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길]제주 속살을 걷다..올레 21코스

2013. 1. 9. 11: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1코스를 마지막으로 제주 올레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구좌읍 세화리 해녀박물관에서 출발, 해안길과 마을길, 밭길을 걸어 종달리 종달바당까지 이어지는 약 10.7km의 루트는 오래 전 제주 사람들의 삶과 오늘의 제주, 그리고 제주 여자를 생각하게 하는 사색의 길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제주 여인들 그리고 '해녀박물관'

출발지에 서서 운동화 끈을 조이는데, 문득 '해녀박물관은 보고 출발해야하지 않겠니?'라는 울림이 일어났다. 허리를 펴고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입장료는 1100원. '해녀 영상물 보실래요?' 직원의 권유에 영상실로 들어선다. 제주 해녀가 제주 역사에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전시실은 해녀의 삶을 다룬 1실, 해녀의 일터를 소개한 2실, 바다의 이야기를 다룬 3실로 나눠져있다. 해녀의 삶을 볼 수 있는 1전시실에는 구좌읍 세화리에 실제 존재했던 '해녀의 집'이 복원되어 있다. 제주 전통 초가로 돌과 흙, 나무, 띠 등 주요 소재가 노출되어있는데, 특히 세찬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동여맨 띠줄의 모습에서 강한 기운을 느낄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제주의 전통 가옥이다. 지금 제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돌벽에 슬레이트 지붕 형태의 집은 새마을운동 때 조성된 것으로, 제주 전통 가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전시실에는 어촌마을 풍경, 영등할망신화, 제주의 세시풍속, 의식주생활, 반농반어, 제주의 바다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전시실 '해녀의 일터'는 '불턱'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해녀들의 작업 준비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예전의 해녀는 바람찬 바닷가에서 옷도 갈아입고 수확한 해산물을 챙겨야 했다. 불턱은 어장 입구 갯바위에 돌담을 쌓아 바람과 시선을 가려주고 가운데에 불을 때는 화로를 마련해 놓은 곳이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전, 이곳에서 도구를 챙기고 옷도 갈아입는다. 물질이 끝나고 나면 다시 들어와 바닷물에 언 몸을 녹여주고 수확물도 챙기며 친구들과 수다 떨던 곳도 바로 '불턱'이다.

'출가해녀' 전시물도 관심있게 볼 만 하다.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존재하는 직업이다. 제주 해녀는 제주뿐 아니라 육지,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진출해서 물질을 했다. 고향을 떠나 육지나 해외로 떠난 해녀를 보고 '출가해녀'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타지에서 해녀 생활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다시 제주로 돌아와 활동하는 사람도 많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지에 정착해서 살기도 했다. '해녀의 일터' 전시실에는 '나잠어구'(특별한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수심 10~20m의 바다에 잠수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어업 도구), 뱃물질 모형, 해녀사진첩, 역사 속의 해녀, 제주 해녀 근현대 투쟁사, 잠수기술, 해녀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3전시실에는 제주를 포함한 바다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제주 전통배인 '테우'와 해녀의 얼굴, 제주 민요, 제주의 어업, 고대 어업 활동, 구엄 '돌' 염전, 멸치잡이, 한반도어업, '포구와 등대' 등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구경을 먼저 한 것이 다행이야

올레길 21구간을 걸으며 '해녀박물관' 구경을 먼저 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의 실체는 제주 곳곳에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바로 엇그제 새벽, 세화리 옆 마을 평대리 해안에서 해녀 한 분을 만났다. 그 추운 겨울, 그녀는 저벅저벅 걸어 해녀 작업장(탈의실 겸 사무실)으로 들어갔고, 잠수복으로 갈아입고는 거침없이 바다로 들어갔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다. 그것은 마이애미 해변에서 보드에 배를 대고 파도를 향해 나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마이애미는 햇살 넘쳐나는 오후였지만, 이곳은 갯바위와 바닷물의 구분조차 어려운 새벽이다. 그 이른 시간부터 오전 10시까지 물질을 해서 걷어올린 해산물을 직접 손질해서 시장에 내놓거나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 식재로 사용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박물관을 나와 연대동산과 면수동마을회관, 낯물밭길을 걸으며 20코스와 21코스가 지나는 구좌읍이 제주 중에서도 가장 제주스러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올레길에서 세련된 커피숍이나 게스트하우스, 펜션, 호텔 등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해, 이 코스에서는 그저 돌담과 밭, 시골집, 마을길, 투박하게 생긴 식당 등이 전부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면수동 마을회관과 낯물밭길을 지나 걸으니 별방진이 나타난다. 별방진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진지로, 최근 복원을 마무리했다. 이름이 별방진이 된 것은 현재 이곳 지명인 '하도리'가 옛날에는 '별방'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성곽 안에는 여전히 마을이 존재하는데, 성곽이 제주의 바람을 막아주고 해도 잘 들어 아늑한 느낌이다. 별방진 안은 문화재보전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별방진을 떠나 해안도로를 걷는다. 왼쪽으로는 바다와 갈매기, 갯바위, 그리고 멀리 어선의 풍경이 이어지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돌담에 둘러쌓인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석다원'이라는 지점에 이르자 올레길 스탬프 부스가 있다. 석다원은 음식점 이름이다. 이곳도 해녀박물관의 모범 사례다. 주인 여자가 물질해서 잡은 해산물을 주로 파는 곳이다. 전복, 소라, 멍게, 홍해삼, 제주돌낙지, 돌문어, 전복죽, 보말무침, 키토산 겡이죽, 해물파전, 성게해물손칼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해안도로 루트에서는 박물관에서 보았던 '불턱'과 '영등할망신화'와 관련있는 '각시당'도 볼 수 있다. '각시당'은 영등할망(바람의 여신)에게 해녀들과 어부, 그리고 제주를 떠나 살고 있는 신앙민들의 안녕과 풍요한 해산물 채취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르는 곳이다. 매년 음력 2월 13일에 치러지는 영등맞이굿은 영등할망, 선왕, 신앙민의 몫으로 쌀 세 그릇, 돌레떡, 생선, 과일, 전, 삶은 계란, 술, 지전 등이 준비된다. 올레21코스 중간 5km 지점인 토끼섬 앞에 다다르자 갈매기떼가 섬 일대를 가득 채워 앉아있다. 토끼섬은 문주란 자생지인데, 평상시에는 폐쇄되어 있다가 문주란이 열리는 7월이 되면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6.3km 지점에 다다르자 하도리해수욕장과 하도리 철새도래지가 등장한다. 철 지난 해수욕장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올레꾼들에게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일을 볼 수 있는 위생 시설이 있어서 반가운 곳이기도 하다. 해수욕장 뒷쪽에 있는 '철새도래지'는 겨울이면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황조롱이, 참매, 홍머리오리, 청둥오리, 휜뺨검둥오리 등 최대5000여 마리이 철새가 날아든다고 하는데, 실재로 이곳을 지나던 지난 1월1일에는 그렇게 많은 새를 볼 수는 없었다.

해녀에서 농부로 변신하는 제주 여인들

하도리해수욕장에서 성산 방향으로 꺾어지면 오른쪽에 올레 깃발이 보인다. 직진하면 올레길을 이탈하여 바닷길을 걷는 것이고, 깃발이 있는 산길로 접어들면 지미봉을 향하는 시골 밭길을 만나게 된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 21코스가 비교적 짧은 10km 내외지만, 아스팔트만 걸으면 척추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맨흙으로 이뤄진 밭길을 걸으며 경직된 다리를 풀어줘야 한다. 올레길을 걸을 때 또 하나 유의할 점이 있다. 신발과 양말이다. 신발은 등산화보다는 바닥이 푹신한 스니커즈를 권한다. 양말도 두툼하고 매끄러운 소재가 좋다. 최악의 선택은 딱딱한 등산화에 꽉 끼는 양말의 조화다. 특히 제주 오일장이나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용 '요술버선'은 보행자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물론 후유증까지 수반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세화오일장에서 산 금박 무늬 요술버선을 신고 길을 걸었는데, 하도리해수욕장 쯤에 왔을 때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으며 지미봉 근처에 도달했을 때는 등산화 끈을 풀러야 했을 지경에 이르렀다. 지미봉으로 향하는 올레는 지난 눈과 비가 만들어 낸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러나 걷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평일, 그것도 1월 1일 올레여행이라 세화리해녀박물관에서 이곳에 이를 때까지 만난 사람이라고는 세 사람 뿐이었다. 그러니 밭일 하는 사람들이 반가울 수밖에….

해녀들은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높은 날이면 물질 대신 밭일을 한다. 지난 해 가을에 왔을 때 우연히 당근밭이 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평대리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밭 저쪽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바람에 조금씩 움직이는 장면이 보였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워낙 일정해서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봉지가 아닌 사람이었다. 농사가 그런 것이다. 하루라도 잡초를 뽑아주지 않으면 당근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어제의 해녀는 오늘의 농부가 되어, 무릎을 쇄골뼈에 바짝 붙인채 한 틈도 쉬지 않고 잡초 뽑기에 몰두한다. 해녀로 상징되는 제주 여인들의 삶은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을 엄격하면서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가르친다.

제주의 전통 가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분리된다. 자식이 장성해 장가를 들면 밖거리로 내보낸다. 같은 마당에 사니 내보낸 게 아니라고? 그렇게 밖거리로 나간 자식의 가족은 안거리 부모와 밥도 함께 먹지 않는다. 위급한 일이 아닌 이상 부모와 자식 세대가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는 일은 없다. 아버지가 안채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을 때 자식이 '같이 합수다' 했다가는 이상한 놈 취급 당하기 일쑤다. 세월이 흘러 자식 세대의 가족이 늘어나고 그들의 경제력이 향상되면 자식 가족이 안거리로 들어오고 부모가 밖거리로 나가기도 한다. 이런 풍습을 불효막심한 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산방산, 용머리해안이 있는 화순에 있는 민박집도 그런 경우다. 홀로 되신 노모가 어느날 밖거리로 나갔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자식 세대가 안거리로 들어가 살림과 민박을 꾸린다.

오늘 지미봉 아래 밭 한 가운데 앉아 감자를 캐고있는 저 여인들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안거리를 자식에게 주고 자신은 밖거리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챙기는 제주의 어머니들이다.

지미봉은 21코스의 백미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의 초록 겨울 풍경과 동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는 오름의 향연, 그리고 성산일출봉이 눈에 잡히는 곳이다. 경사는 가파른 편이지만 20분이면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쉬운 오름에 속한다. 지미봉을 떠나면 또 다시 해안도로다. 종착지인 종달바당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출발 시각이 11시였으니 총 6시간이 걸린 셈인데, 해녀박물관에서 한 시간 이상을 보냈고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어댔으니 실제로 보행하는데 걸린 시간은 4시간 30분쯤으로 보면 된다.

종착지에 도착했다고 그곳에 버스나 택시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다시 1코스로 접어들어 종달초등학교앞 버스정류장에 가야 숙소 또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수 있다. 여의치 않으면 구좌읍 콜택시를 불러 타면 된다.

21코스는 제주의 여인을 많이 생각하게 하는 사색의 길이다. 제주의 해녀, 농부, 여인, 어머니, 할망을 생각하며 걸었다면 사실상 제주의 속살을 걸었다는 뜻이다.

제주올레21코스

주요 지점

제주해녀박물관 - 연대동산 - 면수동마을회관 - 낯물밭길 - 별방진 - 석다원 - 각시당 -토끼섬 - 하도해수욕장, 철새도래지 - 지미봉밭길 - 지미봉(또는 지미봉 둘레길) - 종달바당 택시구좌콜텍시 064-783- 4994 / 동성택시 -64-784-8554 / 성산호출개인택시 064-784-3030 [글·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61호(13.01.1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