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구워먹는 간이역 '진상역'을 아시나요

2013. 1. 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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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길 기자]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 김종길

광양시 진상면, 경전선 간이역인 진상역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예전에 대합실이었던 곳에서 식사하면서 지나가는 기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68년 영업을 시작한 진상역은 2004년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가 2009년에 역사가 임대되어 한우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상역은 진상면 소재지의 너른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옛 대합실이 식당으로 임대된 후 새로이 생긴 대합실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와 두서넛 정도 앉을 만한 나무의자가 전부다. 기차시간표와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어지러이 적어놓은 글씨가 아니라면 이곳이 대합실인 줄도 모르겠다.

옛 대합실이 식당이 되면서 새로이 생긴 작은 대합실

ⓒ 김종길

역 앞 광장은 간이역치곤 제법 너른 데다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향하는 곳은 역사 옆 정육판매점, 여행자도 따라갔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바로 옆 역사 식당에서 구워먹는 다는 것은 이미 알고 온 터였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승래(49)씨는 이곳 토박이다. 진상역이 무인역이 된 뒤 역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2009년에 학교가 가까워 우범지대가 될 것을 염려한 당시 광양역장, 순천역장, 진상면 청년회장, 면장 등이 모여 역 부지의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진상역이 들어설 때에도 면민들이 힘을 모았는데 진상역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지역을 활성화시키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처음엔 지역단체에 의뢰하여 농산물 판매점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2009년에 역사가 한우식당으로 임대되어 사용되면서 조용한 시골 간이역은 일대의 명소가 되었다.

ⓒ 김종길

이곳 토박이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승래(49) 씨는 소고기의 맛과 품질, 가격을 자신했다.

ⓒ 김종길

2009년에 진상면 농업경영인연합회와 청년회에서 식당으로 최초 계약을 해서 시작했다가 2년 전에 지금의 양씨가 개인 자격으로 식당을 임대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대는 최초 3년으로 2012년 10월에 종료되었으나 별 문제가 없으면 1년마다 연장이 가능하단다.

식당의 고기는 전라도와 이곳 광양 일대의 한우암소만 쓴다고 했다. 품질은 최상이라는 걸 자부했다. 소 잡는 날과 도축일자가 정육점 안에 적혀 있다. 소 잡는 날은 화, 수, 목, 금으로 매주 4마리다. '한우 암소가 아닐 경우 100% 보상해 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고 평일이고 식당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넘쳐났다고 한다. 올해는 경기 탓인지 영 바닥을 치고 있다며 양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봄철 매화축제나 고로쇠, 여름 휴가철에는 손님들로 여전히 북적했다고... 역사 주위에 봄에는 유채도 심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도 심어 나름 관리도 하고 식당 운영에도 신경을 쓰고 있단다. 2015년 진주 광양 간 철도가 복선화되면 지금의 역 아래로 신역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이 역도 어떻게 될지 운명을 알 수가 없다.

1968년 영업을 시작한 진상역은 2004년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가 2009년에 역사가 임대되어 한우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 김종길

"기차를 타고 오는 손님들도 많아요, 참 신기해하죠. 그런 분들을 위해 저는 최상의 고기를 대는 거죠. 좋은 고기를 써야 소문이 좋겠죠. 만약 제가 고기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누가 여기를 찾겠어요. 장사도 장사지만 코레일에서 임대해서 건물을 쓰고 있으니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늘 신경을 쓴답니다.

가격은 인근의 식당에 비해 3~4배 정도 싼 편이죠. 중간유통을 없애고 도축장에서 바로 가져오니까요. 누구나 오셔서 마음껏 드시게 해야죠. 서민들에게 맞춘 단가이지요. 어차피 이곳 장사는 진상면을 겨냥한 게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하니까요. 아무래도 지역적인 관계로 광양시와 전남 동부, 하동과 서부경남에서 특히 많이 오지만요."

간이역에서 소고기를 팔게 되면서 생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여행자의 주문에 양씨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여행자는 정육점 내부를 간간히 흘겨보았다. 청결했다.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간이역이라 다소 어수선하고 소박할 것이라 여겼던 첫 마음이 금세 바뀌었다. 청결도 맛도 좋았다.

이곳의 소고기는 시중에 비해 3~4배 정도 값싸다. 사진은 치마살

ⓒ 김종길

바로 옆 정육점에서 산 소고기를 식당에서 구워 먹고 곰탕과 장터국밥까지...

ⓒ 김종길

이곳에서 고기를 먹는 방법은 특이하다. 정육판매점에서 고기를 산 후 옆의 식당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먹으면 된다. 고기를 사가면 식당에선 각종 야채와 밑반찬,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재료비 명목으로 1인당 3000원을 받는다. 우리는 치마살을 샀다. 100g에 6300원이었다.

고기는 말 그대로 살살 녹았다. 산지직송이라서 그런지 소고기 특유의 부드러움과 입 안 가득 육즙이 고였다. 구운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만 아쉬울 뿐....

고기를 먹은 후 우리나라 사람이면 당연히 밥도 먹어야 할 터... 장터국밥과 곰탕은 원래 6000원인데, 장터국밥은 고기를 먹은 후 주문을 하면 1000원이 싼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곰탕과 장터국밥을 주문했다. 곰탕은 평범한데, 뜨끈뜨끈한 장터국밥은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도 그렇거니와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기적소리가 났다. 식당 창문으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들이댔다. 식당 앞으로 기차가 들어오다니... 아 참, 식사에 열중하다 보니 이곳이 원래 간이역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기차가 지나갔다.

ⓒ 김종길

오후 두 시가 넘어가자 식당을 빠져나간 손님으로 간이역은 다시 한산해졌다.

ⓒ 김종길

간이역에 잠시 정차한 기차는 미끄러지듯 창을 스쳐갔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올 시간도 머지않았다. "간이역 가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먹겠지." 딸애가 두두룩한 배를 두드리며 개그콘서트의 개그를 흉내 내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배가 부르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식당 입구에 행정안전부, 전라남도, 광양시가 지정한 착한가격모범업소라고 적혀 있었다. 매화축제 때에는 진상역 앞 광장에서 다압 매화마을로 가는 버스노선이 연결된다. 앞으로 진상역과 광양역과 연결되는 버스노선이 활성화되면 이곳은 많은 이들이 찾는 간이역의 명소가 될 것이다.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 김종길

☞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2009년에 역사가 한우식당으로 임대되어 사용되면서 조용한 시골 간이역은 일대의 명소가 되었다. 기차는 하루에 왕복 5회 운행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레일과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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