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채·자금세탁뿐만 아니라 부모가 도와준 집값도 과세

조철환기자 2013. 1. 1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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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경제 양성화의 명암세무당국이 너무 옥죄면 추적 어려운 현금거래 늘어 지하경제 되레 '활성화'서민·자영업자 예외 인정 FIU 보고기준 완화 등 부작용 줄일 보완책 시급

# 2014년 1월 A씨는 관할 세무서에서 증여세 납부 통지를 받았다. 자금이 충분치 않던 2013년 여름 어렵게 주택을 마련하며 부모님에게서 지원받은 1억원이 화근이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를 통해 1억원 증여 사실을 파악했다'는 세무서의 통보에 대해, A씨는 "1억원은 부모님에게서 빌린 것이며, 매월 이자를 드리고 있으니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세무서는 부모님에게 "아들에게서 받는 이자를 부모님 연금과 합쳐서 연간 금융소득 2,000만원을 넘으니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 2014년 6월 B씨는 경기 성남시 도심에서 월 300만원 임차료를 내며 운영하던 옷 가게를 다른 상인에게 양도했다. 가게에 대한 소유권은 없었지만, 목도 좋고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단골 손님도 많아 5,000만원을 권리금으로 받은 뒤 은행에 넣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FIU를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한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자영업자 권리금은 소득세법 21조의 '기타소득'에 해당되므로, 2015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대다수 서민과 자영업자들은 ▦가족ㆍ친지 간 금전거래 ▦자영업자 영업권(권리금)은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왔다. 실제 과세당국도 은밀히 이뤄지는 거래정보 파악이 쉽지 않아 사실상 과세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왔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축적한 금융거래정보를 모두 이용하게 되면 위 가상 사례는 충분히 실제 사례가 될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FIU 정보에 접근하게 되면 자영업자 권리금, 개인 간 금전대차 등의 과세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하경제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약 밀매, 주세 포탈, 조직폭력배의 자금세탁 등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거래 쌍방이 경제적 이익을 얻지만, 관련 정보가 너무 사적이고 공개되지 않아 세무 당국이 인지하지 못하던 일상의 소소한 거래도 연간 372조원 규모의 지하경제에서 꽤 큰 부분을 점한다. FIU 정보로 개별 납세자의 거래 행태를 일일이 파악하게 된 세무 당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명분으로 기존 관행을 뒤엎은 과세에 적극 나설 경우, 일부 서민ㆍ자영업자들이 '뜻하지 않은 세금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추진하는 FIU 정보 공유가 실현될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세무 당국이 지나치게 옥죄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대신 오히려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FIU에 포착되지 않기 위해 규모가 큰 거래가 5만원권 현금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대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도 "과세정보 노출로 예상 밖의 세금을 맞게 된 자영업자들이 판매물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당국이 징세 편의에 집착해 일방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조치에 나서기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 확보와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FIU 수집 정보기준의 상향 ▦서민ㆍ자영업자에 대한 과세 예외인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조세연구원 관계자는 "상가 권리금은 지하경제로 인정해 과세하는 게 옳지만, 가족ㆍ친지 간 금전거래는 예외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너무 급진적이면 큰 반발이 예상되므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중산층의 반발을 줄이는 방법으로, 1억원 이하 개인 간 사채거래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며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세액공제 폭을 늘려서 세금 부담이 급증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FIU 보고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전 교수는 "(혐의거래보고 대상이) 1,000만원 이상인데 이 기준을 좀 높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고액거래 신고기준이 10만달러 수준인 만큼 1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게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장은 "국세청이 조사인력을 대폭 확충하려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경제 양성화는 인력문제가 아니라 정보흐름이 문제"라며 "자칫 세무 공무원 수만 늘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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