다.

춘천시에서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권투 시합을 벌인다는 소식에 의견이 분분하다. < 강원도민일보 > 사회조사연구소 천남수 연구위원은 이미 지난해 8월 28일자 < 강원도민일보 > 에 이렇게 썼다. "권투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주먹으로 제압하는 격투기이다. 아무리 화합을 위한 이벤트라 해도 상대를 힘으로 눌러버리고 싶은 심리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시·의회 간 화합이 어디 '링 위의 한판'으로 해결될 일이던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춘천시민연대 유성철 사무국장은 최근 이 시장이 권투 시합 건으로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데 그 내용을 듣고 "나는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며 "이건 쇼도 아니고… 의회도 시장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면서 권투 시합 하나로 잘 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두 사람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에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권투시합을 하겠다는데 잘 될까 의문"이라며 "권투 시합 이후에 또 아무 것도 안하면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춘천시지부 경승현 지부장은 권투 시합을 좋은 의미로 해석했다. 그는 "두 분이 그동안 시정 문제로 많이 대립했는데 경기를 함으로써 서로 관계가 좋아지고 협조가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해,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기를 통해 두 분이 시정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래 이 두 사람이 '진짜 경기'를 치러야 할 장소는 춘천시의회 본회의장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경기장에서는 막말과 고성을 일삼다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이번에는 주먹을 주고받는 혈투를 치러보자고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권투 시합이 그저 당색이 다르고 정치적인 관점이 다른 두 사람의 경기장 밖 육탄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자세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시합이 이 시장이 비유한 말처럼 '아름다운 혈투'가 될지, 아니면 세간의 걱정처럼 '추악한 혈투'로 남게 될지는 시합이 끝난 뒤, 시정을 다루는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결정된다.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이번에는 두 사람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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