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 외신은 어떻게 봤나

허은선 기자 2012. 12. 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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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식어다. 하지만 해외 언론이 박 후보에게 붙이는 수식어는 좀 더 다양하다. 지난 8월12일 영국 로이터통신은 '암살당한 독재자의 딸(slain dictator's daughter)'이라고 표현했고, 지난 7월14일 영국 경제주간지 < 이코노미스트 > 는 '빨간 옷을 입은 철의 여왕(The iron lady in red)'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위에서 언급된 < 이코노미스트 > 의 기사 부제는 '독재자(strongman)의 딸이 한국 최초의 여성 리더가 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기사 첫 문단에서 박정희는 '한국의 산업 도약을 이끈 군사 독재자(military dictator)'로 소개됐다. 이처럼 영어권 외신은 그간 박정희 전 대통령을 'dictator' 'strongman' 'autocrat' 등으로 설명해왔다. 모두 '독재자'를 뜻하는 단어이다.

[타임]은 12월17일자 커버스토리에 박근혜 후보를 다뤘다. 'strongman'이라는 표현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12월7일 영어 단어 'strongman'의 번역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12월17일자 미국 주간지 < 타임 > 아시아판에서 박근혜 후보를 'The Strongman's Daughter (독재자의 딸)'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 타임 > 표지가 공개되자마자 새누리당은 재빠르게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 시사주간지 < 타임 > (12월17일자)이 '강력한 지도자의 딸: 역사의 후예' 제하의 커버스토리를 게재"했다고 홍보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곧바로 '새누리당에 따르면'이란 표현을 달고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각 일부 누리꾼은 ' < 타임 > 도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본다'는 글과 함께 < 타임 > 표지 이미지를 퍼 날랐다. 이들은 과거 김정일·카다피 등을 'strongman'으로 표현한 외신 보도를 근거로 제시했다. 영어 단어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은 곧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번졌다. 일부 보수 성향 누리꾼은 'strongman'이란 단어에 굳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고, 일부 진보 성향 누리꾼은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도 박정희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제적 망신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아사히TV 프로그램의 화면. '우호적 박근혜' 대 '반일 문재인'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기사 전문을 읽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사는 박근혜 후보의 명과 암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등 상당히 중립적으로 썼다.

지식인들의 박 후보 평가는 더 엄혹

이 같은 소동이 벌어지고 몇 시간 후, < 타임 > 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터넷판 기사의 제목을 'The Dictator's Daughter'로 바꿔 달았다. 한국에서의 소동을 염두에 둔 조치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사를 쓴 에밀리 로할라 기자와 접촉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국 언론의 질문에 일절 답변을 하지 않는 듯했다. 어쨌든 한국인에게 훨씬 익숙한 단어 'dictator'가 등장하면서 반나절 소동은 일단락됐다.

12월9일에는 일본 아사히TV의 주말 프로그램 < 그랬구나!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의 배우는 뉴스 > 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일(對日) 성향을 분석한 화면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극우 성향의 진행자 이케가미 아키라가 박 후보는 '일본에 우호적'인 후보로, 문 후보는 '반일' 성향 후보로 소개한 것이다. 이 텔레비전 화면을 김지수씨(39) 등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트위터 등 SNS에 올리면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문 후보 당선을 우려하는 보수 신문 [산케이 익스프레스].

프로그램의 내용은 SNS에 돌아다녔던 화면 캡처와 일치했다. 박근혜 후보는 일본에 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우호적인 인물로 소개됐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일본에 매우 강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사람'으로 소개됐다. 진행자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한국 문화재를 돌려달라면서 시끄럽게 굴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프로그램을 시청한 김지수씨는 "출연한 연예인들이 모두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안 되면 어떻게 하냐는 듯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월25일 보수 성향의 < 산케이 익스프레스 > 도 문 후보의 당선을 우려하는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기사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갑작스러운 출마 사퇴로 사실상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일대일 대결이 되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권 탄생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안철수 사퇴 이후 해외 언론은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양강 구도를 집중해서 다뤘다. 외신 기자들은 두 후보의 막판 지지율 다툼을 '독재자의 딸'과 '인권 변호사'의 대결 구도로 본다. 12월12일 < 워싱턴 포스트 > 의 기사 '거의 다른 성장 배경의 한국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기사는 두 후보 모두 중도 정치를 표방하지만 그 배경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소개했다. 박근혜 후보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 대통령의 딸이자 준왕족(near-royalty) 출신인 후보로, 문재인 후보는 '그 철권 통치자(the strongman)'에게 저항하다가 투옥됐던 활동가로 소개됐다.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해외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이는 이정희 후보인 듯하다. 지난 12월13일 중국의 경제 포털 사이트인 허쉰(和迅)은 한국의 대선 상황을 다룬 기사 첫 문단에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라는 이정희 후보의 말을 주요 발언으로 소개했다. 기사는 '평민(平民)' 후보들이 '공주(公主)' 후보와 싸우고 있다고도 전했다.

서울에 주재 중인 프랑스 일간지 < 리베라시옹 > 의 에바 존 기자와 네덜란드 일간지 < 트라우 > (Trouw)의 바스 베르베익 기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이들은 '1차 토론 때 이정희 후보가 다른 두 후보와 차별점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에바 존 기자는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공격에도 박 후보는 놀랍게도 차분했다"라고 말했다. 바스 베르베익 기자는 "박근혜 후보는 아무것도 모르는(clueless) 것처럼 보였고, 문재인 후보는 망설이는 듯한 태도였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를 향한 해외의 평가는 언론보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엄혹하다. 12월5일 '유신독재를 기억하는 아시아 지식인연대 성명'이 발표됐다. 일본 진보학계의 원로인 무사코지 긴히데 교수 등은 박정희 시대의 유신독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면서 "이런 현상(박근혜 후보의 출마)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암울한 전조이다"라고 밝혔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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