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있으면 뭐하나, 죽지 못해 사는 노인들

윤철원 2012. 12. 2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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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복지, 버림받은 이웃들..반찬 살 돈 없어 소금 간으로 밥 지어먹기도

[CBS 윤철원 기자]

경기도 수원의 한 허름한 임대아파트. 한 켠에는 거주용인지 상가용인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중 한 칸에는 김승옥(77.가명) 할아버지가 10년 넘게 홀로 살고 있다. 신발 3켤레 나란히 놓기도 부족한 현관과 이어져 있는 부엌은 오래전부터 주인을 잃은 것처럼 한 점 열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며 울음보를 터트리고 마는 김 할아버지. 한 눈에 봐도 거동 자체가 힘들어 보였다.

3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 병마는 김 할아버지의 눈을 멀게 했고, 팔다리는 돌처럼 굳게 만들어버렸다. 소변은 2리터짜리 우유 페트병을 이용해 해결하지만, 대변은 아침마다 잠깐 들르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외출은 엄두도 못 낼 일.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어보였지만 그에게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이라곤 기초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였다. 자녀와 배우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것.

기초생활 수급대상에 포함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서 몇날 며칠을 사정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안 된다'는 내용뿐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1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아 가족들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양비를 받냐"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강준구(70.가명) 씨도 부양의무제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강 씨는 이혼 후 독거노인으로 지하철 택배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강 씨는 지난 2009년 척추관 협착증 판정을 받으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강 씨는 3년간 기초노령연금 9만 원으로 생활했으며, 반찬 살 돈이 없어 소금으로 간을 맞춰 밥을 지어먹었다는 것.

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자, 담당자가 내 자식과 내일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 자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고, 또 그 다음날 자식의 연락처가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며 "결국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노인들 사지로 내모는 '부양의무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지만 부양 의무가 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된 노인들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8월 거제도에서는 백수였던 사위가 취직했다는 이유로 수급자격을 박탈당한 70대 노인이 시청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더군다나 목숨을 끊은 거제 노인이 부양의무자인 사위로부터 받을 부양비는 최저생계비에서 고작 7,000원 더 많은 것에 불과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양 의무자(혈연 1촌 및 그 배우자)가 있거나 이들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일 경우에는 수급권자에서 제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기초생활수급자는 155만명,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경우는 117만명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기초수급 관련 민원의 절대 다수(22.8%)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문제로 나타났다. 부양의무제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데 있어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

◈"국가가 어려운 부양의무자에게 책임 떠넘기는 것"

전문가들은 이처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의무부양제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양의무자를 부모와 자식으로만 한정하고, 수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그들의 소득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저생계비의 130% 적용'으로는 현실적으로 부양의무까지 책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양의무제는 국가가 어렵게 사는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의무를 떠 넘겨 빈곤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양의무자까지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부양대상자가 발생하면 국가든 부양의무자든 확실한 합의를 거쳐 부양의무를 충실히 해야 살길이 막막해 목숨을 끊는 노인들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제작]= 노컷TV 박철웅 기자(www.nocutnews.co.kr/tv)psygo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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