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92학번' 조성민, 끝내 꽃피우지 못한 야구인생

2013. 1. 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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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조성민 전 두산 2군 재활코치가 숨졌다.

조성민 전 두산 코치(40)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인을 수사 중이다. 조성민이 누구인가. 2008년 자살한 국민배우 고 최진실의 남편이었으며 한 때 촉망 받던 야구선수였다.

조성민은 고려대 92학번이다. 박찬호, 임선동과 함께 대학야구 '황금 92학번 트로이카'로 불렸다. 신일고 3학년 시절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수투수상과 홈런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고려대 시절엔 에이스로 맹위를 떨쳤다. 1991년 한미일 국제 청소년야구대회와 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조성민은 고려대 졸업 이후 1996년에 일본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1997년엔 마무리로 뛰며 1승 2패 11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엔 선발로 변신했다. 4시즌 동안 통산 11승 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했다. 1998년 올스타전서 불의의 팔꿈치 부상을 입은 뒤 쇠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2002년 일본 생활을 정리했다.

그는 이후 한국에서 재기를 모색했다. 2004년 6월 신인드래프트에 나왔지만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5년 5월 당시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2007년까지 3년간 3승 4패 평균자책점 5.09을 기록했다. 완벽한 재기를 하진 못했다. 그는 스스로 선수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조성민은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야구 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최진실과의 결혼 및 이혼 이후 국내에서 각종 사업을 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2008년엔 야구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고, 2011년과 2012년엔 두산에서 재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했으나 지난 시즌을 끝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향후 진로를 모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인으로서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전공을 살려 지도자 생활에 나섰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두산에서 재계약이 불발 된지 2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을 택하고 말았다.

[세상을 떠난 조성민 재활코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press@mydaily.co.kr- NO.1 뉴미디어 실시간 뉴스 마이데일리( www.mydaily.co.kr) 저작권자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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