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왜 '일본식 정문' 고집할까

정락인 기자 2013. 1. 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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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식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국정을 이끈다. 청와대는 최고 권력의 상징이자, 국가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아직도 일제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시사저널 > 은 제1167호(2012년 2월29일자)를 통해 '청와대 정문 일본식으로 지어졌다'라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청와대 본관으로 통하는 정문과 영빈관 문이 '일본식'으로 세워진 것을 고발한 내용이다.

현재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 정문은 철제 문 사이에 네 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그 위를 '석등'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 전통 양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다. 문헌에도 없고 사례도 없다.

일본 신사(神社)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양식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 수탈의 본산인 조선총독부 정문도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철제 대문 사이로 네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석등을 장식했다.

청와대 춘추관과 영빈관 그리고 본관 등을 시공한 것은 현대건설이다. 당시 사장과 회장은 현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기자는 청와대가 '일본식 정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지난해 6월5일 청와대 대변인실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청와대는 계속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기사가 보도된 후에도 청와대는 '일본식 정문'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질의서를 보낸 후 3일째 되던 날 이메일로 답변서가 왔다. 청와대측은 "정문 건축 과정에서 일본식 석등 건축 양식을 모방하거나 고려한 바 없고, 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과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아 면밀한 검토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 다음에 정문 변경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같은 해 8월1일 청와대에 '일본식 정문을 철거해달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8월10일 청와대는 대통령실 사회통합수석비서관 국민권익비서관 명의로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답변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문주 양식'이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정문의 석등에 대해 "일본 신사에 나타나는 석등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정문을 밝혀주는 기능을 강조한 문주등으로 해석된다"라고 밝혔다. 또 여전히 "관계 기관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일본식 정문을 '문주등'으로 해석한 것은 황당하다. 문주등은 보통 '외부용 조명등'을 일컫는다. 모양도 다양하지만 석등으로 장식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식 석등은 일관되게 돌기둥을 세우고 그 뒤에 석등으로 장식한다.

때문에 빛이 투과하지 않는 석재로 문주등을 만든다는 것은 상식 밖의 해석이다. 아마도 청와대는 '일본식 석등' 논란을 비켜가기 위해 엉뚱한 '문주등'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앞서 문화재청 등에 자문을 받아 정문 변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문화재청이나 전문가들에게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는지도 의심스럽다.

청와대의 일본식 정문은 문제가 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문화재청, '석등=일본식' 유권해석

문화재청은 이미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석등'에 대해 일본식으로 유권 해석을 내린 상태이다. 2011년 10월11일 문화재청이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스님의 민원에 대한 답변을 보면 '일제 강점기 이전 전통 건축 양식에서 석등 2기가 배치되는 경우는 없다. 주로 일본 사찰에서 쌍등 형식이 보이고 있으며, 신사에서는 입구에 2줄로 늘어선 석등이 다수 있다'라고 밝혔다.

또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일본식 석등'이라고 지적한 창덕궁 입구의 석등, 경복궁역 5번 출구의 석등, 환구단 석등은 모두 철거했다. 우리의 전통 양식이 아니라 일본식 석등 양식을 모방했다는 것이 철거 이유이다.

그런데 유독 청와대만 '일본식 정문'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고 있다. 지금까지 10개월 동안 '일본식 석등' 문제를 깔아뭉개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지난 12월27일 오후 "청와대 정문을 철거하고 있다"라는 제보를 받았다.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정문과 춘추관 사이의 행정동 문을 보수 중이었다.

이곳도 정문과 마찬가지로 일본식 석등 양식을 하고 있다. 인부 세 명이 돌기둥 위의 석등을 해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철거가 아닌 보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청와대는 일본식 정문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 시사저널 > 은 지난 12월27일 오전 청와대 대변인실에 '일본식 정문'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공식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청와대는 28일 오후 5시까지 답변서를 보내지 않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기자가 재차 '답변서를 보내지 않은 이유'를 물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대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청와대는 '일본식 석등'을 해결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된 일본식 석등은 모두 철거된 상황에서 더는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일본식 청와대 정문을 철거하고, 전통 양식에 입각한 대문으로 교체해야 한다. 청와대는 국가의 얼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철거를 촉구했다.

청와대 판박이 '옛 기무사 정문' 철거한다

기무사가 사용하던 시절의 건물(위)(ⓒ 연합뉴스)과현재 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공사 중인 모습(아래)(ⓒ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는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으로 지어졌고, 1971년부터 2008년까지 37년간 기무사가 본관 건물로 사용했다. 현재는 올해 11월 개관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옛 기무사 정문에도 일본식 석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돌기둥 위에 '석등'으로 장식한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청와대 정문에 있는 양쪽 돌기둥과 판박이이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우리나라 건축 현대화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박길룡씨(1898~1943)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박씨는 왜 한국인이면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의 정문을 일본식으로 설계한 것일까. 박씨의 경력을 살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박씨는 대학에서 일본 건축을 공부하고,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하면서 일본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친일 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후생부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운영팀은 지난 12월21일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스님에게 '옛 기무사 정문 돌기둥'에 대해 문의했다. 미술관측은 "올해 개관을 앞두고 개관 관련 작품을 활용하려고 하는데, (정문) 돌기둥이 일본 양식으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했다.

혜문 스님은 "우리 미술사에서는 주거 공간에서 석등이 발견되지 않는다. 일본식이 맞다"라고 답했다. 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제 잔재인) 옛 기무사의 정문을 철거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정락인 기자 / freedo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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