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어린이 영어예배장에 한국인 '가득'
취지 '무색'…"조기 영어교육이 부른 사회문제"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의 종교생활 편의를 위해 일부 대형교회에서 운영해 온 '어린이 영어예배'가 국내 어린이들의 영어 과외교실로 변질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교회 어린이 영어예배에는 국내 성도 자녀가 등록인원의 절반을 넘는다. 사전 인터뷰 테스트를 치러야만 할 만큼 '문턱'도 높아 별도의 준비수업을 하는 이상 현상 조짐까지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조기 사교육 열풍이 교회 문마저 열어젖혔다고 지적했다.
◇주객 바뀐 영어예배…한국인 자녀등록 문의 '쇄도' = 국내 교회에 별도의 어린이 영어예배가 본격 도입된 시기는 2000년대 초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외국인의 자녀나 외국에서 살다 온 국내 어린이의 적응을 돕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 영어예배당은 국내 성도 자녀가 대다수를 이루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사랑의교회의 경우 매주 영어예배에 출석하는 어린이는 150여 명이다. 이 중 과반이 일반 한국인 성도 자녀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50분 시작하는 어린이 영어예배의 수준은 설교, 찬양, 성경공부까지 한국어는 한마디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고난도로 전해졌다.
그래서 교회 측은 신규 등록을 받는 매달 첫째 주 별도의 인터뷰 시험을 시행하고 있지만 어느새 등록인원만 300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 교회에 수년째 다니는 김모(44)씨는 31일 "신앙과 함께 영어회화 실력도 기를 수 있다는 소문에 일반 성도들이 앞다퉈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며 "그런데 문턱이 높아 일부 어린이는 인터뷰 시험을 위한 준비까지 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영어예배의 주객이 뒤바뀐 데 대해 교회 측도 고민이 깊은 눈치다.
이 교회 관계자는 "영어예배의 취지가 옅어져 교회에서도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국내 아이들의 등록을 막는 방안도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교회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간단한 인터뷰 과정을 거쳐 신규 인원을 선발하고 있다.
'선데이스쿨'이라 불리는 유년부 영어예배에 등록된 인원은 70여명. 다른 교회에 비해 국내 성도의 자녀는 많지 않았으나 문의는 빗발치고 있다.
순복음교회 관계자는 "한국 아이들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자녀를 데려와 등록하려는 일반 성도들이 꾸준하다"고 전했다.
온누리교회의 영어예배 담당자는 "만4세가 넘으면 별도의 레벨 테스트를 거쳐 영어예배에 참가할 수 있다"며 "문의는 많은데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영어 열풍이 빚어낸 새로운 사회문제" = 이런 현상에 대해 신학·교육 전문가들은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빚어낸 또 하나의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신학대 교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습득하게 하려는 부모들의 빗나간 욕망의 결과"라며 "영어교육 열풍을 타고 어린이 신도를 늘리려는 교회의 이해타산과도 맞아떨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려운 고유명사가 많은 영어예배 내용을 아이들이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면서 "신학적으로도 모국어로 된 예배야말로 진정한 기독신앙"이라고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승현 정책실장은 "교회 예배당마저 비싼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goriou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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