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국민방송 정말 만들어질까

2012. 12. 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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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초점] 지상파·종편의 편파방송 대항해 탐사보도 지향하는 국민방송 설립 운동… 해직 언론인 '인프라'에 국민모금 더하기, 그러나 '방송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 필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 < 미디어의 이해 > )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변용해도 되겠다. '미디어 설립은 메시지다.' 18대 대선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뒤 해직 언론인과 인터넷 팟캐스트,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대안방송을 만들자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최대치의 불공정 선거방송 보도를 선보인 KBS·MBC,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이 내보낸 시청률 0~1%대의 깨알 같은 편파방송에 대한 반작용이다.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불공정 편파방송이 지목되며, 패배에 대한 이성적 분석과 감정적 분노가 한데 어우러져 대안방송 추진 흐름을 만들어냈다.

대안신문 25년 뒤 대안방송

야권의 대선 패배 직후 대안언론 설립에 힘이 실리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 한겨레 > 창간 과정이 그랬다. 1987년 12월24일 당시 석간이던 < 동아일보 > 7면 하단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허탈과 좌절을 떨쳐버리고 한겨레신문 창간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단일화 실패는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또다시 군부 출신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해 12월16일 대선이 끝난 뒤 < 한겨레 > 창간 준비 사무실에는 허탈과 분노로 가득 찬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선거 패배 일주일 뒤 나온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라는 광고는 이들의 뻥 뚫린 가슴을 위무하며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지 않은' 대안신문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25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신문이 아니라 대안방송이다. 불공정 방송에는 공정한 방송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즉자적 논리가 깔렸다. 그사이 활자보다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월등히 커졌다는 현실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매체의 등장도 큰 자본이 들지 않는 대안방송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인적 인프라는 이명박 정권이 깔아놓았다. 지난 5년 동안 역량 있는 해직 방송인들이 쏟아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해직된 < 동아일보 > < 조선일보 > 기자들이 < 한겨레 > 창간의 주축이 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 뉴스타파 > 제작진, < 나꼼수 > 김용민

현재 '국민방송' 추진 흐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이근행 전MBC PD, 노종면 전 YTN 기자 등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인터넷 팟캐스트 < 뉴스타파 > 가 있다. '뉴스답지 않은 낡은 뉴스를 타파하고, 성역 없는 탐사보도를 추구한다'는 목표로 2012년 1월 첫 방송을 내보냈다. 지상파 방송이 외면하거나 축소 보도한 4대강 사업 부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삼성반도체 직업병, 민간인 불법 사찰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성과를 올렸다.

< 뉴스타파 > 제작진은 12월2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익재단 뉴스타파'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공익재단 형태로 자본과 인력을 강화해 기존 탐사보도에 집중했던 < 뉴스타파 > 의 방송 내용과 형식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3월 주 2회 방송을 목표로 탐사보도 외에 미디어 감시, 국제뉴스, 토크쇼까지 프로그램 목록에 올려 놓겠다는 계획이다. 공익재단 뉴스타파는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회복에 최선을 다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2011년 하반기부터 정치 팟캐스트 열풍을몰고 온 < 나는 꼼수다 > 의 김용민 PD가 중심이 된 '국민TV방송'(가칭)은 2012년 12월26일 모임을 가진 뒤 < 뉴스타파 > 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출자금을 낸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는 협동조합 형태를 택했다. 이를 통해 초기 출자금 50억원을 모은다는 계획도 논의됐다. 방송 콘텐츠는 팟캐스트용 정치 토크 외에도 뉴스분석, 심층취재물 등 폭넓게 다룰 계획이다.

대안방송 설립을 논의하는 이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쪽에서는 대안방송 필요성에 대한 여론화 작업이 좀더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대선 직후 분출하는 대안방송 설립 움직임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에 대한 반발, 공영방송에 대한 엄청난 실망이 저변에 깔려 있다"면서도 "방송 장악의 문제점을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다시 등장시키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방송 정책이 당분간 '관리 모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방송 문제가 국민적 이슈가 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분석이다. '방송이라는 것'에 대한 적응 기간도 필요하다. 발랄함과 자유로움으로 인기를 끄는 기존 팟캐스트들과 달리 방송이라는 형식은 일정한 '규율'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조 소장은 대안방송을 추진하더라도 처음부터 대규모로 시작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자본을 통해 각개약진 수준으로 흩어져 있던 대안언론들을 대안방송 안으로 그러모아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방송은 과거에도 추진된 적이 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였다. < 한겨레 > 소유 구조를 본뜬 '국민주' 방송이 언론단체 등을 중심으로 몇 년간 진지하게 고민되다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00년대 초반 액세스채널 형태의 시민방송으로 합쳐졌지만 시민방송(RTV) 역시 심각한 운영난과 미미한 존재감만 남겨놓았다.

'방송 때문에 졌다' 검토해봐야

강상현 한국방송학회장(연세대 교수)은 "과거 신문이 주류 매체의 역할을 했을 때는 답답한 언론 환경에 대한 반작용으로 < 한겨레 > 가 출현하게 됐다면, 지금은 기존 방송매체들의 극단적인 편중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대안방송 논의를 만든 배경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방송으로 '해결'을 보겠다는 식의 접근 역시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짚어내면서 다른 원인도 많은데 '방송 때문에 졌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대중적 지지를 온전히 받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안방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방송매체는 신문과 다르게 자본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대안매체는 드라마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지점들, 뉴스와 사실에 대한 접근에 집중하면 된다. 비용을 상대적으로 적게 들이면서도 대안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대규모 자본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케이블TV 방송이 아닌 인터넷 기반 방송을 전제로 한 말이다. 날선 의지와 섣부른 열정보다는 할 수 있는 지점부터 차근차근 바리케이드를 쌓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 한겨레 > 같은 진보언론에는 대안방송 논의 자체가 진보언론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미디어의 이해 > 부제는 '인간의 확장'(the extensions of man)이다. 다시 비틀어 말하면 어떤 형태로든 진보언론의 확장이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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