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떠나보낸 '곡절 많은' 황금의 92학번 빅3

2013. 1. 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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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조성민이 6일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면서 한국 야구의 황금 세대로 일컬어진 '92학번 빅3'의 곡절 많은 사연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973년생으로 이제 우리 나이로 불혹에 접어든 92학번 들 중 가장 주목받은 빅3는 조성민과 임선동 손경수 등 투수 3인방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좌절을 맛본 이는 손경수다. OB(현 두산)와의 주사위 던지기로 우선권을 확보한 LG가 임선동을 지명하자 OB는 조성민이 아닌 손경수를 택했다. 당시 OB가 조성민을 지명할 것으로보고 이미 가계약까지 맺었던 LG는 뒤통수를 맞는 격이었다. OB는 고려대 진학이 확실했던 조성민 지명을 뒤로 미룬 것이었다. 손경수는 OB 대신 홍익대에 입학했지만 2학년 때 부친의 교통사고로 자퇴한 뒤 OB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 적응에 실패하면서 1군 무대를 밟지 못한 채 1995년 프로무대를 떠났다.

임선동도 쉽지 않은 야구인생을 걸었다. 연세대로 간 임선동은 대학 졸업 후 일본행을 선택하면서 LG와 법정 소송을 벌여야 했다. 결국 1997년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프로 입단 후 2년 뒤 원하는 구단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할 수 있다'는 법원의 조정안이 있어서 99년 1월, 현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리고 2000년 18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며 명성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2002년 8승을 끝으로 내리막을 걷다 2007시즌 뒤 은퇴했다.

이들에 비하면 조성민의 초반 운은 훨씬 좋았다. 자유로운 신분으로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에 진출해 1998년 전반기에만 15경기서 7승6패 방어율 2.75를 기록하며 스타로 자리잡는 듯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팔꿈치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 후 재기에 몸부림쳤지만 야구 인생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4인자에 불과했던 또 다른 92학번 박찬호의 성공은 반전이었다. 한양대에 진학한 박찬호는 대학 2년을 마친 뒤 곧바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성공의 역사를 써내려 가 이들과 대조를 이뤘다. 이들 외에도 92학번 선수로는 박재홍(전 SK) 차명주(전 한화) 송지만(넥센) 김종국(KIA 코치) 홍원기(넥센 코치), 손혁(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이 있다. 대학에 가지 않고 프로로 직행한 염종석(롯데 코치) 박종호(LG 코치) 정민철(한화 코치) 등도 동기생이다.

송용준 기자 eidy015@sportsworldi.com

사진=스포츠월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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