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면 된다"던 문재인, 집에 있지만..

2013. 1. 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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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치] 지난해 2월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답변… 최근 행보는 '정치인 문재인'의 책임감 보여주지만, 당내 '문재인 책임론'을 피해가긴 어려워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2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 한겨레21 > 인터뷰에서 "낙선한다면?"이란 질문에 "집에 가면 된다"고 답했다. 1초의 주저함도 없었던 이 답변은 비장하기도 했고, 쿨하기도 했다. '문재인식 돌직구'랄까. 총선 사흘 뒤인 4월14일. 그는 부산 엄궁동 자택에서 참모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대선 출마 결심을 밝혔다.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느냐"고 참모들이 묻자, "공정한 사회, 새로운 정치 그리고 일자리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미사부터 독서 감상문까지 활발한 트위터 활동

대선 패장이 된 뒤의 말은 결이 사뭇 다르다. 그는 지난해 12월21일 시민캠프 해단식에서 "제가 정권 교체를 이뤄보겠다는 꿈은 더 새롭고 좋은 분에게 넘겨야겠지만, 새 정치를 만들어나가는 노력, 그리고 민주당을 보다 더 큰 국민정당으로 만들어가는 점만큼은 저도 할 여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포기했던 것은 내 개인적인 자유였을 뿐인데, 그 자유도 더 큰 가치를 위해 내던졌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일은 없겠지만, '정치인 문재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찾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 의원의 최근 행보도 그런 맥락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2월27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씨의 빈소를 찾았다. 12월30일에는 광주를 방문해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 무등산 등반, 광주 지역 원로회의 간담회 등을 했다. 그리고 "(민주당) 비상대책위가 출범하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1월1일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친노 인사들과 지지자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활발한 트위터 활동이다. 대선 이후 첫 메시지는 "한진중공업 최강서님에 이어 현대중공업 이운남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죄스런 마음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라는 것이었다. 경남 양산의 자택 뒷산이나 성탄 미사를 다녀왔다는 소소한 근황부터 <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 (김정운 등), < 조선시대 당쟁사 > (이성무), < 어떤 경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변양균) 등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1월3일에는 학교 비정규직 호봉제 전환 예산이 '쪽지 예산'에 밀려 전액 삭감됐다며 "제 공약이기도 했는데, 미안하다"고 썼다. 그의 한 참모는 "안타깝게 돌아가신 노동자 조문은 당연한 일이고, 선거과정에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의 행보가 정치 일선 복귀가 아니라 원론적 차원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재인 책임론'에 대한 방어 성격이 짙다. 오히려 친노 세력 내부에서는 '문재인 역할론'이 꿈틀대고 있다. 친노·주류 쪽은 문 의원이 야권이 끌어모을 수 있는 최대치의 표를 얻었고, 그럼에도 패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괴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논지를 펴왔다. 할 만큼 했는데 패배 책임을 몽땅 지라는 것은 억울하다는 태도다.

기득권 놓지 않으려는 친노

한 초선 의원은 "선거에 졌다고 예전처럼 외국에 나가는 식은 이제 아니지 않느냐. 후보의 잘못으로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최대치를 얻었음에도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현재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문의원이)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도 있는 것이고,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라고 말했다. 당 밖에도 문재인 책임론이 아니라 당 책임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문재인) 후보는 잘했는데 당이 무슨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다"( < 한겨레21 > 942호 기고문)고 말했다.

그러나 문재인 책임론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패장은 패장이기 때문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현재는 후보 책임론이냐 당 책임론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당을 제대로 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 때"라면서도 "문재인은 착한 후보였을지 몰라도 좋은 후보는 아니었다. 후보로서 야권전체를 이끄는 리더십이 부족했다. 당이 부실한 만큼 후보도 부족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친노 세력이 문재인 역할론을 내세워 당 주류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 친노 쪽이 "일부의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지 않다. 친노가 누구냐는 것도 불분명하고, 분명한 친노라고 해도 도대체 어떤 책임이 있느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전해철 의원 2012년 12월26일 PBC 라디오 < 열린 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 > 인터뷰)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철희 소장은 "(친노 쪽이) 안철수 후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거나, 당내 비노 세력이 수수방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 후보의 리더십과 능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능력이 부족하면 채워가면 되지만, 이런 자세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 스스로 당내 리더십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문 의원은 역사에 죄를 지었다고 말했고, 트위터로 죽어가는 노동자들 얘기를 했다. 국회의원으로서 후보 시절 받았던 48%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움직일 것으로 본다. 문 의원이 당내 정치에서는 미숙함을 보였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에서는 학습 속도가 매우 빨랐다. 친노 세력이 그를 구심점으로 끊임없이 호출하려 할 테지만, 문 의원의 역할이 있다면 당내 리더십보다는 민주당과 민심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리더보다는 민심과의 다리 노릇?

당내 권력투쟁에 뛰어드는 게 1997년 대선 패배 뒤 당 중심으로 복귀했던 '이회창 케이스'라면, 현장에서 '어젠다 정치'를 하는 건 2011년 이후 '정동영 케이스'에 가깝다.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장을 뽑는 일정(1월9일)만 내놓았을 뿐, 비대위의 성격, 대선평가위원회 구성 문제,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을 놓고 친노-비노 세력이 끊임없이 다투고 있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사심과 사욕이 득실 거린다"(1월2일 시무식)고 한탄할 정도다. 패장 문재인은 책임감과 책임론 사이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는 1월3일 트위터에서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했다.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 그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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