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보듯 제주를 보다

2013. 1. 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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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풍경이라고만 생각할 때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 자연이 보였다.더 이상 풍경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

제주돌문화공원에 도열한 48기 재현 돌하르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돌이야기

사실 무심했었다. 발에 차이는 게 돌 아닌가. 처음 오름에 올랐을 때 누군가 붉은 돌멩이를 주워 들며 '송이1)'라고 소개했을 때만 해도 '퍽 예쁜 이름이네' 했을 뿐이다. 함부로 주워 가면 안 된다는 말에는 시큰둥, 줍고 싶은 마음도 없다네, 했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은 송이를 보면 꽃 본 듯 반갑다. 그 작은 돌 하나를 마음에 품기 시작하면서 제주가 좋아진 것인지, 돌투성이 제주가 좋아지면서 돌멩이마저 예뻐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수십번은 스치듯 들었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이야기가 다시 들린 것도 비슷한 시점이다.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바다의 관탈섬에 닿았을 정도로 키가 컸다는 설문대할망. 치마폭에 흙을 몇 번 담아 나른 것이 한라산이고 그때 치마가 터져 흙이 흩어진 것이 오늘날 368개의 오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무려 500명. 흉년이 극심했던 어느 해 아들들이 먹을 죽을 끊이다가 솥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 설문대할망의 최후다. 죽을 다 먹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들은 영실의 기암절벽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180만년 전부터 바다 속에 퇴적층이 형성되어 천천히 해수면으로 올라왔고 55만년 이후부터 용암 활동이 시작되어 한라산을 포함한 화산체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 역시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돌과 관련된 문화와 민속을 이야기하는 제주돌문화공원과 지질과학을 이야기하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차례로 방문하고 나서야 제주의 돌들이 하나씩 살아났다. 마치 오백장군들이 하나씩 굳어진 몸을 풀고 오랫동안 품어 온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2006년을 문을 연 제주돌문화공원에는 초가집, 묘, 연못, 돌박물관, 오백장군갤러리 사이로 수십기의 석상, 모자상, 선돌, 돌하르방들이 서 있었다. 멀리 오름과 목장의 풍경마저 공원의 앵글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제주에 관한 거의 모든 풍경이었고, 모든 이야기였다.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야기는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설문대할망 전설과 마찬가지로 듣고 또 들어도 기억하기 어려운 제주의 세계문화유산 세 가지는 한라산(1,950m)과 거문오름계 동굴, 성산일출봉이다. 거문오름이 원뿔모양의 분석구이고 성산일출봉이 수성활동에 의해 일어난 응회구라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 나면 수천년 전 제주에 흘렀던 용암길이 상상된다. 인원 제한 때문에 탐방 신청이 쉽지 않았던 거문오름 탐방을 어렵게 성사시킨 것도 지금이라면 오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의 한 석상에 담긴 송이. 용암은 대지 위를 흐르며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신비로운 형상들을 남겼다

거문오름의 곶자왈은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천연림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성긴 돌에 걸린 촘촘한 삶

거문오름 탐방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시작된다. 거문 오름을 포함하여 제주의 지질에 대한 전문적인 시청각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행학습이지만 시간관계상 복습이어도 상관없다. 대략 전하면 거문오름의 형성과정은 이런 것이다. 어느날 한라산에서 검붉은 덩어리들이 새어나와 세상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기세로 흐르기 시작했다.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14.6km를 달려 바다로 향하는 붉은 덩어리들의 행렬. 그 용암 줄기에서 탄생한 오름이 바로 거문 오름이고, 그 뒤에 줄줄이 생겨난 다섯 개의 동굴이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이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식구들이다.유네스코자연유산이긴 하지만 거문오름은 첫눈에 놀랍도록 아름답거나 감흥을 주는 곳은 아니다. 한 쪽이 터진 말굽형의 산체는 9개의 봉우리로 둥글게 이어져 있고, 그 화구 안쪽에는 또 하나의 알오름이 형성되어 있는 독특한 모양새 때문에 자신의 현재 위치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름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만든 것은 5개의 동굴 식구들 덕택이고 그중에서 탐방이 가능한 곳은 만장굴 하나다.

오름이건 동산이건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만나는 것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나무와 억새밭, 돌투성이 오솔길들이었다. 숱하게 만나 온 산의 풍경들. 하지만 이 숲이 다른 숲과 다르다고 느꼈다면 그건 이미 '곶자왈2)'을 구별해내는 식견을 가진 것이다. 제주어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암석덩어리를 뜻한다. 말은 쉽지만, 식물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어려운 환경이었다. 돌을 피해, 때로는 돌을 뚫고서라도 뿌리 내린 나무들은 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나무들이 살 수 있도록 돌들도 배려를 했다. 곳곳에 숨골이 있어서 물의 배수와 정화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었고 바위틈에 형성된 풍혈은 마치 에어컨디셔너처럼 일정한 온도의 바람을 내뿜었다. 이것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오름이 가진 미기후3)의 비밀이다. 오름해설사 선생이 여러 번 강조했던 '공기가 다르다'는 말을 탐방이 길어질수록 실감할 수 있었다. 제주를 3번 갔더니 더 이상 볼 게 없더라는 어느 지인을 다시 데려와 오름의 공기를 숨쉬게 하고, 송이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 소망조차 어쩌면 작은 인간의 욕심일 뿐이라고, 설문대할망은 말씀하실지 모르겠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www.hijeju.or.kr

1)화산폭발시 점토가 고열에 타서 만들어진 화산탄스코리아, scoria으로 암갈색을 띤다.2)돌이 많은 숲. 제주의 천연림을 제주 방언으로 곶자왈이라고 한다.3)지표면에서 수미터 사이(보통 1.5m)에서 보이는 어느 한 곳의 특별한 기후.물가가 주변보다 시원한 것도 미기후다.

▶travie info

제주돌문화공원┃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원) 입장료 어른 5,000원, 청소년 3,500원 문의 064-710-7731 www.jejustonepark.com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2012년 9월4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개관했으며 전시실과 4D영상체험관, 다목적 강당 등을 갖추고 있다. 문의 064-710-6973 거문오름 탐방┃하루 300명의 인원 제한이 있어서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분화구에 올라 능선을 타는 8.1km 정상 코스는 자율탐방으로 3시간 30분이 소요되며 해설사와 동행해야 하는 분화구 코스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예약 및 문의 거문오름탐방안내소 064-784-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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